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릴 적에는 지금 같이 세탁기가 없었다. 작은 빨래는 대충 우물을 길어서 했지만 이불이나 한복 빨래는 멀리 시냇가에 가서 방망이로 두드려야 했다. 빨래 비누도 귀한 때여서 잿물에 빨래를 담그었다가 몽근 겨로 만든 새까만 빨래 비누를 발라 가면서 손으로 문지르고 발로 밟아야만 때가 빠졌다. 이렇게 힘든 빨래를 구정 가까운 겨울에는 얼음을 깨고 해야 했다. 한 번은 나도 닭표 성냥 한갑과 짚 한 다발을 묶어 들고 어머니를 따라 빨래터에 간 적이 있었다. 어머니가 솥에 뜨겁게 삶은 빨래를 이고 간 빨래터에는 아무도 없었고 빨래판 주변에는 얼음이 얼어 있었다. 어머니는 빨래 방망이로 얼음을 깨뜨려 구멍을 내고 그 차가운 물속에 빨래를 헹구었다. 맨손으로 빨래를 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나는 약간 언덕진 곳에서 추위에 벌벌 떨며 바라보았다. 한참 일을 하시던 어머니가 나를 올려다 보았다.
"추우면 짚불을 피워라."
짚불을 피우자 어머니가 빨래를 멈추고 다가왔다.
"너무 춥구나. 내 손이 내 손 같지가 않다."
어머니는 이렇게 말하고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정 추우면 빨래 끝날 때쯤 다시 오너라. 들고 갈 것 도 있으니..."
어머니는 바가지로 물를 끼얹어 짚불을 끄더니 다시 빨래를 시작했다. 나는 좋아라 하고 집에 왔으나 따뜻한 아랫목에 누워 있다가 그만 잠이 들고 말았다.
"상기야, 상기야, 이것 좀 받아라."
나는 깜짝 놀라 방문을 차고 나왔는데 어머니는 어느새 토방까지 올라와 서 있었다. 머리에는 빨래가 담긴 큰 널판지를 이고 한 손에는 수대를 들고 있었다. 나는 송구해 어쩔 줄을 몰랐다. 어머니는 아무 말도 없이 마당을 가로 질러 긴 철사줄에 이불빨래를 걸쳤다. 하얀 무명 빨래가 바람에 펄럭펄럭 성화난 듯 나부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