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삼학년 때였던 걸로 기억된다. 동네 골목에서 나랑 같은 또래의 여자아이들 몇 명과 고무줄 놀이를 하고 있었다. 한참 재미있게 놀다가 무슨 일 때문인지 말싸움이 벌어졌다. 서로 네가 잘못했다고 티격태격 다투다가 너무 화가 난 나는 단짝 친구에게 아주 못된 말을 뱉어 버렸다. "넌 참 좋겠다. 엄마가 둘이니까!" 그 순간 갑자기 조용해졌고, 친구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친구 아버지는 본처와 첩을 같은 동네에 두고 살았는데, 친구는 첩을 작은 엄마라고 부르고 있었다. 그때 그 친구의 친엄마가 지나가다 우리를 보고 다가와서 말을 건넸다. "왜 그러니? 못나게 길바닥에 앉아 울고." 난 큰일났다 싶어서 잔뜩 긴장한 채 그 친구의 입만 뚫어지게 쳐다보며 줄행랑을 칠 준비를 했다. "엄마, 고무줄하다 넘어졌어." 친구는 아무렇지도 않게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순간, 너무나 착한 내 친구의 대답에 난 어쩔 줄 모랐다. 그 친구에게 너무 고맙고 미안했다. 하지만 마음으로만 그쳤을 뿐 이십년이 지난 지금도 사랑하는 친구에게 그때 그 사건에 대해선 용서를 빌지 못했다. 핑계같지만 괜히 얘기를 꺼내면 친구의 마음을 또 한번 다치게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날 이후 내 마음속엔 늘 무거운 돌덩이 하나가 들어 앉아 있는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