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여름이었다. 김군이 인턴이 되어 처음 맡은 환자가 운 나쁘게도 정성 어린 치료에도 불구하고 계속 상태가 나빠졌다. 그리고 며칠 밤을 잠도 못 자고 수고한 보람도 없이 환자는 숨이 멎었다. 의사가 되어 처음 담당한 환자가 죽었다고 느꼈을 때 그는 하늘이 내려앉는 것 같아 정신없이 울었다. 죽은 사람이 가슴을 마구 흔들고 하필이면 내가 처음 맡은 당신이 죽었느냐고 환자의 옷이 흠뻑 젖도록 울부짖엇다. 얼마를 그랬을까. 달려온 간호사가 제지를 해 정신을 차리고 환자를 들여다보니 죽은 자의 심장이 뛰고 있었다. 의학적으론 김군이 울부짖을 때 그의가슴을 흔들어댄 것이 심장 마사지 효과를 내어 소생시켰다는 결론이 나왔지만, 나는 지금도 김군의 피눈물 나는 정성이 사신을 감동시켜 죽은 자를 이승으로 되돌려 주었다고 믿고 있다.
(국립의료원 의로부장)
봄비가 개이면 - 정순님
봄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휴일 오후였다. 방안에서 책을 정리하고 있는데 누가 "누나!"하며 부르는 소리가 들리기에 내다보니 우리 집에 신문배달을 하던 소년이 서 있었다. 나는 의아해서 "아니, 너 웬일이니? 이렇게 비가 오는데, 다시 신문 배달하기로 했니?" 하며 그 아이의 손을 살펴보았다. 신문 꾸러미는 없었다. 아이가 말했다. "아니에요.
"저번에 누나한테 신문 구독료를 받아 가고 거스름돈을 안 드렸잖아요. 미안해요. 엄마 병환이 더 악화되어서 요양원에 따라가 있느라고 그랬어요." 아이는 말을 마치며 100원짜리 동전 하나를 내밀었다. 나는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던 일이었다.
"어머니 병이 무엇이길래 그러니?"
내가 묻자 아이는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올해 중학교 2학년인 소년의 아버지는 작년 가을에 교통사고로 돌아가시고 어머니가광주리 장사로 간신히 끼니를 이어 가고 있었는데 엄마 마저 갑자기 결핵이 도져서 요양원에 가 있다고 했다. 어머니 병간호를 해야 하기 때문에 동생 둘을 데리고 요양원 근처로 이사를 간다고 했다.
"누나, 미안했어요. 일찍 갔다 드리려고 했는데."
아이는 말꼬리를 흐리면서 인사를 꾸벅 했다.
"아니 얘, 잠깐만."
나는 주머니를 모두 털어 아이가 내민 돈과 함께 쥐어 주며 얼마 안되지만 어머니에게 과일이라도 사다 드리라고 말했다. 아이는 끝내 거절을 했다.
"누나 성의는 고맙지만 남의 도움을 받을 만큼 어리진 않거든요."
아이는 씩 웃더니 빗속으로 뛰어갔다. 나는 한참 동안 그 아이가 사라진 곳을 바라보았다. 그래, 이 봄비가 개이면 해가 환하게 비추고 새싹이 돋듯 네 앞길에도 머지않아 밝은 햇살이 비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