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에 아버지가 군고구마를 사 오셨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군고구마를 쪼개어 보슬보슬한 노란 속살을 한 입 베어 먹다가 문득 예전에 시장 입구에서 군고마 장사를 하시던 한 아저씨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저씨와의 인연은 내가 유치원에 다니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는 엄마와 함께 시장에 갔다가 복잡한 시장통에서 그만 엄마 손을 놓치고 말았다. 울며불며 사람들 틈을 헤집고 다니는데 저만치 장작을 패는 아저씨가 눈에 들어왔다. 매서운 바람에 귀와 볼이 빨갛게 얼어붙은 나는 연기가 피어 오르는 그곳은 왠지 따뜻할 것 같다는 생각에 그리로 다가갔다. 눈물 콧물 범벅이 된 내 얼굴을 보더니 아저씨가 웃으며 말했다.
"엄마를 잃어버렸나 보구나. 여기에 있거라. 여기 가만 있으면 엄마가 오실게다."
그리고 아저씨는 흰 연기가 펄펄 피어 오르는 군고구마를 후후 불어 내 손에 쥐어 주셨다. 마침내 엄마가 날 찾아오셨는데 엄마의 얼굴에도 눈물자국이 나 있었다. 그때 난 고구마통 옆에 쭈그리고 앉아 얼굴이 온통 까매진 것도 모르고 군고구마를 호호 불어 가며 맛있게 먹고 있었다. 그 모습이 우습기도 하고 마음이 놓이기도 하셨는지 엄마는 군고구마 아저씨를 바라보며 호호 하고 웃으셨다. 옆에 서 있던 아저씨도 따라 웃으셨는데 두 분의 미소가 얼마나 밝았는지 모른다. 그 후 나는 짐으로 돌아갈 때면 늘 군고구마 아저씨를 찾아갔다. 아저씨는 내가 올 시간이면 군고구마를 알맞게 식혀 놓으셨다. 어쩌다 돈이 없어 그냥 지나치려 해도 아저씬 여지없이 내 이름을부르셨다.
"은이야, 오늘은 군고구마 안 먹니?"
그 고마운 군고구마 아저씨는 이제 더 이상 볼 수가 없다. 그 달짝지근한 고구마 맛만이 혀 끝에 남아 있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