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를 이틀 앞둔 날이었다. 쪽진 하얀머리가 누부신 할머니 한분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민원실을 찾아오셨다. 주민등록증을 재발급받기 위해 먼길을 오신 것이었다. 그런데 면사무소에 가면 다 알아서 처리해 준다는 이웃 사람의 말만 믿고 사진을 빠뜨리고 그냥 오셨다.
"할머니, 사진이 없으면 주민등록증을 만들 수가 없어요."
내 말에 할머니는 아쉬움이 가득한 표정으로 중얼거리셨다.
"꼭 투표를 해야 하는데, 이 일을 어쩌나...."
여러 가지 일로 짬을 내기 힘들었지만, 결국 나는 할머니를 모시고 사진관을 찾아나섰다. 사진관에서 할머니의 증명사진을 찍고, 한 삼십여 분을 기다리자 사진이 나왔다. 할머니는 주머니에서 꼬깃꼬깃 접어 둔 만 원을 꺼내 사진 값을 지불하셨다. 그리고는 남은 돈 사천 원을 내 손에 꼭 쥐어 주시며 말씀하셨다.
"처자, 고마워. 덕분에 투표를 할 수 있게 됐어. 이 늙은이에게 하두 고맙게 해 줘서 주는 거니까 작은 정성이나마 받아 주구려."
깜짝 놀란 나는 할머니의 호의에 감사했지만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몇 차례 사양으로 할머니는 겨우 그 돈을 호주머니에 넣으셨고, 푸근한 미소를 띄우며 다시 말씀하셨다.
"처자, 고마워. 꼭 좋은 데 시집가게나."
그날 밤 나는 한 표의 행사를 너무도 소중하게 여기시는 할머니의 마음에 나 자신의 행동들을 뒤돌아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