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시절, 나는 넉넉지 않았던 가정 형편으로 친구들의 자취방을 전전하며 지내야 했다. 친구들의 구박아닌 구박과 눈치를 받으며 어렵게 학교 생활을 하고 있을 때 장선배가 내게 다가왔다. 당시 장선배는 학교에서 '살아있는 천사표'로 통하는 사람이었다. 선배는 오갈 데 없는 처지에 있던 내게 자신의 자취방에서 함게 지내자며 흔쾌히 나를 반겨 주었다. 나는 장선배의 따스한 마음 씀씀이에 깊이 감동했다. 둘이 누우면 꽉 찼던 장선배의 조그만 자취방에서 나는 이년 동안 선배와 함께 살았다. 학교 수업이 마치면 조무래기 학생들을 모아 공부를 가르치면서 학비 벌기에 바빴지만 나는 늘 용돈이 부족했다. 내 주머니 속엔 언제나 교통비만 달랑 들어 있었기에 점심을 거르기가 일쑤여거, 나는 아예 점심 시간이 되면 아무도 몰래 학교 뒷동산에 올라가 노랫가락 몇 소절 흥얼거리며 시간을 때우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수업에 들어갔던 장 선배가 혼자있는 나를 발견하곤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강의실로 갔다. 그날 저녁, 낡아빠진 앉은뱅이 책상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내게 장선배가 누런 봉투를 내밀었다. "아니, 웬 편지예요? 선배님 저에게 연애 편지 심부름시키시는 거예요?" 내가 이상해서 묻자, 선배는 그저 씩 웃기만 했다. 궁금해서 얼른 봉투를 열어 본 나는 코끝이 찡해졌다. 봉투 안에서 나온 것은 바로 학교 식당에서 사용하는 푸른색 식권 세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