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달리 이야기를 잘 꾸며 쓰는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는 오늘도 창가에 앉아 무언가를 열심히 쓰고 있다.
"흥복이는 오늘도 글을 쓰고 있구나."
눈이 작은 흥복이는 적다 만 종이를 작은 손으로 가리며 그저 웃을 뿐이다.
"어디 조금만 보면 안 될까?" "아직 다 안 썼어요." "그래 알았다. 다 완성이 되면 선생님도 읽고 싶은데, 읽을 수 있을까?" "네."
의사 표현을 잘 안 하는 흥복이에게 나는 언제나 여기까지만 묻곤 한다. 흥복이도 다 묻지 않는 내가 고마운지 마냥 미소를 띄울 뿐이다. 청소가 끝나고 교실을 빠져 나가는 장난꾸러기 아이들을 나는 흐뭇해하며 바라보고 서 있었다.
"선생님!" "응, 아직 안 갔니?" "예, 그런데요.... 지금 생각하는 꿈이 커서도 꼭 그렇게 꼭 그렇게 될 수 있나요?" "글세, 흥복이 꿈이 뭔데?" "......" "열심히 노력 하면 꼭 되지." "어떻게요?" "열심히 공부하면 의사, 선생님, 과학자,대통령도 될 수 있지." "네에, 안녕히 계세요."
흥복이는 시원한 대답을 얻지 못 했는지 인사를 꾸벅 하고는 교실문을 나섰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의 가정환경을 조사해서 모아두었던 서류철을 꺼내들었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흥복이 것은 없었다. 다시 확인하지 않고 그냥 묶어 정리한 것이 실수였다.이튿 날 나는 흥복이를 불러 물었다.
"오늘 흥복이 집을 방문해도될까?" "어머니가 안 계세요." "어디 가셨니?" "네." "그럼 언제 시간이 날까?" "저녁에 오세요." "직장에 나가시니?" "회사말이에요?" "응." "아니오." "그럼 어디서 일하시는지 물어봐도될까?
흥복이는 고개를 숙이며 "시장에요" 라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짐작은 했지만 이야기를 듣고 나니 어떻게 해야 좋을지 당황스러웠다. 명색이 담임인데 두 달이 넘어서야 이런 사실을 알게 된 것이 부끄러웠다.
"그렇구나. 선생님이 가정환경에대해 써 놓은 종이들을 잃어버려서 물어 본거야."
나는 흥복이의 손을 한 번 잡아주고는 그냥 보냈다. 더 물으면 그 아이에게 상처가 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오늘은 글짓기를 한다고 했죠." "예." "제목은 꿈 이에요. 자, 시작하세요."
웅크리고 시작하는 아이, 짝과 재잘거리며 쓰기 시작하는 아이들이 나에게는 모두가 행복해 보였다. 흥복이는 여전히 뭔가를 열심히 쓰고 있었다.
"자, 다 쓴 사람은 여기에 내고 가요."
넉넉히 시간을 주었는데도 흥복이는 마칠 생각을 않고 있었다.
"흥복아, 다 써서 내일 가져 올래?"
흥복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들의 하교 지도를 하고 돌아오는길에 급히 교실에서 나오는 흥복이를 만났다. 그 앤 나에게 꾸벅 인사를 하면서 빙긋 웃고는 복도 끝으로 뛰어가 버렸다. 작은 덩치의 뒷모습이 사라지는 것을 보고 교실로 들어왔다. 잘 정리된 책상위에 흥복이가 놓고 간 글이 있었다. 그 동안 숨겨 왔던 그 글이었다. 난 흥복이의 글을 읽고서야 내가 그 아이에게 준 상처를 생각하게 되었다. 언젠가 나에게 조심스럽게 다가와 '꿈' 에 관해 물어 봤을 때 내가 그 아이의 꿈을 얼마나 짓밟아 놨는지 이제서야 알 것 같았다. 말이 없는 조그만 아이의 꿈은, 세 살짜리 아들을 안고 가게에서 안고 나오는 것이었다. 단지 그것 뿐이었다. 얼마나 소박한 꿈인가 하지만 아버지가 안 계신 흥복이는 언제나 그것을 꿈꿔 왔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