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산훈련소에서 신병 훈련을 마치고 자대에 배치된 지 한달이 다 되어 가던 어느 날, 새벽 한 시까지 각개 전투 및 야간 행군 훈련을 받은 우리 소대원들은 지칠대로 지쳐 있었다. 게다가 나는 훈련도중에 다친 발목 때문에 더했다. 하지만 취침 전 선임하사의 장비 점검 구령이 떨어져 우리는 쉬지는 못하고 장비 손실을 해야만 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대검이 없었다. 눈앞이 캄캄했다. 나는 전에 수통을 잃어버린 박일병이 연병장을 이십바퀴나 돌았던 걸 생각하며 그날 밤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중대장님이 직접 장비 점검을 하는게 아닌가. 이마에 식은 땀이 흘렀다. 발목의 통증도 점점 더 심해졌다. 삼십분이 흘렀을까.ㅇ장비 점검을 마친 중대장님이 나타났다. "요즘 정신 나간 사병이 있다. 목숨보다 귀한 장비를 분실해? 그것도 대검을!" 침묵이 흘렀다. "이런 썩어빠진 정신으로 어떻게 적과 사워 이길수 있겠나? 대검 잃어버린 김태성 상병은 완전 군장으로 연병장 삼십바퀴 돌아! 실시!" '아니 이게 어찌된 일인가. 대검을 잃어버린 건 난데?'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에 나는 발목 통증도 잊은 채 내무반으로 뛰어들어가 나의 장비부터 살펴보았다. 그런데 분명히 없었던 대검이 있는게 아닌가. 연병장에는 김 상병이 완전 군장을 한 채 땀을 뻘뻘 흘리며 뛰고 있었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질 무렵 거의 쓰러질 듯한 모습으로 김상병이 내무반에 들어왔다. 모두들 말없이 쳐다봤다. "야! 구 이병 니가 뛰었다카모 아마 황천길 갔을끼라. 내 대검 이리주라." 지난 밤에 불침번이었던 김태성 상병은 잠을 이루지 못한 나의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고 나의 고민을 눈치챈 것이다. 김상병은 나의 머리를 한 대 쥐어박으며 말했다. "요즘은 쫄병들 때문에 일요일도 없다카이." 이틀 뒤 김상병은 나에게 대검 한자루를 구해줬고, 그 뒤 우리는 친형제처럼 지냈다. 김상병의 따뜻한 마음은 지금도 나의 마음 한구석에 소중한 추억으로 자리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