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거운 책가방을 드에 양손에는 실내화 주머니, 도시락 가방, 준비물 가방을 주렁주렁 들고 아침마다 정류장까지 기를 쓰고 달리던 중학교 시절, 그때 나는 마치 달리기 선수가 된 듯했다. 일분만 늦어도 버스를 놓치고, 그 버스를 놓치면 지각을 하기 때문에 매일 아침 달려야 했다. 그렇게 있는 힘을 다해 달려서 버스에 오르면, 옆으로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이 꽉찬 사람들 때문에 또한번 숨이 차 오르곤했다. 아침마다 만원 버스에 시달리다 지친 나는 고민 끝에 한가지 기발한 방법을 생각해 냈다. 가까운 동네에 사는 친구 몇 명을 모아 봉고차를 빌려 타고 다니기로 한 것이다. 내 생각에 찬성하는 친구들이 제법 많아 우리는 바로 봉고 한 대를 빌릴 수 있었고, 그 지긋지긋한 만원 버스에서 해방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봉고차로 함께 통학하던 지현이가 조금씩 늦게 오기 시작했다. 우리는 지현이를 기다리느라 꽤 여러번 지각할 고비를 넘기곤 했는데, 결국은참다 못한 친구들이 지현이에게 불만을 털어 놓으며, "왜 자꾸만 늦냐"고 따져 물었다. 그러나 지현이는 얼굴만 빨개진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며칠 뒤 우연히 지현이와 단둘이 만날 기회가 있었다. 지현이가 늦잠 때문에 지각하는 것이 아닐 거라고 생각했던 나는 조심스럽게 "집에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지현이는 고개를 저었다. "아침에 일찍 집을 나서서 골목길을 걷다 보면 한 쪽 다리가 불편한 고등학생 오빠가 저만치 내 앞에서 힘겹게 걸어가는 것이 보여, 다른 사람들은 모두 그 오빠 앞을 휙 지나쳐 바쁘게 걸어가는데 난, 난 차마 그렇게 할 수 없더라구. 열심히 걷고 있는 오빠 옆을 빠르게 지나쳐 버리면 그 오빠가 너무 속상할 것 같아서....." 쑥스러운 듯 싱긋 웃으며 대답하는 지현이가 그날따라 더 예뻐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