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곳은 조그만 아파트 단지이다. 우리 집 바로 아래층으로 지난주 일요일에 한 가족이 이사를 왔다. 어린 아기를 둔 젊은 부부가 부지런히 짐을 날랐고, 저녁 무렵이 되어서야 분주하던 아파트 단지안은 잠잠해졌다. 저녁을 짓고 있는데 '따르릉' 전화벨이 울렸다. 옆동에 사는 이 동네의 소식통인 지훈 엄마였다. 지훈 엄마가 시장에 다녀오다 보니 그 새댁이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무슨 이야길 하고 다닌다는 것이었다. 무슨 말일까 궁금하다며 촉각을 곤두세웠다. 그때 '딩동'하고 현관벨이 울렸다. 급히 전화를 끊고 나가보니 그 새댁이었다. "안녕하세요. 오늘 이사온 사람입니다. 다름이 아니고 저희 아기가 이가 나기 시작하서든요. 그래서 밤이면 잇몸이 가렵고 아픈지 막 울어대네요. 혹 아기의 울음 소리 때문에 잠을 깨시더라도 이해해 주세요. 얼마 동안만요." "그 얘기를 하려고 이 추운 날 집집마다 다니는 거예요? 새댁도 참 물 그런걸 가지고....." 새댁은 거듭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돌아갔다. 그날 밤 새댁의 말대로 자지러지는 아기의 울음 소리가 아파트 단지안에 울려 퍼졌다. "웬 아기 울음 소리지?" 남편이 부스럭 거리며 잠에서 깨어났다. "새로 이사 온 아래층 아기예요. 아기가 이가 날 때라 자꾸 운다고 새댁이 집집마다 인사를 다니지 뭐예요. 새댁이 참 예의가 바른 사람같아요. 그러니까 아기의 이가 다 날 때까지만 참아요" 나는 남편에게 저녁에 있었던 일을 다 이야기해 주었다.남편도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밤 늦게까지 아기 울음소리는 계속됐지만 어느 누구도 잠을 깨웠다며 화를 내는 사람은 없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