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 이 년, 삼 년……. 제가 외갓집에서 생활한 지도 벌써 십이 년이 다 되어갑니다. 제가 아마 다섯 살 때였을 겁니다. 그 해 겨울은 유난히도 추웠습니다. 다섯 살의 어린 꼬마에겐 너무도 엄청난 겨울이었다고 기억됩니다.
"엄마! 내 아이들, 내 아이들을……."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시며 돌아가셨습니다. 할머니는 그때 아무 대답도 못하셨지요, 그러면서도 할머니는 "딸자식 못 살린 것도 원통한데 내가 너희들 셋을 못 키우겠니"하시며 이를 악무셨습니다. 그 각오로 지금까지 저희 삼남매를 힘들게 키우셨죠. 해질녘에 들어오셔서 밤새 팔다리가 아파 신음하시면서도 어김없이 새벽 네시가 되면 일어나서 빨래하고 밥을 지으시며 저희들의 도시락까지 싸 주셨습니다. 어떻게 그 지긋지긋한 일을 팔 년씩이나 하실 수가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초등학교 육학년 때까지도 할머니께서 무슨일을 하시는지 잘 몰랐습니다. 어느 날, t소풍에서 돌아오는 길에 멀리서 할머니를 보게 되었습니다. 세상에서 최고라고 믿엇던 할머니가 고무통에 벽돌을 가득 채워 머리에 이고 삼층 계단을 기어가듯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순간 세상이 깜깜하고 쉴새없이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하지만 어린 마음인지라 창피하다는 생각에 저는 그만 서둘러 그 자리를 피해 버렸습니다. 그날 밤 잠이 든 할머니 곁으로 다가가서 마음 속으로 용서를 빌었습니다. 그런데 가만 보니 할머니의 정수리 부분이 빨갛게 벗겨져 있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그대로 밖으로 뛰쳐나왔습니다. 눈물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할머니의 머리를 빨갛게 벗겨지게 한 것은 벽돌이 아니라 우리 삼남매였습니다. 남들은 자식 한명도 키우기 힘들어서 키운다, 못키운다 쩔쩔매는데 우리 할머니는 자식도아닌 외손주를 셋씩이나 키우시며 부모님보다 더 잘해 주시니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하고 소중한 분이 틀림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