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아름다울수록 운명은 혹독한가. 60년 가까운 기다림 끝에 다가온 짧은 만남. 그리고 영원한 이별. 지난달 80세로 세상을 떠난 한 그리스 할머니가 온 유럽인의 가슴을 적시고 있다. 안젤리키 스트라티고우. 이 할머니는 '아모레 셈프레(영원한 사랑)'라는 이탈리아어로 끝나는 두 통의 엽서를 가슴에 끌어안고 숨을 거뒀다. 할머니가 숨지기 직전 몇 분동안 한 말은 "티 아스페토 콘 그란데 아모레(난 위대한 사랑을 안고 그대를 기다렸어요)." 시간은 1941년 8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20세의 이탈리아군 소위 루이지 수라체는 그리스 펠로폰네소스 반도 서북부의 아름다운 항구도시 파트라이로 파견된다. 행군을 하던 루이지는 집 앞에 앉아 있던 안겔리키 스트라티고우에게 길을 묻는다. 처녀는 크고 검은 눈이 매력적이었다. 청년은 의젓하며 정이 많은 장교. 둘은 서로에게 마음이 끌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길을 가르쳐준 처져가 굶주림에 지쳐 있음을 눈치채고 갖고 있던 전투식량을 나눠줬다. 루이지는 사흘이 멀다 하고 먹을 것을 들고 그녀의 집을 찾았다. 루이지는 그리스 말을, 안겔리키는 이탈리아 말을 배웠다. 짧았던 행복. 그러나 이 행복은 43년 이탈리아가 항복하면서 끝난다. 급거 귀국해야 했던 루이지는 안겔리키를 찾아 손을 한 번 잡게 해달라고 간청했다. 하지만 적군 장교와 사귀는 것을 다른 사람이 볼까 두려워한 그녀는 끝내 거절했다. 대신 떨리는 목소리로 "전쟁이 끝나면 결혼해 달라" 는 루이지의 청혼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전쟁이 끝난 후 루이지는 고향인 이탈리아 남부 렉지오 칼라브리아로 돌아갔다. 그곳에서 루이지는 안겔리키에게 계속 편지를 띄웠다. 당시 그녀는 고모집에 살고 있었다. 하지만 조카가 적군과 연애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던 고모는 편지를 중간에 가로채 없애버렸다. 메아리 없는 편지를 계속 보내던 루이지는 천일째 되던 날 드디어 그녀를 잊기로 결심했다. 루이지는 곧 결혼을 했다. 아들 하나를 둔 평범한 삶이 계속 됐다. 그러나 부인이 96년 세상을 떠나자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가 그의 가슴 속에서 되살아났다. 그는 파트라이의 시장에게 사연을 담은 편지를 냈고, 시장은 현지 스카이 방송사 기자들의 도움을 얻어 아직도 그 도시에 살고 있던 안겔리키를 찾아냈다.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올 줄 알았어요." 소식을 들은 안겔리키의 첫 마디였다. 안겔리키의 연락을 받은 루이지는 얼굴을 가리고 한없이 울었다. 그녀가 60년 가까운 옛날의 결혼 약속을 여전히 믿으며 평생을 독신으로 살아 왔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지난해 2월의 성밸런타인데이에 둘의 감격어린 재회가 이뤄졌다. 파트라이를 방문한 루이지는 또다시 떨리는 목소리로 청혼했고 안겔리키는 벅찬 가슴으로 받아들였다. 루이지는 77세, 안겔리키는 79세였다. 1년의 절반씩을 각각 그리스와 이탈리아에서 지내기로 한 루이지와 안겔리키의 달콤한 계획은 안겔리키가 앓아누운 끝에 훌쩍 하늘나라로 떠나면서 꿈이 돼버렸다. 사망일은 1월 23일로 예정됐던 결혼식을 2주일 앞둔 9일이었다. 루이지는 아직도 그녀의 죽음을 모르고 있다. 그 자신이 몸이 아파 병원에 입원했고, 주변에서 비밀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혼식도 연기된 것으로 안다. 지금도 그는 매주 토요일 아침이면 펜을 들어 '영원한 사랑'으로 끝나는 엽서를 쓴다. 엽서는 그녀의 무덤앞에 쌓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