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나는 천문학자도 되고 싶고, 성악가도 되고 싶었다. 그러나 어른이 된 나는 흰 가운을 입은 의사가 되어 병원 진료실에 앉아 있다. 병원에 갇혀 개원의로 살다 보니 어린 시절 꿈에 대한 아쉬움이 컸다. 그래서 천문학을 배웠고 성악을 공부했다. 그런데 6년 전인 2002년, 별과 음악을 조화시켜 한꺼번에 누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 바로 ‘별 음악회’였다.
처음 별 음악회를 시작했을 때는 해결해야 할 문제도 많았다. 천체 투영관은 음악회를 위해 만들어진 곳이 아니기 때문에, 공연할 공간도 예산도 없었다. 사비를 털어 전자피아노를 사고 음향과 조명장비를 들여 놓고 아주 소박한 공연을 시작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관객들은 별 음악회에 폭발적인 반응을 보냈고 입소문에 힘입어 매 공연마다 90석의 객석이 일찌감치 가득 찼다.
그러나 무료 공연이라 연주자들에게 출연료를 줄 수 없다 보니 100회 전까지는 출연자를 구하느라 애를 먹곤 했다. 마지못해 출연을 약속하고도 당일 날 오지 않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였다. 객석에 꽉 들어찬 관객들이 무대만을 바라보고 있는 상황에서 내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럴 때면 내가 ‘대타’로 무대에 올랐고, 지금도 나는 한 달에 한 번 가량 대타로 무대에 오른다.
나는 공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관객이 느끼는 감동과 행복감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곡마다 해설을 곁들인다. 그런데 곡 설명을 해 줘야 할 연주자들이 어색하고 귀찮다며 거절할 때도 많다. 그러다 보니 음악회 때마다 내가 직접 자료를 찾아 해설을 준비하곤 한다.
한 회 한 회 공연은 그야말로 기적적으로 막을 올리고, 땀과 눈물로 막을 내린다. 그럼에도 내가 300회 넘게 별 음악회를 해 올 수 있었던 이유는, 공연을 통해 내가 느끼는 행복감이 말할 수 없이 크기 때문이었다. 과거에 나는 아마추어 천문학자로서 지식이 늘었을 때, 성악을 배우며 연주 기량이 향상됐을 때 행복을 느꼈다. 그러나 별 음악회가 끝난 뒤 관객의 얼굴에 번지는 행복을 읽을 때나, 고맙다는 인사를 들을 때면 생애 최고의 행복감을 경험한다. 그렇게 나는 별 음악회를 통해 질리지 않는 행복의 의미를 알았고,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방법을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