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를 갔습니다. 집안의 가재도구를 모두 꺼내어 다시 정리하느라 어수선했습니다. 빨리 일을 끝내려는 욕심에 마음이 급했고 그럴수록 일은 더욱 더뎌가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때 남루한 옷차림에 핼쑥한 얼굴을 한 젊은 여자가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한참을 머뭇 거리더니 말했습니다.
"아저씨, 쌀 좀 주세요. 시어머니가 누워 계시는데 죽을 쑤워 드릴 쌀이 없어요."
힘없는 그녀의 목소리가 애처로웠지만 그때 저는 몸과 마음에 여유가 없었습니다.
"다음에 오십시오. 지금 정신이 없어서....."
그리고는 하던 일을 계속했습니다. 그러나 그 여자는 내 주번을 서성이더니 나와 눈이 마주치자 다시 말했습니다.
"조금이면 됩니다. 조금이라도....."
그때 옆에서 이 말을 듣던 짐 부리는 사람이 참지 못하고 말했습니다.
"아, 동사무소에나 가보십시오. 거기엔 영세민에게 쌀을 무료로 준다오. 왜 남의 집에 와서 그러시우. 어서 동사무소로 가 보라니까요."
퉁명스러운 말투에 그녀는 고개를 수그린 채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대충 짐을 옮기고 집안으로 들어가 아내에게 그 여자 얘기를 했습니다. 얘기를 들은 아내가 버럭 화를 냈습니다. 오죽했으면 생면부지의 사람에게 돈도 아니고 쌀을 달라고 했겠느냐는 아내의 말에 저는 할 말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황급히 나가 그녀를 찾아보았지만 그녀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조금이라도.....' 라고 끝은 맺지 못한 그녀의 말이 하루종일 귓가에 맴돌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