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따라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저녁 무렵 친구들과 만나 몇차례 자리를 옮기느라 연신 마셔 댄 커피 탓이었습니다. 심호흡을 하면 좀 나을까싶어 창문을 활짝 열었습니다. 싸늘한 밤 공기가 가슴 깊숙이 들어와 남아 있던 노곤함을 씻어가 버리는 것을 느끼며 나는 무심코 이웃집을 내려다 보았습니다. 뭔가 희미하게 움직이는 것 같아 자세히 보니 이웃집 아주머니셨습니다. 아주머니는 잔뜩 구부리고 앉아 맨드라미 꽃대를 툭툭 치고 있었습니다. 이상하게도 그 아주머니의 손가락이 가늘게 떨리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무슨 소리! 평소에 그 아주머니는 너무 명랑하다 못해 수다스럽다고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지난 봄에 사고로 아들을 잃은 뒤 잠간 시무룩해 보이셨지만 요즘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특유의 수다를 되찾아 "아들 잃고도 너무 명랑하다"는 동제 아주머니들의 손가락질을 받던터였습니다. 나 역시 '매정한 모정'이라 생각하며 괜히 얼굴을 붉히곤 했습니다. 그런 아주머니가 한밤 중에 저렇듯 애처롭게 앉아 있는 이유가 뭘까 정말 궁금했습니다. 다음날 퇴근해서 집으로 돌아오니 어머니께서 그 이웃집 아주머니와 두런 두런 말씀을 나누고 계셨습니다. 나는 호기심이 발동해 귀를 쫑긋 세우고 두 분의 이야기를 엿들었습니다. 그런데 아주머니의 말씀을 듣고 있노라니 가슴이 점점 뜨거워졌습니다.
"아들 잃은 것 정말 창피한 일이지. 아무리 하늘의 뜻이라지만 그게 꼭 내 잘못인 것 같고.....내 죄지. 그렇지만 슬프다고 계속 징징대면 둘째는 어떡하고, 맨날 내 눈치만 슬금슬금 보는 데..... 지 형 얘기는 아예 꺼내지도 못하고그저 어떡하면 이 어미 기분 좋아질까 하며 마음 고생하는 놈. 그것 불쌍해서라도 툭툭 털고 일어나야지."
손등으로 눈물을 훔쳐내며 또 한 번 웃어 보이는 아주머니. 자식 잃은 슬픔을 다른 자식을 위해서 내색하지 못하는 그 서글픈 어머니의 마음이 너무나 슬펐습니다. 점점 더 수다스러워져 가는 아주머니의 깊고 깊은 슬픔과 사랑에 저는 끝내 눈물을 떨구고 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