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모처럼 여유로운 시간을 가지며 당신에게 글을 쓸 수 있어 참 좋구려. 여보, 난 말이오. 남들처럼 돈 많이 벌어 당신을 편안하게 해 주지 못하는 내가 미웠소. 당신이 그런 나의 맘을 몰라주고 내 자존심을 건드릴때면, 내가 한심하게 여겨지고 남편으로서 인정받지 못하고 무시당하고 사는 것 같아 비참한 기분도 들었소. 그럴때면 야속해서 당신을 쳐다보기도 싫었다오. 하지만 아름다운 숲속에도 썩은 나무가 있듯이, 보기 싫은 건 당신의 전부가 아니라 아주 일부분이라는 걸 깨달았소. 오랜만에 당신이 파마를 하고 나타나도 눈치 못 채는 사람이면서 왜 그리도 당신한테 바라는 것은 많은 지...... 지난 봄, 내 생일날 나는 당신이 밤새워 장만한 푸짐한 생일상을 받고서 얼마나 미안했는지 모른다오. 결혼해서 십오 년동안 당신의 생일을 한번도 기억해 주지 못한 나로서는 그 자리가 마치 부조금없이 남의 잔칫상을 받은 것 마냥 부담스럽기까지 했소. 돌이켜보면 나는 당신을 원망하고 철부지처럼 심술과 투정을 부린 때가 많았소. 우리는 백발이 되어 버린 지금에서야 당신이 내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알 것 같소. 참. 생일날 선물 꾸러미와 같이 준 편지는 정말 고마웠소. 철부지 남편을 무한한 사랑으로 이끌어 준 당신의 마음을 또 한번 느꼈다오. 어느덧 늘어난 주름살을 바라보며 생각한다오. 당신과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나에게 주어진 이 하루하루가 크나큰 축복이라고...... 생각나오? 뜨거운 커피를 마시며 장래를 진지하게 고민하던 결혼 전 말이오. 이제부터라도 그때의 약속을 차근차근 지키고 싶소.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나를 믿고 묵묵히 따라 준 당신에게 늘 감사하오. 사랑하는 정찬 엄마, 아무리 바빠도 가까운 시일 내에 단둘이 오븟하게 가까운 곳이라도 여행 한번 다녀옵시다. 진짜로 잘해 줄 거요. 약속하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