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컨이 고장난 사무실은 찌는 듯한 더위 때문에 쉴새없이 돌아가고 있는 선풍기를 무색하게 했다. 모두들 더위에 지쳐누구 하나 말을 하지 않았고 사무실 앞 커다란 나무에서 나는 매미소리만이 요란하게 들려올 뿐이었다.
"여기가 동사무소 맞수?"
오랜 침묵을 깨는 소리에 나는 고개를 들었다. 하얀 머리에 중절모자를 쓰고 지팡이를 짚은 할아버지 한 분이 서 계셨다.
"예, 할아버지. 어떻게 오셨는데요?" "갱노증(경로증)만들려고."
이빨이 빠졌는지 바람이 빠진 목소리로 할아버지가 말씀하셨다. 그래서 요즘은 경로증을 만들지않고 주민등록증만 있으면 된다고 말했더니 잃어버렸다며 다시 해 달라고 하셨다. 그래서 집에 가서 사진 두 장을 가지고 오시면 만들어 드리겠다고 설명해 드렸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돌아가셨다. 얼마나 지났을까. 그 할아버지가 다시 오셨다. 순간 나는 아연 질식해 입이 딱 벌어지고 말았다. 할아버지 손에는 커다란 초상화가 들려 있는 것이었다.
"아가씨, 사진 가져 왔는디."
할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시며 들고있던 초상화를 창구위에 턱 하고 올려 놓으셨다.
"예?"
할아버지는 주민등록증에 쓸 증명사진으로 집에 걸려있던 대형 초상화를 가지고오신 것이었다. 나는 웃음을 참지 못해 큰 소리로 웃어 댔고, 이 모습을 계속 지켜보았던 사무실 사람들도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한참을 웃고 나니 다시 사진을 가지러 가야 하는 할아버지께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