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녀오겠습니다. 쪽~ 쪽~” “됐다는데도, 녀석.” “당신도 참~ 기분 좋게 그냥 받지.”
전 외출할 때마다 엄마 아빠 볼에 뽀뽀를 합니다. 그때마다 피하시는 아빠와 그런 아빠께 핀잔을 던지시는 엄마. 처음 본 사람들은 말다툼이 나나 살짝 긴장도 하지만, 이내 분위기 파악하고 피식 웃으며 한 마디씩 거듭니다.
아빠 소원은 제가 하루라도 빨리 시집가는 것입니다. 정년퇴직에 이제 엄마랑 홀가분하게 인생을 즐기고 싶은데, 너 때문에 맘 편할 날이 없다며 불만을 토로하시길 여러 차례. 평소 과묵하시고 감정 표현 안 하시는 아빠가 그렇게 말씀하시니 울림이 더 컸습니다. 그래서 전 아빠께 데면데면 굴다가 슬금슬금 밖으로만 내돌았지요. 그러던 어느 주말 오후, 네댓 살 귀염둥이 조카들이 한바탕 휩쓸고 간 뒤였습니다. 엄마 아빠는 손녀만 좋아한다고 투덜대자 언니가 제게 한 가지 제안을 했습니다.
“조카들 부러워 말고 네가 먼저 살갑게 다가가 봐. 출퇴근 때 엄마, 아빠 안아드리고 뽀뽀를 해 보면 어떨까?” 결국 전 쑥스러움을 누르고 도전해 보았습니다. 예상대로 엄마는 좋아하셨지만 아빠는 싫다며 손사래를 치셨지요. 석 달은 한다 하고 연일 꿋꿋이 입술을 들이대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매번 얼굴을 찡그리며 고개를 돌리시던 아빠가 한 말씀 하셨습니다. “다 큰 게 징그럽다! 싫다!” '징그럽다'란 말이 왜 이리 비수처럼 다가오던지요. 결국은 저도 버럭 화를 내고야 말았습니다. “아빠한테는 제가 지네, 지렁이처럼 보여요? 아빠 너무하세요.” 처음 시작할 때의 좋은 의도는 사라지고 아니한 만 못하게 되어 버린 뽀뽀. 이제 뽀뽀 따위는 절대 안할 테다, 굳게 마음 다잡고 다음 날 방문을 나섰습니다. 그런데 기대에 찬 엄마 눈길과 딱 마주치자 매몰차게 돌아설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엄마께 쪽, 아빠는 못 본 척 돌아서는 데 이런, 아빠가 슬쩍 제 방향으로 볼을 들이대시는 게 아닙니까. 저는 얼른 돌아서 아빠께도 뽀뽀를 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아빠의 “괜찮다, 싫다, 그만해라.”는 “쑥스럽구나. 민망하구나.”의 다른 표현이었습니다. “징그럽다” 역시 마찬가지였지요. 제 마음의 상처가 됐던 말들이 사실은 쑥스러운 상황을 모면하시려는 아빠의 추임새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아! 서운한 마음이 눈 녹듯 사라졌습니다. 그리고는 내 멋대로 아빠 말을 해석하기 보다는 아빠 표 단어 활용법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습니다. 서운했던 과거의 말들이 다른 뜻으로 다가오자 더 이상 마음이 불편하지 않았습니다. 저 역시 그런 제 감정을 아빠 표 단어 활용법에 맞춰 표현하려고 노력했지요.
이러구러 말 많던 뽀뽀 인사가 해를 넘겼습니다. 여전히 아빠의 추임새는 계속되지만, 전 아무렇지 않습니다. 아빠의 마음을 알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빠가 뽀뽀하기 가장 편한 각도로 볼을 내밀어 주시니까요. 지금 이 순간이 참 소중하고 감사합니다. 이 값진 시간이 다할 때까지 오지게 뽀뽀하며 살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