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제가 심을까요?"
"아니, 얼마 안 남았는데 뭘."
아침부터 내리던 비가 점차 가는 빗줄기로 변했다. 라디오에서 흐르는 음악에 맞춰 콧노래를 부르다가 비가 좀 그친 것 같기에 2층으로 올라갔다. 난간에 기대어 아래를 내려다보니, 넓은 개천가에 할아버지 한 분이 쪼그리고 앉아 코스모스를 심고 계셨다. 내가 비닐 우산 하나를 받쳐 들고 대문을 나왔을 때는 거의 다 심고 벌써 얼마 남지 않았다. 그 할아버지를 도와 드리고 싶은 마음보다 이야기를 하고 싶은 마음에 나는 자신도 모르게 할아버지 옆에 나란히 앉아 우산을 받쳐 드렸다.
"할아버지, 이 꽃 어디서 얻으신 거예요?"
"이거, 저기 학교서."
내가 심겠다고 호미를 청하자 할아버지는 미소를 지으며 말씀하셨다.
"이건 늙은이가 심어야 잘살아."
그런 할아버지의 말씀은 젊은 사람을 꾸짖는 교훈처럼 들렸다.
"할아버지, 연세가 어떻게 되셨어요?"
"나? 여든이 훨씬 넘은 늙은이지."
난 물끄러미 할아버지의 손을 보았다. 울퉁불퉁 힘줄이 튀어나온 거친 손이 계속 꽃모를 다듬고 어루만져 흙을 제친 구덩이에 꽂고 있었다. (학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