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이야기 1 - 정채봉, 류시화 엮음
3 시련을 딛고
서른일곱 시간 만의 살아 돌아옴 - 하지애
1995년 6월 29일, 그날은 쉬는 날이었다. 그러나 휴일을 바꾸자는 선희 언니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한 탓에 출근을 해야 했다. 어젯밤 비디오도 보고 밤늦게까지 이야기도 나누며 함께 밤을 지샌 정원이와 손을 꼭 잡고 들어서는 백화점의 분위기는 여느 날과 다르지 않았다. 무슨 연유에서인지 에어컨이 작동되지 않았고, 위층에서는 쿵쾅거리는 소리가 계속 들려 왔다. 매장의 여직원들이 오르내리며 들은 바로는 4, 5층의 천장과 바닥에 균열이 생겨 수리를 한다고 했다. 오후 다섯 시쯤, 지하 3층으로 내려갔다. 백화점 일이라는 게 하루 종일 서서 손님들을 상대해야 하기 때문에 간식을 들며 휴식을 취하는 시간이 정해져 있었다. 간식을 먹고 근무 매장인 지하 1층 아동복 코너로 향했다.
근무하고 있는 아동복 매장에 들어서면 언제나 기분이 좋았다. 울긋불긋 밝고 화려한 색깔들, 그리고 앙증맞도록 작은 옷들을 보고 있으면 인형 나라에라도 온 듯 기분이 환해졌다.
"어휴, 에어컨은 왜 가동이 안되는 거야?"
더위를 이기지 못해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하나 뽑아 들고 매장으로 들어섰다. 너무 간식 시간이 길지 않았나 싶어 시계를 보니, 시계는 다섯 시 오십 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건물이 무너진다. 도망 가!"
어디서 들리는지, 누구의 목소리인지 모를 다급한 외침이 들려 왔다. 건물이 무너지다니... 그게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언뜻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우르르 몰려가는 사람들을 따라 무작정 뛸 뿐이었다. 어느 순간, 꽝! 하는 소리와 함께 땅이 푹 꺼지더니 몸이 붕 나는 듯했다. 그리고 머리에 쇳덩이라도 와서 부딪치는지 둔탁한 소리가 아득하게 들려 왔다.
내가 지금 눈을 뜨고 있는가, 감고 있는가, 아무리 눈을 비벼도 눈앞이 깜깜하기만 했다. 손을 뻗어 허우적거려 봤지만, 무거운 것들이 가로막고 있다는 것만이 느껴졌다.
"무슨 일이 난 거지? 정원이는? 여기는 도대체 어디야?"
빠르게 몇 가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가면서, 매캐한 먼지들이 코로 입으로 들어왔다. 그리고는 마치 진공 상태처럼 아득하기만 한 속에서 가느다란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살려 주세요! 여기 사람 있어요! 누구 없어요?"
뭐라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애절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으니, 참을 수 없는 공포가 엄습하면서 눈물이 흘러 내렸다.
"아무도 없어요? 구해 줄 사람 없어요?"
나도 울음인지 외침인지 모를 소리를 질러댔다. 그러면서 조심스레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 보았다. 다행히 다친 데는 없는 것 같았다. 큰 통증이 느껴지는 곳도 없었다. 살려 달라는 아우성들 속에서 언뜻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해정 언니! 경분 언니!"
따르며 가장 가깝게 지냈던 언니들이었다. 나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안도감이 느껴졌다.
"승현아, 괜찮니? 난 움직일 수가 없어."
언니의 소리가 나는 쪽으로 몸을 움직이려 했지만, 육중한 무게에 눌러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언니의 신음 소리가 계속될수록 몸도 마음도 점점 옥죄는 것만 같았다.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사람들의 신음 소리가 점점 줄어들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해정 언니, 경분 언니의 소리도 점차 줄어들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아주 끊어져 버렸다.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칠흙 같은 어둠, 사라져 가는 신음 소리들 그리고 고요. 세상이 모두 사라진 한복판에 혼자 덩그마니 남겨진 것만 같았다. 처음 느껴 보는 무서움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엄마 생각이 났다. 분식집을 하느라 늘 바쁘던 엄마와 아버지. 병원을 몰래 다니시는 것 같아 카드를 훔쳐보기도 했었다. 왜 좀 더 착한 딸이 되지 못했을까. 때로는 생활비를 대느라 부족해진 용돈 투정을 하기도 했었다. 목마름과 배고픔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무섭고 암담한 상황에서도 허기가 느껴지다니, 얼핏 웃음이 나왔지만 배고픔이 강해질수록 정신도 아득해졌다.
'아냐, 난 살지도 모르잖아. 지금 이렇게 눈을 뜨고 있는데'
그때부터 열심히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정원이는 분명히 살아서 나를 찾고 있을 거야. 부모님도, 지방에서 대학을 다니는 오빠도, 이제 중학생인 동생도 바로 내 머리 위에서 나를 향해 오고 있을지 몰라. 그런데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텔레비전에서 본 것처럼 우리 나리에서도 지진이 난 걸까. 아니면 폭탄이라도 터진 걸까.'
도대체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몇 시간이, 며칠이 지났는지 모르겠지만 배고픔은 그만두고라도 갈증을 참을 수가 없었다. 밖에는 비라도 오는지 그때 마침 얼굴 위로 물방울이 똑똑 떨어지고 있었다. 오랜만에 귀에 들리는 소리였다. 빗소리가 내 기분을 조금씩 바꿔 주고 있었다. 떨어지는 물방울을 받아먹으려고 손을 뻗었다. 그러나 이 역한 냄새. 녹이 슨 철근에서 떨어지는 물이었는지 너무도 괴로운 냄새가 났다. 할 수 없이 스타킹을 벗어 물에 적셔서는 얼굴과 머리를 닦아 냈다. 훨씬 갈증이 덜해지는 것 같았다. 입에 고였던 먼지 덩어리도 뱉어 냈다. 주변을 더듬어 보니 쇠 파이프 것 같은 것이 만져졌다. 그것을 들어 얼굴 위의 천장, 몸 옆의 막힌 곳을 두들겨 보았다. 누워 있는 공간이 너무 작아 마음껏 휘두를 수는 없었지만 여기저기 꾹꾹 눌러 보기도 했다.
유리 파편이 박혔는지 온몸이 따가웠다. 몸을 어렵게 구부려 옷을 벗었다. 무서운 생각이 들면 잠을 청했다. 그리고도 시간이 지나지 않으면 즐거웠던 일, 백화점에서 실수했던 일들을 떠올리며 소리내어 웃기도 했다. 설핏 잠이 들고 어렴풋이 눈을 떴을 땐 큰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얼굴 위에 있던 천장이 점차 내려와 몸을 움직일 공간조차 없어진 것이다. 억지로 몸을 돌려 눕고 나니 또 무서움이 밀려들었다. 이러다 저 돌덩이들에 눌린다면... 죽음은 어떤 것일까. 난 얼마나 더 살 수 있을까. 돌에 눌린다면 고통은 얼마나 클까. 죽은 뒤에 내가 발견되더라도 내 몸은 온전했으면 좋겠는데... 그러다 또 잠이 들었다. 잠결인지 꿈결인지 어디선가 스님이 갑자기 나타났다. 아무 말없이 내게 사과를 건네주었다. 그 순간, 눈을 번쩍 떴다. 어디선가 멀리서 깡통 소리 같은 게 들려 오고 있었다. 간간이 들리는 그 소리는 멀어졌다가는 가까워지고 또 멀어지기를 반복하면서 내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가만히 들으니 사람 소리도 들리는 것 같았다.
"드디어 날 구하러 사람이 왔구나."
이젠 살았다는 표현할 수 없는 기쁨에 가슴이 벅차 올랐지만, 한편으론 그만큼 조바심도 났다. 저러다가 얼굴 위의 콘크리트가 아주 내려앉으면 어떡하나. 조금만 기다리면 난 살 수 있는데. 어느 순간, 깡통 소리와 사람들 소리가 지척에서 들려 오고, 환한 빛이 얼굴 위로 쏟아졌다. 그리고 얼마 만에 들어 보는 사람의 목소리, 살아 있는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거기 살아 있는 사람 있어요?"
나는 소리쳤다.
"살려 주세요. 여기예요."
"우리가 곧 구조해 줄 겁니다. 조금만 기다리세요."
"이름이 뭐예요?"
"박승현이에요. 오늘이 며칠이죠?"
이젠 정말 살았구나. 시간은 왜 이리 더딘지... 드디어 발 아래쪽에서 한 사람이 기어 들어오고 있었다.
"아저씨, 저 옷 하나도 안 입었어요."
담요에 내 온몸이 둘둘 말리고, 내 몸이 번쩍 들려지고 그리고 온몸이 흔들리고 나니, 병원이란다.
내 주위는 몹시도 시끄러웠다. 여러 사람의 손길이 느껴졌다. 눈을 가린 채 듣는 목소리 속에 정말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 왔다.
"승현아!"
울음 섞인 목소리, 가장 그리웠던 목소리, 바로 엄마의 목소리였다.
"엄마, 나 살았지요?" (자유기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