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뉴욕시의 겨울은 4월이 돼도 추위가 누그러들 줄 몰랐다. 혼자 사는 데다 앞을 보지 못하는 장님인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집안에서 보냈다. 마침내 추위가 가시고 봄이 성큼 다가온 어느날. 나는 지팡이를 들고 산책을 나왔다. 얼굴에 내리쬐는 햇볕이 한없이 따사로웠다. 조용히 길을 걷고 있는데 이웃사람이 날 불렀다. 그는 내가 가는 곳까지 차로 태워 주겠다고 했지만, 나는 정중히 거절하고 혼자 걸었다. 모퉁이에 도착하자 습관대로 걸음을 멈췄다. 파란신호등이 들어올때 사람들과 같이 길을 건너기 위해서였다. 차 소리가 멈춘지 꽤 오래됐는데도 주위에는 사람들이 없었다. 나는 참을성 있게 기다리며 어릴 적 학교에서 배운 봄 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때 갑자기 강하면서도 듣기 좋은 남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굉장히 쾌활한 분이신 것 같군요. 제가 함께 길을 건너도 될까요?"
그의 정중한 물음에 나는 기분이 좋아져 고개를 끄덕이며 "네"라고 들릴 듯 말 듯한 소리로 대답했다. 그는 내팔을 가볍게 잡았다. 우리는 함께 천천히 길을 건너면서 날씨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처럼 아름다운 날씨를 즐길 수 있어 얼마나 좋으냐는 얘기도 했다. 길을 거의 다 건넜을 때쯤 자동차 경적이 사방에서 울리기 시작했다. 분명 신호가 바뀐 모양이었다. 우리는 간신히 길을 건널수 있었다. 나는 그 사람쪽으로 돌아서서 감사 인사를 할 참이었다. 그런데 내가 말하기 전에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부인께선 제가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실 겁니다. 저 같은 장님을 도와 길을 건너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