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은 봄빛이 유난히 맑더군요. 어디 낮은 산에라도 가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하고 무등산 아래 식당에서 밥을 먹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산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땀을 닦으며 도토리 수제비를 먹는 모습이 마치 입을 오물거리는 다람쥐나 모이를 쪼는 닭처럼 정겨워 보였습니다. 자연 가까이 있을 때에야 비로소 사람들은 문명의 옷과 짐을 조금은 내려놓을 수 있는 모양입니다.
석남 씨가 꽤 오랫동안 시골집을 들락거리며 사는 이유도 몸과 마음을 비우기 위해서일 거라고 짐작해 봅니다. 닭 키우는 얘기를 그렇게 실감나게 들려줄 수 있는 사람이 요즘 세상에 몇이나 있겠어요. 언젠가 재래종 병아리를 사러 문경까지 다녀왔다는 말을 들었는데, 병아리들이 벌써 그렇게 컸군요. 아끼던 수탉을 잃어버린 마음이 얼마나 서운하고 허전할지 짐작이 가요. 그 수탉의 의젓한 모습을 생전에 보지 못한 게 아쉽기도 하고요.
닭이라면 저도 특별한 인연이 있어요. 열 살에 고향을 떠나서 남아 있는 기억이 많지는 않지만, 몇 해 동안 아버지가 집 옆에 양계장을 지어 닭을 키웠던 기억이 있어요. 한 이천 수쯤 키웠던 것 같은데, 대부분 닭장에서 키우고 몇십 마리는 풀어 키웠지요. 어린 제 눈에도 닭장 속의 닭과 마당을 돌아다니는 닭은 깃털의 때깔도 울음소리도 확연히 달라 보였어요.
아침에 일어나 아버지가 보이지 않으면 저는 눈을 비비며 양계장으로 갔지요. 그러면 아버지는 제 조막손에 막 낳은 달걀을 쥐어 주셨어요. 몇십 년이 흘렀지만 그 따뜻한 느낌은 지금도 제 손에 남아 있는 듯합니다. 아버지는 손톱으로 달걀 양쪽에 작은 구멍을 내고 후루룩 날달걀을 먹는 법을 가르쳐 주셨지만, 저는 그 온기가 다 사라질 때까지 만지작거리기만 했어요. 닭들과 함께 평화로웠던 시절이었습니다.
사람들이 각자 지니고 사는 유토피아의 구조는 열 살 이전에 만들어진다고 하지요. 유년을 존재의 고향이자 상상력의 창고라고 했던 바슐라르의 말도 같은 의미일 거예요. 제 마음 속엔 막 낳은 달걀의 온기로 축조된 유토피아하나가 자리 잡고 있는 셈이지요.
그러나 생명을 키운다는 것은 석남 씨도 겪은 것처럼 재미와 보람만 있는 게 아니죠. 어느 날 양계장 문 앞에 병들어 죽은 닭들이 한 무더기 쌓여 있는 걸 보았어요. 뉴캐슬이라는 전염병이 돌았던 거예요. 죽은 닭들을 웅덩이에 파묻는 모습을 보며 많이 울었지요.
그때의 충격 때문인지 어른이 되어서는 동물을 길러 본 적이 별로 없어요. 애완동물을 기른다는 것이 사람의 행복을 위해 동물의 본성을 억압하는 일처럼 느껴져서였지요. 더구나 출장이나 여행이 잦은 저로서는 감당할 자신이 없었어요. 베란다에 키우는 꽃들도 집을 길게 비우지 못하게 하는데, 동물들은 매일 밥을 챙겨 주어야 하니까요. 그런 점에서 무언가를 마음껏 기를 수 있는 사람은 정주(定住)의 축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석남 씨가 사는 모습은 정주자로서의 안정감이나 낙천성을 느끼게 합니다. 그것을 늘 부러워하면서도 저는 책 속에서나 답을 찾으려 하는 어리석고 게으른 사람이 아닌가 싶습니다. “바쁜 것이 게으른 것이다.”라는 만해의 말을 자주 떠올리기는 하지만, 그 바쁜 게으름을 한가로운 부지런함으로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좀처럼 주어지지 않는군요.
이 일만 끝나면…… 이번 주만 지나면…… 이번 달만 보내고…… 이렇게 기다리고 미루다가 삶의 종종걸음은 끝나 버리는 게 아닌지…… 부디 그 말줄임표와 말줄임표 사이에서 아름다운 빛과 소리들을 발견하는 기쁨이 이 봄날에 허락되기를…….
광주에서 나희덕
나희덕 / 1966년 충남 논산에서 나서 198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 <뿌리에게>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 김수영 문학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현대문학상, 이산문학상, 소월시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조선대 문예창작학과 교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