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청룡 부대 소속으로 호이안 전선에서 싸운 지 4개월쯤 되었을 때 고지를 미군과 함께 합동으로 수색 작전을 편 적이 있었다. 나는 3분대 첨병으로 적진을 향해 조심스럽게 탐색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앞에서 폭음이 일어나며 부대의 동요가 일었다. 3분대 선임 조장의 숨찬 보고에 의하면 분대장, 통신병 그리고 대원 한 명이 부상을 입었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급히 현장으로 달려갔다. 뜨거운 남국의 햇빛 아래 세 사람이 위생병의 응급 치료를 받고 있었다. 모두 의식을 잃고 있는 가운데 통신병만 정신을 차린 채 소대장에게 사과를 하고 있었다. 부대의 사기를 저하시켜 미안하다는 말이었다.
그 통신병은 전쟁터에서 내게 둘도 없는 친구였다. 광주가 고향인 그는 신병 훈련소, 포항 사단 그리고 월남 전선에까지 나와 함께 생사를 나눈 전우였다. 잠시 후 헬리콥터가 날아왔다. 통신병은 들것에 실려 가면서 오른손으로 나를 불렀다. 그리고는 뭔가 돌돌 말린 헝겊을 주며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고 날아가 버렸다. 나는 우울한 마음으로 나무 그늘에 앉아 그 전우가 주고 간 것을 펼쳐 보았다. 그것은 군데군데 피로 얼룩진 조그마한 태극기였다. 그리고 그 태극기 한 귀퉁이는 안녕과 행운과 개선을 비는 글씨가 수놓아져 있었다. 아마 사랑하는 애인으로부터 받은 모양이었다.
나는 가슴속에서 내가 품고 다니던 태극기를 꺼내 견주어 보았다. 내 것은 아직 깨끗했지만 언제 통신병의 태극기처럼 피로 얼룩질지 모를 일이었다. 나는 두 개의 태극기를 고이 접어 넣으면서 알 수 없는 눈물을 흘렸다. 조국을 떠날 때 거리에서 혹은 부두에서 여학생들이 흔들어 주던 태극기 그리고 우렁찬 군가들이 떠오르며 그런 착잡한 심정이 한꺼번에 몰려 왔다.
(청룡 2605부대 27중대 일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