사랑할 땐 별이 되고 - 이해인
복스러운 사람
우리가 서로 주고받는 많은 인사말 중에서도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말은 가장 정겹고도 포근한 말이라 생각됩니다. 이말을 설날이 아닌 날에도 자주 주고받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나는 복이라는 금박이 글자가 찍힌 저고리의 끝동이나 옷고름, 은이나 자개로 복을 새겨 넣은 밥그릇이나 젓가락, 복주머니 등을 보면 괜스레 즐거워지고 행복이 바로 곁에 머무는 듯 설레이곤 했습니다. 어쩌다 누가 자기에게 예기치도 않는 선한 일, 좋은 일을 하면 그 고마운 마음을 "복 받으세요"라고 표현하는 것도 매우 인상적이어서 나도 어른이 되면 꼭 그렇게 해야겠다고 결심한 적이 많습니다.
복을 생각하면 왠지 늘 뺨이 붉고 동그스름한 소녀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하는데, 아마도 나의 어린 시절에 어른들이 총명하고도 통통한 아이들을 보면 즉시 "넌 참 복스럽게 생겼구나"라고 하는 말을 자주 들어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도 그애들처럼 좀 복스럽게 생겼으면 복을 많이 받을텐데...`하고 내내 거울을 들여다보며 부러워하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우리 수녀원에도 복자, 복순, 복희, 복련, 순복, 등의 이름을 지닌 이들이 많은데 그들은 지금도 복스럽게 생겼지만 어려서의 귀여운 모습들을 떠올리면 더욱 재미있습니다. 장수, 재물, 자손, 풍년, 나라의 안녕과 질서, 부부간의 해로, 우애, 화목, 기쁨, 평화, 사람, 좋은 만남 등등 그 무엇을 복으로 여기든지 간에 복은 그 자체가 이미 생명 지향적인 것이며 좋은 것, 아름다운 것, 선한 것, 갖추어진 것을 지니고 싶어하는 인간의 솔직한 꿈이며 희망이라 여겨집니다.
어느 특정한 종교를 믿지 않더라도 인간은 예로부터 어떤 신령한 힘에 의지하여 기도하며 마음으로 복을 빌어 왔습니다. 이런 마음을 `기복신앙`이라 하여 무조건 비난하기보다는 오히려 긍정적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인간이 자기 보다 더 높고, 위대하고, 능력 있다고 생각되는 누군가에게 가장 겸허하고 진실되게 복을 비는 것 자체는 곧 자기의 유한성을 인식한다는 뜻도 되며 매우 아름답고따뜻한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새해엔 우리 모두 이기적으로 자신의 복을 구하고 챙기는 일에만 연연하지 말고, 우리 이웃과 나라와 세계를 위해서도 복을 구할 수 있는 넉넉하고 여유로운 마음을 지니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자꾸 새로운 복을 달라고 조르기 전에 이미 받은 복을 잘 키우고 닦아서 보물로 만드는 노력과 지혜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아무런 노력 없이 요행을 바라거나 안일하게 복을 구하는 태도를 지양하고, 우리 일상의 삶 안에서 꾸준히 복을 짓는 덕스러운 나날을 만들어 가는 것이 우리 모두의 아름다운 의무라고 여겨집니다. 결국은 덕스러운 삶이 복스러운 삶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새롭게 해보면서, 우리 각자는 잠시라도 이웃이 편히 쉬어갈 수 있는 작은 `복덕방`의 역할을 하는 복된 새해가 되길 기대하는 마음입니다. 아울러 새로운 한 해를 맞아 우리 모두 외모 못지않게 내면이 복스러운 사람이 되길 함께 기원하면서 나는 아래와 같이 다섯 가지의 소망을 하늘에 띄워 보내고 싶습니다.
1.하느님과 이웃을 향해 더욱 열려 있는 사랑과 기도로 복스러운 사람이 되게 하소서.
2.일상의 소임에서 가꾸어 가는 잔잔한 기쁨과 감사로 복스러운 사람이 되게 하소서.
3.타인의 잘못을 받아들이는 이해와 용서로 복스러운 사람이 되게 하소서.
4.좀처럼 화를 내지 않고 잘난 체하지 않는 온유와 겸손으로 복스러운 사람이 되게 하소서.
5.옳고 그른 것을 잘 분별하고, 실천할 수 있는 지혜와 용기로 복스러운 사람이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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