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문학가, 평양 출생, 일본 리쿄 대학 영미 학부 졸업. 문예지 '문학' 주간 역임. 원응서는 번역 이외의 일에는 별로 활동을 하지 않은 인물이다. 그러나 일상의 체험에서 우러난 통찰 깊은 수필들이 몇 편 전해져 그의 진가를 보여 준다. 평범한 듯하면서도 인생에 대한 관조와 애정이 곁들여 있어 독자들에게 수필 문학의 묘미를 느끼게 해 준다.
이삭주이
책을, 이것저것 주워 읽어 온 데서나 또 번역을 해 온 가운데서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도 이상스레 뇌리에 남아 있는 말들이 있다. 그 가운데서도 예술인이나 그 밖의 사람이 종신하는 자리에서 남긴 말에 관한 것들이 그것이다.
오랜 동안 병석에서 심신이 쇠약해진 환자이고 보면 방 안의 채광이 너무 밝아도 정신적 피로를 가져오기 쉽다. 이럴 때는 창문의 차광막을 내리어 채광을 조절하게 된다. 괴테가 종신하는 마당에도 이렇듯 커튼이 내려져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자꾸만 의식이 흐려져 가고 임종이 가까워졌을 때 그는 문득 자기의 주변이 점점 어두워져 오는 것만 같아졌을 것이다. 이윽고 그는 '커튼을 좀 올려요. 빛이 좀더 들어오게!' 이렇게 주위의 사람들에게 일렀던 것이다. 후세의 사람들은 대시인의 임종을 대시인다운 임종의 말로 미화시킨 것으로 보여진다. '커튼을 좀 올려요. 빛이 좀 들어오게!'를 '좀더 빛을! 좀더 빛을!'으로, 평범한 아무렇지도 않은 산문조의 말을 운문 격조로 다듬어 고친 것이 아닐까, 이것은 어느 외국의 평론가도 꼬집어댄 바 있는 얘기이기도 하지만, 이 비슷한 종신의 장면으로는 O. 헨리의 경우를 또 들 수 있다. 그는 한평생을 두고 뉴욕시를 그렇게도 좋아한 사람이 또 없었을 만큼 사랑했다. 그러한 그가 임종이 가까워 오자 조용히, '차광막을 올려요. 뉴욕 시를 내다보게. 어두운 데서는 죽고 싶지가 않아요.'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괴테의 경우처럼 O. 헨리의 임종 장면에도 차광막이 쳐 있었던 것이 분명하고 그래서 마지막으로 그것을 끌어올리라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O. 헨리의 경우는 대시인이 아닌 산문가다운 격조로 임종의 말 그대로 전해지고 있다는 것이지만 그보다도 중요한 점은 두 작가가 다 같이 죽음에 임하는 자세가 초연하고 드디어 오고야 말 것이 왔다는 달관의 경지에 서 있었다는 것이다. 탐험가 스코트의 마지막 일기를 보면 감히 범인들이 침범하지 못할 인간의 숭고한 존엄성을 엿볼 수 있다.
1911년 아문센은 스코트를 앞지르기 위해 북극으로 탐험길을 떠나는 것으로 위장하고 실은 남극으로 향했던 것이다. 스코트가 사력을 다해 간신히 남극의 극지에 도달했을 땐 그의 눈앞에는 노르웨이의 깃발이 휘날리며 서 있었다. 순간 모든 걸 알게 된 스코트에게는 좌절감이 밀어닥쳤다. 그러나 그는 대원들을 이끌고 영하 37도의 눈보라 속으로 죽음의 귀로에 접어들었다. 일행 4명 중에서 오트스란 대원은 더 이상 걸을 수 없게 되자 일행의 행진을 지체시킬까 염려하고 잠시 밖에 나갔다 오겠노라, 한 마디 남기고는 텐트 밖으로 세 사람도 북극의 미이라가 됐지만 그들 누구도 당황하거나 죽음을 두려워한 기색은 추호도 없었다. '우리는 끝까지 싸워 보려 했지만 걷잡을 수 없이 몸이 점점 약해져만 가고 있다. 최후가 머지않다.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이상 더 일기를 쓰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고 스코트는 조용히 붓을 놓았다. 이것은 달관이라기보다는 인간의 위대한 정신력을 보여 준 잊혀지지 않는 장면의 하나이다.
초년에는 귀족처럼 화려한 생활 속에서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렘브란트는 부인을 잃은 뒤를 이어 재물까지 잃어버리고는 구걸하다시피 하는 생활의 구렁창 밑바닥까지 떨어졌다. 그림에 대한 정열만이 사랑과 재산을 앗아간 그의 여생을 지탱해 주었을 뿐이었다. 드디어 극에서 극으로의 희비고락에 찬 일생을 마치는 마당에 그는 '공허하고도 또 공허하다. 모두가 공허하다!'라고 했다. 이것은 그가 살아 온 인생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내재성을 한 마디로 압축해서 표현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는 우선 외적인 생활과 싸웠고 자기 자신의 내적인 세계를 새로이 구축하기 위해 온몸으로 싸웠다. 그리고 자신의 내적인 세계를 발견했을 땐 세상은 모두가 '공허'한 것으로 느껴졌으리라고 본다.
이와는 좀더 현실적인 차원에서 임종에 인생을 말한 작가가 크리스찬 프리드리히 헵벨이다. 미장이의 아들로 태어나 어느 작가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극빈과 갖은 고난 속에서 작품 제작에 목숨을 걸었건만 늘 거지와 같은 구차한 생활을 면치 못했다. 그러다가 만년에야 "니벨룽겐"(1862)이란 대작으로 실러 상을 받게 되었을 때는 이미 종신이 가까웠던 것이다. 임종이 가까워졌음을 깨달은 그는 이렇게 말을 맺었다. '술이 있을 때는 술잔이 없고 술잔이 있을 때는 술이 없더라!'고. 그처럼 인생의 무상과 부조리를 실감하고 개탄한 작가도 없을 것이다. '희극은 끝났다!' 이것은 일생이 불운으로 가득 찬, 단 한 번만 있었던 결혼의 기회마저 잃어버린, 그런 생애를 마치는 마당에 친지 하나 없이 외로이 가는 베토벤의 마지막 말이었다. 느끼는 자는 울고 깨달은 자는 웃는다는 말이 있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베토벤의 '희극'은 그가 가장 잘 웃는 최후의 웃음인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임종의 짧은 말들은 무엇인가 인생에 대한 본질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고 또 그것들은 우리들에게 무엇인가를 시사해 주는 바 크다고 여겨진다. 그것들은 여유 있게 도사리고 앉아 금언이나 좌우명을 쓰는 마음과는 달리 인생이 종착하는 자리에서 우연이 아니라 그들에게 한평생 축적되었던 체험적 진실의 토로이기에 더욱 의의가 크다. 이러한 말들이 지니는 무게는 금언이나 좌우명보다도 우리들을 한층 일깨워 주는 힘이 크고, 또 이러한 말들을 수집 연구해서 집대성하는 일도 결코 무의미한 노력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