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때의 어느 여름날이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마치 하늘이 뚫린 것처럼 비가 억수같이 내렸습니다. 학교에 어떻게 갈까 걱정하는 저를 보더니 어머니께서는 창고에서 가져온 비닐로 제 몸을 둘둘 말아주셨습니다. 백원만 있으면 버스타고 금방 가는데, 걸어가라며 비옷도 아닌 비닐을 내놓은 어머니가 참으로 미웠습니다. 그런데 대문을 나서려는 순간 어머니께서는 저를 다시 불러 세우고 주머니에서 이백원을 꺼내 주시며 버스를 타고 가라고 하셨습니다. 돈을 들고 나와보니 커다란 느티나무가 있고 비닐하우스도 산산조각이 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비바람을 이기지 못해 계속 몸을 뒤로 젖혀지는데도 버스를 타지 않았습니다. 손에 쥐고 있는 백원 짜리 두 개 덕분에 하나도 겁이 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두 개의 동전에 불과하지만 제게는 그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돈이었습니다. 그때 당시 국제 캔디라고 해서 십원에 네게하는 사탕이 있었는데, 이백원이면 그 사탕을 무려 팔십개나 살 수 있었습니다. 비바람을 이겨낼수 있는 힘, 그것은 맛있는 사탕을 맘껏 먹을 수 있다는 희망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겨우 학교에 도착했는데 수업이 다 끝나도록 비바람을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집에 갈 때도 등교할 때랑 별로 달라진 것이 없었습니다. 비닐로 온 몸을 감사고 집을 향해 앞으로 걸어갔습니다. 그런데 하필 그럴 때 언니랑 마주칠 게 뭡니까. 언니는 저를 보자마자 다짜고짜 화를 냈습니다. "어머니가 너를 이렇게 그냥 보내든?" 나는 고개를 흔들며 자랑스럽게 손에 쥐고 있던 이 백원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러자 언니는 알밤을 때리며 저를 보고 "바보 멍청이"라고 했습니다. "무섭지 않았어?" "응 사탕 생각하니까 무섭지 않았어. 언니도 그랬잖아. 지금 공부하는거 힘들어도 먼 훗 날을 생각하면 힘들지 않다고 말이야." 저는 꽤 그럴듯하게 이야기했습니다. 조금 뒤에 언니는 제가 감기몸살로 며칠동안 앓아 눕게 될 거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은 사실이 되었습니다. 사흘 동안 심하게 앓았는데, 언니는 한시도 제 곁을 떠나지 않고 간호해 주었습니다. 그 뒤로 저는 종종 언니에게서 동전을 몇 개씩 받곤 했습니다. 지금은 백원이 껌값도 되지 않는 돈이고, 직장 생활을 하면서 그 몇십 갑절 되는 돈을 벌지만 버스비를 아낀 돈으로 사탕 팔십개를 살 수 있었던 그때가 더 행복했던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