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이 유난히 따사로운 주말 오전, 아파트 현관 앞 벤치에 앉아 햇볕을 쬐고 있었습니다. 잠깐이지만 일상에서 빠져나와 한가롭게 흘러가는 봄날을 느껴보고 싶었습니다.
그때 3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남자가 현관 앞에 RV 차량을 세우더니, 차에서 내려 누군가를 기다리는 모습이 눈에 띄었습니다. 지극히 평범한 모습의 중년 남자였지만 묘하게 상기된 표정이 눈에 콕 와서 박히더군요. 기다림이 꽤 설레는 듯 서성이며 아파트 안을 흘끔거리다가, 사이드미러로 간간이 머리 모양새를 다듬곤 했습니다. 차 안에는 초등학교 1학년 정도의 여자 아이와 3학년 정도의 남자 아이가 있었습니다.
잠시 후 아파트 문이 열리고 30대 중반의 여자가 나왔습니다. 뒤에는 초등학교 3~4학년쯤으로 보이는 여자 아이가 뒤따라 나왔습니다. 남자와 여자는 눈이 마주치자 조금은 어색한 웃음으로 가볍게 고개를 까딱였습니다. 차 안에서 아이들 둘이 뛰어내렸습니다. 여자는 자연스럽게 두 아이를 양팔에 살짝 안았고, 남자는 아파트에서 나온 여자 아이의 손을 잡고 머리를 쓰다듬었습니다. 여자는 가방에서 빗과 고무줄을 꺼내 차에서 내린 여자 아이의 부스스한 긴 머리를 빗어 예쁘게 묶어 주었습니다. 남자 아이의 머리도 단정하게 빗겨 주었습니다.
어느새 귀공녀, 귀공자로 변한 아이들이 차 뒷자리에 탔습니다. 아직은 운전자 옆자리가 편치 않은지 여자도 뒷자리에 함께 탔습니다. 뒷자리에 앉은 여자와 아이들 셋이 까르륵 웃었습니다. 운전을 하는 남자는 뭐가 그리 좋은지 입이 귀에 걸렸더군요.
조금은 어색하지만 눈이 부셔 쳐다보지 못할 만큼 행복해 보이는 가족 아닌 가족. 그들은 이렇게 좋은 봄날 어디를 가는 걸까요? 무작정 따라가서 하루 종일 그들을 지켜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들을 태운 차가 단지를 빠져나가는 것을 바라보다 잠시 잠깐 눈을 감고 기도했습니다. 아침마다 머리를 빗겨주는 엄마가 생길지 모르는, 이불 속에서 깔깔거리며 수다를 떨 언니가 생길지도 모르는 그 여자아이를 위해, 차를 태워 이곳저곳 나들이시켜 주고 손을 꼭 잡아 줄 아빠가 생길지도 모르는 또 다른 여자아이를 위해, 친구와 한바탕 싸우고 돌아왔을 때 꼭 안아줄 엄마가 생길지도 모르는 그 남자아이를 위해, 무엇보다 서로의 아픈 상처를 보듬고 조심조심 새로운 사랑을 시작할지도 모르는 그 남자와 그 여자를 위해, 오래오래 오늘처럼 행복하기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