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양동 파출소에서 근무를 시작하면서부터 주변에 위치한 시장 때문에 나는 아침부터 다음날 새벽 세 시까지 근무를 한다. 요즘같이 싸늘한 공기가 피부 깊숙이 파고드는 새벽이면 잠을 제대로 못잔 탓에 더욱 짜증스럽다. "아! 도로 중앙까지 나오시지 말래두요!" "여기다 차를 세우시면 어떡합니까!" 오늘 새벽이었다. 아침을 여는 시장 사람들에게 이렇게 이유없는 짜증을 부렸다. 한참 교통 정리를 하다보니 손끝이 시려왔다. '이런 장갑을 두고 왔잖아!' 장갑을 두고 온 나는 어쩔 수 없이 추위를 참고 서 있었다. 그 추위가 나를 더 짜증나게 했다. "수고하시네요. 이거 끼고 하십시오." 지나가던 택시가 내 앞에 스르르 멈추더니 기사 아저씨가 장갑을 내미셨다. 그리고는 택시를 몰고 휑하니 떠나 버리셨다. 고맙다는 말 한마디 못했는데..... 장갑을 끼고 조금은 따뜻해진 나는 한결 나아진 마음으로 교통정리를 했다. 차들에게 진행 신호를 하는 순간이었다. 한 할머니가 갑자기 중앙선으로 뛰어드는 바람에 중앙선엔 나와 할머니 둘이서 서 있게 되었다. "이제부터는 이렇게 하시면 안 됩니다." 하면서 일장 연설을 늘어 놓으려는데 할머니께선 연신 허리를 굽신거리셨다.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저기 시장에 내 물건을 두고 와서요. 미안합니다." 할머니의 공손한 태도에 오히려 내가 더 미안해졌다. "할머니, 할머니 물건은 꼭 있을 겁니다. 여기 시장 분들은 모두 정직하시니까요. 하지만 다음부터는 이러지 마세요." 금세 마음이 풀어졌다. "아들같은 사람이 참 싹싹하구만." 할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시며 방긋 웃으셨는데 꼭 어릴 적 내 할머니를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찡했다. 다시 신호가 바뀌자 할머니는 "총각 수고해"라고 크게 말씀하신 뒤 찻길을 건너 가셨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이른 새벽부터 열심히 움직이는 사람들이 모두 내 가족처럼 여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