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이 안경사인 관계로 나는 여로 종류의 사람을 많이 접하게 된다. 거만한 사람, 겸손한 사람, 부자인 사람, 가난한 사람..... 그렇게 여러 부류의 사람과 부대끼다 보면 그 중에서 유달리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우리 안경점에서 늘 안경을 맞추던 아저씨가 있었다. 시장에서 채소장사를 하는 아저씨와 오랫동안 거래하면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이남 삼녀의 자녀와 장모님가지 모시고 산다는 집안사정까지 훤히 알게 되었다. 어느 날 아저씨가 초췌한 모습으로 안경점에 들어오셨다. 머뭇머뭇 꺼내시는 얘기인즉 장모님 안경을 맞춰 드려야 하는데 가격이 비싸다고 한사코 싫다고 하신다는 것이다. 어려운 살림인지라 아내도 선뜻 나서지 못하고 아저씨 눈치만 보고 있는 것 같다며 아내와 장모님이 부담 느끼지 않고 자신에게 미안해하지 않도록 아주 저렴한 가격인 것처럼 얘기해 달라고 했다. 그리고 오만 원을 내놓으며 아내와 장모님 앞에선 정가에서 오만 원을 뺀 가격을 말해 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물론 좋다고 했고 며칠 뒤 올망졸망한 손자들과 아주머니, 아저씨의 손에 이끌려 할머니가 안경점에 오셨다. 할머니가 고른 안경은 정가가 십만 원이었다. 아저씨와 미리 짠대로 치면 오만원이었지만 할머니 표정으로 그것도 비싸다며 놀라실 것 같아 나는 가격을 만원이라고 말해 버렸다. '경로우대 특별 서비스'라는 그럴 듯한 거짓말까지 둘러대며 말이다. 할머니는 안경을 걸쳐 보더니 가격도 싸고 좋다며 자꾸만 거울을 들여다 보셨다. 할머니의 흐뭇한 얼굴을 보니 내 마음까지 환하게 밝아지는 듯했다. 아저씨가 지갑에서 돈을 꺼내려는데 진열대 밑에 있던 손자 녀석이 불쑥 고개를 내밀더니 꼬깃꼬깃 접은 천 원짜리 여섯 장을 내놓았다. 할머니 안경 해 드리려고 동생이랑 모은 것이라며 수줍게 웃는 꼬마의 말에 할머니와 아주머니의 눈자위가 점점 붉어지는 듯했다. 나는 그 만원도 차마 받을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