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체부 아저씨였다. 도장을 가지고 나오니 꽤 큼지막한 꾸러미를 내밀었다. 주소도 맞고 분명 내 앞으로 온 것은 맞는데 겉에 쓰인 '안춘기'라는 이름의 주인공은 선뜻 떠오르지 않았다. 뜯어 보니 그 속엔 질 좋은 면양말이 어른 것, 아이들 것 해서 가지가지 들어 있었다. '양말? 안춘기?'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혹시나 싶어서 친정 어머니께 전화를 걸었다. "춘기가 네게도 양말을 보냈어? 녀석두, 왜 너 중학교 다닐 때 잠시 우리와 함께 살았잖니." 어머니의 말씀을 듣고 난 그제서야 안춘기라는 사람의 모습이 떠올랐다. 춘기는 촌수로 따질 수 없을 만큼 아주 먼 친척 되는, 굳이 따지자면 어머니의 조카뻘 되는 사람이었다. 춘기의 어머니는 남편을 잃고 혼자 춘기를 비롯한 일곱 형제를 키우셨는데 한 입이라도 줄일 요량으로 춘기가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서울에 있는 양말공장에 취직시켰다. 딱히 있을 만한데가 없던 춘기는 우리 집에서 묵게 되었다. 이른 아침 동갑내기인 춘기와 나는 어머니가 싸 주신 도시락을 들고 함께 집을 나섰다. 그 애는 양말공장으로 나는 학교로, 낮에는 양말공장에서 밤에는 무슨 식당에선가 일을 하며 억척스럽게 돈을 모으는 춘기는 우리 집엔 사과 한알 사오는 일이 없었다. 공짜로 재워주고 먹여 주어도 어머니는 춘기를 학교에 보내지 못하는 것을 늘 미안해 하셨다. 그러던 어느날 춘기는 양말 꾸러미를 어머니 앞에 내놓았다. 공장에서 흠이 생겨 버려야 할 것들이었는데 딴엔 자식처럼 대해 주는 어머니에 대한 보답이었던 듯했다. 그러나 제대로 된 양말이 한짝도 없어서 어머니는 그 양말을 다시 깁고 꿰매야 했다. 그것을 본 춘기가 몹시 미안해 하자 어머니는 "춘기 때문에 온 식구들이 따뜻하게 겨울을 날 수 있겠다."하시며 춘기의 어깨를 다독거리셨다. 그 춘기가 소포를 보내 온 것이다. "그래, 그 춘기가 양말공장 사장이 되었다는 구나. 그간 연락도 없다가 이십년 만에 전화를 해서는 네 주소도 묻더라. 그래서 알려 주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