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어떻게 쓸까 - 이오덕
1부 산문을 어떻게 쓸까
논설문 쓰기 - 생각과 느낌을 어떻게 표현할까 (3/4)
글을 머리로 만들지 말고
글은 몸으로 부딪힌 일을 쓰고 가슴에 울려온 느낌과 생각을 쓰는 것이지, 머리로 써서 는 안 된다. 머리로 글을 만드니까 말을 부질없이 꾸미게 되고 사실과는 다른 것을 쓰고 유식한 말을 흉내낸다. 알맹이는 없이 말만 요란한 글, 남을 속이는 거짓스런 글은 이렇게 해서 씌어진다. 거짓글까지는 안 된다고 하더라고 읽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는 글이 되는 것만은 분명하다. 글을 논리로 써서는 안되는 까닭도 그 때문이다. 논리로 쓰는 것이 머리로 쓰는 것이다. 다음은 고등하교 1학년 학생이 쓴 글이다. 이 글이 몸으로 부딪힌 일을 쓴글인지, 머리로 쓴 글인지 살펴보자.
어머니
우리는 흔히 어머니를 위대하다 라고 일컫는다. 일상생활에서 살펴보면 빨래 청소는 물론, 모든 것은 자식들을 위해 희생하신다. 그러나 그런 어머니를 위해 별로 도움을 드리지 못했다. 새벽부터 일어나 꼭 의무적으로 일을 하신다. 이럴 땐 나의 마음은 흐뭇할까? 아니다. 돕고 싶을 뿐이다. 솔선수범해서 도와야 할 우리는 일이 많다고 해서 피해 버린다. 이 일은 나만의 일이 아닐 것이다. 집에 돌아오면 나는 방이 더럽다고 야단이다. 그러면 어머니는 나에게 틈이 언제 있냐고 하신다. 이건 나의 일시적인 말에 불과하다. 어머니의 거룩한 상. 이건 나의 바램이기도 하다. 과연 내가 이것을 이룰지.... 그러나 나도 하염없이 노력을 하련다. 쓴내나는 생활을 이겨내는 어머니, 왜 어머니의 입에서 목구멍에서 쓴내난다 라는 말이 자꾸 나왔어야 할까.
어제의 일이다. 새벽부터 깨우는 소리에 일어나 보니 엄마는 오늘 답배 모종을 해야 하니 일찍 서둘러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일에 대한 말만 들어도 귀가 따가울 정도다. 좁을 얻어야만 우리가 편할 텐데.. 하고 우선 편함을 앞세운다. 점심 전에 아버지께 이 지긋지긋한 담배 어떻게 할까 하고 말하니, 이건 너희들을 위해서 하는 일이니 그런 말하면 못쓴다 하고 말씀하신다. 그래도 나는 이유를 단다 우리를 위해서 봉사하시는 분을 잊기 쉽다. 엄마는 고달픔을 참고 우리 자식들을 위해서 끊임없이 항쟁하듯 노력을 하신다. 그러나 엄마, 먼 미래를 기다려요. 제가 할 수 있는 데까지 열심히 도울께요. 효도도 잘 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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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다 읽고 나서도 아무런 맛을 느낄 수 없다. 가슴에 울려오는 것이 없다. 맛이 없는 글, 가슴에 와 닿는 것이 없는 글이 된 것은 머리로 썼기 때문이다. 글 가운데 실제로 겪은 사실을 쓰려고 한 대문이 있기는 있다. 담배 모종을 한 것 같은 이야기가 나오는 대문이 그렇다. 그런데 이것도 제대로 쓰지 못했고, 쓰다가 그만두고 곧 머리로 말을 만드는 글로 되돌아가고 말았다. 우리를 위해 늘 일만 하면서 고생하는 어머니는 훌룡하시다. 나는 어머니께 효도를 해야 한다. 이런 내용을 쓰려고 했다면 무엇보다도 자기 어머니가 그렇게 고생하시는 모습을(언제 어디서 보았다든지, 함께 일하면서 깨달았다든지 하는 사실을) 뚜렷하게 그려 보여야 할 것이다. 그런 정직한 이야기는 없이 그저 머리로 생각한 말만 늘어놓았으니 그런 말이 군소리가 되고 빈 말이 될 수 밖에 없다. 이와같이 머리로 글을 쓰면 유식한 글말을 흉내내는 것으로도 나타난다. 이 글에는 공연히 쓴 글말, 유식한 한자말에다가 아주 허황한 말까지 나온다. 이렇게 잘못 쓴 말, 제것으로 되어 있지 않은 말을 차례로 보아 나가자.
- 우리는 흔히 어머니는 위대하다 라고 일컫는다.
여기 일컫는다 란 말이 나오는데, 이 말은 우리가 일상에서 쓰지 않는다. 벌써 죽어버린말이라도 그것을 대신해서 쓸 말이 없다면 살려 쓰는 것이 좋다. 그러나 어린애들의 입에서도 쉽게 나오는 말한다 를 쓰지 않고 일컫는다 를 써야 할 까닭이 어디 있는가? 글을 전문으로 쓰는 문인이든지 학생이든지 일컫는다 란 말을 쓰는 까닭은, 뭔가 유식한 글을 써 보이려고 하는 마음이 숨어 있기 때문이라고 보면 틀림 없다. 실제로 말을 할 때도 우리 어머니는 훌룡하시다 고 하지 우리 어머니는 위대하시다 고 말하지 않으니까.
- 새벽부터 일어나 꼭 의무적으로 일을 하신다.
여기 나오는 의무적으로 란 말은 어떤 말일까? 어쩔 수 없이 란 뜻일까? 앞뒤의 글을 보아서 그런 뜻은 아닌 것 같다. 반드시 란 뜻으로 썼는가? 그러나 바로 앞에 꼭 이란 말이 있다. 결국 이 말은 아무 쓸데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새벽부터 일어나 도 말이 좀 덜 되었다. 새벽에 일어나서부터 해야지.
- 솔선수범해서 도와야 할 우리는 일이 많다고 해서 피해 버린다.
이 글월에 나오는 솔선수범 은 학교에서 많이 쓰는 말이다. 학생들 앞에서 선생님들이 무슨 교훈이 될 만한 이야기를 할 때 흔히 쓰는 이 말은, 자기 이야기를 하는 이런 글에서 쓸 것이 아니다. 먼저 본을 보여 하면 될 말이다. 그리고 우리는 했는데, 나는 이라고 할 것을 잘못 썼다.
- 이전 나의 일시적인 말에 불과하다.
이 글월은 다음과 같이 써야 한다. 이건 내가 한 번 해본 말일 뿐이다.
- 어머니의 거룩한 상.
갑자기 나오는 이 말은 무슨 뜻인가? 우선 상 이란 말부터 무슨 말인가? 모습이란 말이라면 어머니의 거룩한 모습 이라고 써야 할 것이다. 그런데 난데없이 어머니의 거룩한모습 이 나오는 까닭을 알 수 없다. 이 어머니의 거룩한 상 이 나온 다음에는 이건 나의 바램이기도 하다. 과연 내가 이것을 이룰지.. 라고 써 놓았는데, 이 말들이 서로 어떤 듯으로 이어져 있는지 알 수 없다.
- 나도 하염없이 노력을 하련다.
이 하염없이 는 말뜻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쓴 것 같다.
- 왜 어머니의 입에서 목구멍에서 쓴내난다 라는 말이 자꾸 나왔어야 할까. 이 글에 나오는 나왔어야 는 나와야 로 써야 우리말이 된다. 이것은 이중과거형은 아니고 그냥 과거형이다. 우리말 움직씨(동사)에는 이중 과거형이 없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과거형도 함부로 쓰는 것이 아니다. 두어 가지 보기를 들어 본다.
- 복잡한 도로, 기사설명 혼란 알기 쉽게 약도 게재했어야
이것은 어느 신문에 난 독자의 글제목이다. 내용을 읽어 보니 신문에서, 서울 동남부 지역의 간선도로망 체계를 완성하기 위한 공사를 하는 형편을 보도한 모양인데, 그것을글로만 설명해 놓아서 알기가 어려웠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도를 곁들어 눈으로 보아서 잘 알 수 있게 설명 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 했다. 그렇다면 제목도 약도 게재했어야 로 쓰지 말고 약도 게재했더라면 으로 써야 우리말 답게 된다. 물론 게재 란 말도 쉬운 우리말로 바꾸어서 약도 실었더라면 이나 약도 그려 보였더라면 이라고 쓰는 것이 더 좋다. 또 이 말은 약도 게재해야 -> 약도 실어야 이렇게 써도 된다. 한 가지 더 들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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