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도편" 이영도(1916~1976)
여류 시인. 경북 청도 출생. 경남에서 오랫동안 여학교 교사 생활을 했음. 시조를 주로 썼으며 수필에도 많은 작품을 남겼음. 이영도의 시조들에는 민족 정서를 바탕으로 잊혀져 가는 고유의 가락을 재구현하려는 노력이 담겨 있다. 간절한 표현으로 자신의 정감을 다스리며 인생을 관조하는 세계를 보여 주었다.
매화
화목을 손꼽을 때 나는 먼저 매화를 생각한다. 겹겹이 둘러싼 겨울의 껍질을 비집고 맨 먼저 봄을 밝혀든 매화 봉오리의 연연하면서도 안으로 매운 동양의 여성 같은 정조! 바야흐로 동터 오르는 여명을 받으며 눈바람을 이겨 선 매화를 바라보면 내 가슴은 고향의 산하를 마주한 듯 반갑고 낯익은 모습에 눈물겨워 오는 것이다. 모든 사물이 날로 그 모습을 변모해 가는 이 세월! 접목접지로 하여 화목마저 그의 본질을 잃을 만큼 색향이 요란해져 가고 있는 이 판국에 있는 듯 없는 듯 은은한 향기를 새벽 하늘에 풍기며 아직도 얼어 붙은 황량한 뜨락을 불 밝힌 매화! 무리를 멀리한 그 고독은 어쩌면 빈 들판의 눈얼음을 뚫고 움돋는 민들레 같은 눈짓으로 내 가슴에 밀착해 온다. 먼저 사랑을, 먼저 다사함을 소곤대듯 가냘픈 애원으로 얼굴 내어미는 조심성은 세월이 요란할수록 보다 높고 빛나는 예지가 아닐 수 없다. 내가 살던 동래 애일당엔 동쪽 창 앞에 매화 한 그루가 심어져 있었다. 이른봄 꽃망울이 벌기 시작하면 나는 새벽마다 그 꽃을 마주하여 생각을 나누는 즐거움을 오붓이 지녀 왔었다. 새벽 하늘의 별빛 같은 총명을 반짝이면서 매화는 내게 수많은 이야기를 들려 주었기 때문이다.
그 매화나무가 나의 집 뜰로 옮겨 오던 날, 나는 기관지염을 앓아 신열이 39도를 오르내리고 있었다. 의사가 왕진을 나오고 수행 간호원이 방금 주사를 놓고 있는데, 문간이 부산하면서 이웃 농부가 부탁해 두었던 매화를 지고 와서 어디다 심을 것인가를 묻는 것이었다. 나는 스웨터에 머플러를 두르고 입엔 마스크까지 끼고는 비실비실 몸을 가누며 마루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닫힌 유리창 안에서 기침과 오한을 참으면서 아무리 손짓으로 형용을 해도 그 미련스럽도록 마음씨 착한 농부는 알아차려 주지를 못해 나는 결국 직접 뜰로 내려가게 되었고, 적당한 자리에 매화를 심기 위하여 동쪽 창 앞에 섰던 라일락을 다른 장소로 옮기게 되고, 그 라일락에게 자리를 빼앗긴 나무는 또 다른 자리로 옮겨지고... 이렇게 지시를 하면서 뜰에 서성대는 내 행위를 보고 절대 안정을 당부하던 의사는 아연한 표정으로 돌아가 버리고, 함부로 가지를 뻗어 운치를 잃은 매화 나무의 전지를 하느라 손수 가위를 들고 손등에 힘줄을 세우는 형편에까지 이르르고 말았던 것이다.
힘을 써서 흙을 파고 나무를 묻는 일은 농부들이 할 수 있겠지만 가지를 자르고 나무의 모양을 내는 전지 작업에 있어선 아무래도 미학을 모르는 그들의 손에다 화목을 맡겨 둘 수 없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꽃나무 앞에 서기만 하면 병도 고생도 잊어버리고 흡사 신이 들린 듯 열성을 기울이는 내 성정 때문에 실로 어처구니없는 짓을 저질러 그 길로 다시 병석에 누운 나는 꼬박 두 달을 일어날 수 없는 고열과 기침으로 신고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 그 날, 신이 들린 듯 매화나무를 옮기며 전지를 하던 환자의 모습을 어처구니없는 듯 물끄러미 지켜 보고 있던 문병객인 M씨가 내 작업을 만류하는 말씀이,
- 정운은 아무래도 정신보다 육신을 더 소중해하는 편인가 보다고... 육신을 담을 거처를 장식하기 위하여 정신의 집인 육신을 그렇듯 혹사할 수가 있느냐고...입으로는 항상 육신보다 정신을 우위에 내세우는 당신이 어찌해서 육신의 거처를 꾸미기에 앓는 몸을 돌보지 않는 것이냐고... 만약 당신의 육신이 죽어 없어지는 날엔 그토록 소중하던 정신을 어느 자리 어느 세상에다 모셔 앉힐 작정이냐고-.
조금은 비꼬임이 섞이긴 해도 진실로 간곡한 애정의 타이름이 아닐 수 없었다. 그 뒤부터는 늘 '정신의 집인 육신'을 내세워 M씨는 나에게 건강 관리를 충고해 마지않았으며 나 역시 너무도 절실한 그의 설득에 한편 수긍할 수 있었지만 내가 뜰을 가꾸고 화초를 만짐은 결코 육신의 거처만을 위한 사치로운 겉치레 행위가 아닌 내 육신 속에 고갈해 가려는 정신의 목을 축이기 위한 엄숙한 작업이 아닐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나의 거처가 비록 정원수 한 그루 제대로 갖추지 못한 벌판 같을지라도 지난날 그토록 마음 쏟아 가꾸고 사랑해 온 그 꽃들의 피고 지는 모습과 눈부신 빛과 향훈들, 그것들은 언제나 계절을 따라 나의 심안을 열고 정신의 허기를 채워 주고 있다.
젊은 시절에 무수히 밟고 오르내리던 그 산천의 아름다운 경치들은 내 조국이 슬프고 짜증스러울 때 회상하여 자위받을 수 있는 정신의 보고가 되어 오고 있듯이... 다시 봄기운이 돌고 그 애일당의 뜰을 밝히던 매화 향기가 추억을 적시는 이 새벽, 잔잔한 메아리로 다가드는 M씨의 타이름이 하나의 철학으로 가슴을 메워 오고 있다. 육신이 떠나고 난 뒤의 정신의 소재! 그 목숨의 그지없는 허무를 씹으며 심령이 메말라 벌린 육신의 허울이 얼마나 초라할 것인가를 느끼며 아직도 사색의 줄이 끊어지지 않은 내 호흡의 물줄기에 스스로 가슴을 적시고 있다.
세상살이에 지치고 시달리어 표정은 비록 굳었을지라도 안으로 깊숙이 무수한 초원을 간직한 나목으로 자세하고 싶은 나! 이제 내게는 마르지 않는 샘물 같은 신의 의지에 영혼을 축이는 심령의 작업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한 송이 매화의 슬기로운 개안도 오로지 큰 뜻을 섭리 없이는 이루어짐이 없음과 같은 이 새벽, 내 마음의 꽃밭에 뿌리는 씨의 작은 알맹이가 내 생명의 핵으로 개화해 주기를 소망하면서 동 트는 여명 앞에 나를 세우고 섰다. 가슴을 환히 밝히고 비쳐 드는 먼 애일당의 매화 향기에 회억을 적시며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