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겨울이 되면 까만 고무줄로 뜀박질을 하였다. 가난했던 내 어린 시절 추위를 잊으려고 더 열심히 했던 고무줄 놀이. 일 원에서 일 전까지 아꼈던 그 시절. 내 기억 속의 까만 고무줄은 가장 훌륭한 재활용품이었다. 나의 좋은 놀이기구가 돼 주었던 까만 고무줄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언니 등 온 식구의 낡은 팬티에서 빼낸 것으로 여러 번 매듭을 엮어서 만들어졌다. 고무줄이 워낙 오래된 것이엇기 때문에 얼마 뛰지 않아 끊어져 버리곤 했다. 내가 까만 고무줄을 대청나루의 기둥에 묶으면 다른 한쪽은 항상 할머니가 잡아 주셨다. 그러면 나는 말총 머리를 흔들며 신나게 고무줄을 넘나들곤 했다. 어쩌다 고무줄이 엉키기라도 하면 할머니와 나는 마당에 고무줄을 펼쳐놓고 할머니의 하얀 고무신과 내 고무신을 비벼 가며 "머리를 풀어라. 어서어서 머리를 풀어다오" 하며 중얼거렸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엉킨 고무줄리 잘 풀렸다. "에고, 내 강아지 참 잘한다." 할머니는 팔짝팔짝 뛰는 나를 지켜보며 즐거워 하셨고 나역시 할머니와 함께하는 고무줄 놀이를 무척 좋아했다. 하지만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나를 귀여워하시며 업어 키우셨던 할머니가 유난히 추웠던 그 해 겨울 동짓달에 돌아가시면서 나의 고무줄 놀이도 끝나고 말았다. 요즘은 까만 고무줄을 보기가 힘들다. 나는 할머니의 기일이면 할머니와 함께 했던 고무줄 놀이를 떠올리게 된다. "아주 공갈 염소똥. 십원에 열두 개." 한참을 뛰노라면 지켜보던 할머니가 오히려 숨이 차서 말씀하신다. "야아, 자빠진다. 너무 많이 뛰면 배 고픈게 쪼매만 뛰고 고마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