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2월 말이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어언 칠 년 동안 사귀어온 친구들과 어울리던 날이었다. 일차로 어울리던 날이었다. 일차로 호프집에서 술을 마신 뒤 이차로 포장마차에 가서 한잔 더 하기로 하였다. 이런 저런 이야기에 시간은 깊어 갔고 점점 배가 고파왔다. 그때 김이 모락모락 나는 오뎅 국통 옆에 가지런히 누워 있는 김밥이 눈에 띄었다. 주인 아주머니는 옆 포장마차에 수다를 떨러 가셨는지 계시지 않았다. 돈도 넉넉지 못한 상황에서 일단 먹고 보자는 결론이 내려졌다. 사등분을 해서 한 조각씩 입에 넣었다. 그런데 나중에 돌아오신 아주머니는 아무런 눈치를 채지 못 하시는 것이었다. 뱃속에서는 김밥 밥알이 꿈틀거리는데 겉으로는 태연한 척 가장하려니 기분이 영 안 좋았다. 술자리를 마치고 일어서려는데 아주머니는 그 새 또 자리를 비우셨다. 내가 조금 기다리자고 하니 녀석들이 "그냥 갈까?" 하는 것이었다. 그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결국 동의하고 말았다. 한 사람씩 나서면서도 찜찜한 기분은 떨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일이 벌어진 아상 최선을 다해 줄행랑쳤다. 비록 장난기가 발동하여 그런 행동을 하긴 했지만 주인 아주머니의 속상해하시는 모습이 눈에 선해 마음이 영 편치가 않았다. 다음날 새벽, 같은 시간에 나는 다시 그 포장마차를 찾아갔다. 아주머니는 나를 알아보셨다.
"혹시 어제...." "예, 맞습니다. 아주머니 기다리다 안 오시길래 시간이 너무 늦어 그냥 돌아갔습니다. 장사하시면서 그렇게 자리를 오래 비우시면 어떡합니까. 얼마였죠?"
능청스럽게 술값을 지불하고 돌아서는 내 모습이 우습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대견하게 느껴졌다. 포장마차 주변에 흐르는 유동천의 풍경이 왠지 아름답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