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에서 막 내리는데 어디선가 바람을 따라온 고약한 냄새가 코끝을 시큰거리게 하였다. 주위를 살피니 요란한 음악 소리와 함께 똥차가 다가오고 있었다. 인상을 잔뜩 찌푸린 사람들이 이리저리 똥차를 피해 가는 것이 보였다.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슬그머니 할머니 생각이 났다. 얼마 전이었다. 할머니 입에서 술 냄새가 풀풀 풍겨서 약주 하셨느냐고 여쭌 적이 있었다. 할머니는 빙그레 웃으며 말씀하셨다. "왜? 술 냄새 많이 나니? 소주 딱 한잔 마셨는데......" "아니요, 조금 나요. 할머니는 냄새 안 나세요?" 그러자 할머니는 금방 서글픈 표정을 지어 보이셨다. "그러고 보니 냄새란 걸 맡아 본 지도 꽤 오래되었구나. 어제는 저녁을 짓고 있는데 옆집 양반이 와서는 '이 집엔 뭘 하길래 이렇게 고소한 냄새가 진동하누'하더구나. 그래 '난 아무 냄새도 안 나는데'하고 되물었는데 가만 생각해 보니 이젠 내가 냄새도 맡을 수 없을 만큼 늙어 버렸다는 걸 알았단다. 사람은 늙으면 몸이 부실해지기 마련이지. 코도 그렇고....." 나는 어색해진 분위기를 바꿔 볼 양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에이, 할머니 거짓말이지요? 아무 냄새도 못 맡으실라구요." 할머니는 뭐라고 말씀하시려다가 혼자 중얼거리며 돌아서셨다. "죽기 전에 풀냄새라도 한 번 맡을 수 있다면....." 눈물이 글썽거리는 할머니의 눈을 떠올린 나는 냄새가 고약하다고 코를 틀어막고 피해 다니는 사람들을 보며 웬지 모르게 기분이 씁쓸해졌다.
학교 앞산의 단풍이 무척 고왔다. 나는 그 단풍과 들판에 핀 들국화와 억새를 한 움큼 꺽었다. 그리고 그것을 빈병에 꽂아 할머니방에 가져다 놓았다. 할머니가 코가 아닌 마음으로 가을 냄새를 맡으실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