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표수필 - 김동리 외 9명
"정비석편"
정비석(1911~1991)
소설가. 평북 의주 출생. 일본 니혼 대학 문과 중퇴. 통속적인 신문 소설로 대중의 인기를 끈 바 있는 정비석은 흔히 예정 소설만 쓴 것으로 오인되기도 하지만 그 문장의 점착력이나 심리, 상황의 뛰어난 묘사는 그를 수필 문학에 있어서도 많은 작품을 남기게 하였다. "산정 무한"은 금강산 기행문의 일부인데 그의 뛰어난 문장력을 엿볼 수 있는 글이다.
산정 무한
이튿날 아침, 고단한 마련 해선 일찌감치 눈이 떠진 것은 몸이 지닌 기쁨이 하도 컸던 탓이었을까. 안타깝게도 간밤에 볼 수 없던 영봉들을 대면하려고 새댁같이 수줍은 생각으로 밖에 나섰으나, 계곡은 여태 짙은 안개 속에서, 준봉은 상기 깊은 구름 속에서 용이하게 자태를 엿보일 성싶지 않았고, 다만 가까운 데의 전나무, 잣나무들만이 대장부의 기세로 활개를 쭉쭉 뻗고,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 있는 것이 눈에 뜨일 뿐이었다. 모두 근심 없이 자란 나무들이었다. 청운의 뜻을 품고 하늘을 향하여 밋밋하게 자란 나무들이었다. 꼬질꼬질 뒤틀어지고 외틀어지고 한 야산 나무밖에 보지 못한 눈에는, 귀공자와 같이 기품이 있어 보이는 나무들이었다. 조반 후 단장 짚고 험난한 전정을 웃음경삼아 탐승의 길에 올랐을 때에는, 어느덧 구름과 안개가 개어져 원근 산악이 열병식하듯 점잖이들 버티고 서 있는데, 첫눈에 비치는 만산의 색소는 홍! 이른바 단풍이란 저런 것인가 보다 하였다.
만학천봉이 한바탕 흐드러지게 웃는 듯, 산색은 붉을 대로 붉었다. 자세히 보니, 홍만도 아니었다. 청이 있고, 녹이 있고, 황이 있고, 등이 있고, 이를테면 산 전체가 무지개와 같이 복잡한 색소로 구성되었으면서, 얼른 보기에 주홍만으로 보이는 것은 스펙트럼의 조화던가? 복잡한 것은 색만이 아니었다. 산의 용모는 더욱 다기하다. 혹은 깎은 듯이 준초하고, 혹은 그린 듯이 온후하고, 혹은 막잡아 빚은 듯이 험상궂고, 혹은 틀에 박은 듯이 단정하고..., 용모, 풍취가 형형색색인 품이 이미 범속이 아니다. 산의 품평회를 연다면, 여기서 더 호화로울 수 있을까? 문자 그대로 무궁무진이다. 장안사 맞은편 산에 울울창창 우거진 것은 다 잣나무뿐인데, 모두 이등변삼각형으로 가지를 늘어뜨리고 섰는 품이, 한 그루 한 그루의 나무가 흡사히 괴어 놓은 차례탑 같다. 부처님은 예불상만으로는 미흡해서, 이렇게 자연의 진수성찬을 베풀어 놓으신 것일까? 얼른 듣기에 부처님이 무엇을 탐낸다는 것이 천만부당한 말 같지만, 탐내는 그것이 물욕 저편의 존재인 자연을 맘껏 탐낸다는 것이 이미 불심이 아니고 무엇이랴.
장안사 앞으로 흐르는 계류를 끼고 돌며 몇 굽이의 협곡을 거슬러 올라가니 산과 물이 어울리는 지점에 조그마한 찻집이 있다. 다리도 쉴 겸, 스탬프북을 한 권 사서, 옆에 구비된 기념 인장을 찍으니, 그림과 함께 지면에 나타나는 세 글자가 명경대! 부앙하여 천지에 참괴함이 없는 공명한 심경을 명경지수라고 이르나니, 명경대란 흐르는 물조차 머무르게 하는 곳이란 말인가! 아니면, 바로 명경대란 말인가! 아무러나 아름다운 이름이라고 생각하며 찻집을 나와 수십 보를 바위로 올라가니, 깊고 푸른 황천담을 발 밑에 굽어보며 반공에 외연히 솟은 층암 절벽이 우뚝 마주 선다. 명경대였다. 틀림없는 화장경 그대로였다. 옛날에 죄의 유무를 이 명경에 비추면, 그 밑에 흐르는 황천담에 죄의 영자가 반영되었다고 길잡이는 말한다. 명경! 세상에 거울처럼 두려운 물건이 다신들 있을 수 있을까? 인간 비극은 거울이 발명되면서 비롯했고, 인류 문화의 근원은 거울에서 출발했다고 하면 나의 지나친 억설일까? 백 번 놀라도 유부족일 거울의 요술을 아무런 두려움도 없이 일상으로 대하게 되었다는 것은 또 얼마나 가경할 일인가?
신라조 최후의 왕자인 마의 태자는 시방 내가 서 있는 바로 이 바위 위에 꿇어 엎드려, 명경대를 우러러보며 오랜 세월을 두고 나무아미타불을 염송했다니, 태자도 당신의 업죄를 명경에 영조해 보시려는 뜻이었을까! 운상기품에 무슨 죄가 있으랴만, 등극하실 몸에 마의를 감지 않으면 안되었다는 것이 이미 불법이 말하는 전생의 연일는지 모른다. 두고 떠나기 아쉬운 마음에 몇 번이고 뒤를 돌아다보며 계곡을 돌아 나가니, 앞으로 염마처럼 막아 서는 웅자가 석가봉, 뒤로 봐야 협착한 골짜기는 그저 그뿐인 듯. 진퇴유곡의 절박감을 느끼며 그대로 걸어 나가니, 간신히 트이는 또 하나의 협곡! 몸에 감길 듯이 정겨운 황천강 물줄기를 끼고 돌면, 길은 막히는 듯 나타나고, 나타나는 듯 막히고, 이 산에 흩어진 전설과, 저 봉에 얽힌 유래담을 길잡이에게 들어 가며 쉬엄쉬엄 걸어 나가는 동안에, 몸은 어느덧 심해 같이 유수한 수목 속을 거닐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천하에 수목이 이렇게도 지천으로 많던가! 박달나무, 엄나무, 피나무, 자작나무, 고로쇠나무..., 나무의 종족은 하늘의 별보다도 많다고 한 어느 시의 구절을 연상하며 고개를 드니, 보이는 것이라고는 그저 단풍뿐, 단풍의 산이요 단풍의 바다다. 산 전체가 요원 같은 화원이요, 벽공에 외연히 솟은 봉봉은 그대로가 활짝 피어 오른 한 떨기의 꽃송이다. 산은 때아닌 때에 다시 한 번 봄을 맞아 백화 난만한 것일까? 아니면, 불의의 신화에 이 봉 저 봉이 송두리째 붉게 타고 있는 것일까? 진주홍을 함빡 빨아들인 해면같이, 우러러볼수록 찬란하다.
산은 언제 어디다 이렇게 많은 색소를 간직해 두었다가, 일시에 지천으로 내뿜는 것일까? 단풍이 이렇게까지 고운 줄은 몰랐다. 김 형은 몇 번이고 탄복하면서, 흡사히 동양화의 화폭 속을 거니는 감흥을 그대로 맛본다는 것이다. 정말 우리도 한 떨기 단풍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다리는 줄기요, 팔은 가지인 채, 피부는 단풍으로 물들어 버린 것 같다. 옷을 훨훨 벗어 꽉 쥐어 짜면, 물에 헹궈 낸 빨래처럼 진주홍 물이 주르르 흘러내릴 것만 같다. 그림 같은 연화담 수렴폭을 완상하며, 몇십 굽이의 석계와 목잔과 철삭을 답파하고 나니, 문득 눈앞에 막아서는 무려 3백 단의 가파른 사닥다리-한 층계 한 층계 한사코 기어오르는 마지막 발걸음에서 시야는 일망무제로 탁 트인다. 여기가 해발 5천 척의 망군대--아! 천하는 이렇게도 광활하고 웅장하고 숭엄하던가!
이름도 정다운 백마봉은 바로 지호지간에 서 있고, 내일 오르기로 예정된 비로봉은 단걸음에 건너뛸 정도로 가깝다. 그밖에도, 유상무상의 허다한 봉들이 전시 할거하는 군웅들처럼 여기에서도 불끈 저기에서도 불끈, 시선을 낮춰 아래로 굽어보니, 발 밑은 천인단애, 무한제로 뚝 떨어진 황천계곡에 단풍이 선혈처럼 붉다. 우러러보는 단풍이 새색시 머리의 칠보 단장 같다면, 굽어보는 단풍은 치렁치렁 늘어진 규수의 붉은 치마폭 같다고나 할까. 수줍어 수줍어 생글 돌아서는 낯 붉힌 아가씨가 어느 구석에서 금방 튀어나올 것도 같구나!
저물 무렵에 마하연의 여사를 찾았다. 산중에 사람이 귀해서였던가. 어서 오십사는 상냥한 안주인의 환대도 은근하거니와, 문고리 잡고 말없이 맞아 주는 여관집 아가씨의 정성을 무르익은 머루알같이 고왔다. 여장을 풀고 마하연암을 찾아갔다. 여기는 선원이어서, 공부하는 승려뿐이라고 한다. 크지도 않은 절이건만 승려 수는 실로 30명은 됨직하다. 이런 심산에 웬 중이 그렇게도 많을까?
한없는 청산 끝나 가려 하는데,
흰구름 깊은 곳에 노승도 많아라.
옛 글 그대로다.
노독을 풀 겸 식후에 바둑이나 두려고 남포등 아래에 앉으니, 온고지정이 불현듯 새로워졌다.
"남포등은 참말 오래간만인데."
하며, 불을 바라보는 김 형의 말씨가 하도 따뜻해서, 나도 장난삼아 심지를 돋우었다 줄였다 하며, 까맣게 잊었던 옛 기억을 되살렸다. 그리운 얼굴들이, 흐르는 물의 낙화 송이같이 떠돌았다. 밤 깊어 뜰에 나가니, 날씨는 흐려 달은 구름 속에 잠겼고, 음풍이 몸에 선선하다. 어디서 솰솰 소란히 들려 오는 소리가 있기에 바람 소린가 했으나, 가만히 들어 보면 바람 소리만도 아니여, 물 소린가 했더니 물 소리만도 아니요, 나뭇잎 갈리는 소린가 했더니 나뭇잎 갈리는 소리만은 더구나 아니다. 아마, 바람 소리와 물 소리와 나뭇잎 갈리는 소리가 함께 어울린 교향악인 듯싶거니와, 어쩌면 곤히 잠든 산의 호흡인지도 모를 일이다.
뜰을 어정어정 거닐다 보니, 여관집 아가씨는 등잔 아래에 외로이 앉아서 책을 읽고 있다. 무슨 책일까? 밤 깊은 줄조차 모르고 골똘히 읽는 폼이, 춘향이 태형 맞으며 백으로 아뢰는 대목일 것도 같고, 누명 쓴 장화가 자결을 각오하고 원한을 하늘에 고축하는 대목일 것도 같고, 시베리아로 정배가는 카추샤의 뒤를 네프 백작이 쫓아가는 대목일 것도 같고..., 궁금한 판에 제멋대로 상상해 보는 동안에 산 속의 밤은 처량히 깊어 갔다. 자꾸 깊은 산 속으로만 들어가기에, 어느 세월에 이 골을 다시 헤어나 볼까 두렵다. 이대로 천지와 처자를 버리고 중이 되는 수밖에 없나 보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돌이키니, 몸은 어느새 구름을 타고 두리둥실 솟았는지, 군소봉이 발 밑에 절하여 아뢰는 비로봉 중허리에 나는 서 있었다. 여기서부터 날씨는 급격히 변화되어 이 골짝 저 골짝에 안개가 자옥하고 음산한 구름장이 산허리에 감기더니, 은제, 금제에 다다랐을 때, 기어이 비가 내렸다. 젖빛 같은 연무가 짙어서 지척을 분별 할 수 없다. 우장 없이 떠난 몸이기에 그냥 비를 맞으며 올라가노라니까, 돌연 일지 광풍이 어디서 불어 왔는지, 휙 소리를 내며 운무를 몰아가자, 은하수같이 정다운 은제와, 주홍 주단 폭같이 늘어놓은 붉은 진달래 단풍이, 몰려가는 연무 사이로 나타나 보인다. 은제와 단풍은 마치 이랑이랑으로 섞바꾸어 가며 짜 놓은 비단결같이 봉에서 골짜기로 퍼덕이며 흘러내리는 듯하다. 진달래는 꽃보다 단풍이 배승함을 이제야 깨달았다.
오를수록 우세는 맹렬했으나, 광풍이 안개를 헤칠 때마다 농무 속에서 홀현홀몰하는 영봉을 영송하는 것도 과히 장관이었다. 산마루가 가까울수록 비는 폭주로 내리붓는다. 만 이천 봉을 단박에 창해로 변해 버리는 것일까. 우리는 갈데없이 물에 빠진 쥐 모양을 해 가지고 비로봉 절정에 있는 찻집으로 찾아드니, 유리창 너머로 내다보고 섰던 동자가 문을 열어 우리를 영접하였고, 벌겋게 타오른, 장독 같은 난로를 에워싸고 둘러앉았던 선착객들이 자리를 사양해 준다. 인정이 다사롭기 온실 같은데, 밖에서는 몰아치는 빗발이 어느덧 우박으로 변해서 창을 때리고 문을 뒤흔들고 금시로 천지가 뒤집히는 듯하다. 용호가 싸우는 것일까? 산신령이 대노하신 것일까? 경천동지도 유만부동이지, 이렇게 만상을 뒤집을 법이 어디 있으랴고, 간장을 죄는 몇 분이 지나자, 날씨는 삽시간에 잠든 양같이 온순해진다. 변환도 이만하면 극치에 달한 듯싶다.
비로봉 최고점이라는 암상에 올라 사방을 조망했으나, 보이는 것은 그저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운해,--운해는 태평양보다도 깊으리라 싶었다. 내, 외, 해 삼 금강을 일망지하에 굽어 살필 수 있다는 한 지점에서 허무한 운해밖에 볼 수 없는 것이 가석하나, 돌이켜 생각건대 해발 육천 척에 다시 신장 오 척을 가하고 오연히 저립해서, 만학천봉을 발 밑에 끓어 엎드리게 하였으면 그만이지, 더 바랄 것이 무엇이랴. 마음은 천군만마에 군립하는 쾌승 장군보다도 교만해진다.
비로봉 동쪽은 아낙네의 살결보다도 휜 자작나무의 수해었다. 설자리를 삼가, 구중심처가 아니면 살지 않는 자작나무는 무슨 수중 공주이던가! 길이 저물어, 지친 다리를 끌며 찾아든 곳이 애화 맺혀 있는 용마석--마의 태자의 무덤이 황혼에 고독했다. 능이라기에는 너무 초라한 무덤--철책도 상석도 없고, 풍림에 시달려 비문조차 읽을 수 없는 화강암 비석이 오히려 처량하다. 무덤가 비에 젖은 두어 평 잔디밭 테두리에는 잡초가 우거지고, 석양이 저무는 서녘 하늘에 화석된 태자의 애기 용마의 고영이 슬프다. 무심히 떠도는 구름도 여기서는 잠시 머무르는 듯, 소복한 백화는 한결같이 슬프게 서 있고, 눈물 머금은 초저녁 달이 중천에 서럽다. 태자의 몸으로 마의를 걸치고 스스로 험산에 들어온 것은, 천 년 사직을 망쳐 버린 비통을 한 몸에 짊어지려는 고행이었으리라. 울며 소맷귀 부여잡는 낙랑 공주의 섬섬옥수를 뿌리치고 돌아서 입산 할 때에, 대장부의 흉리가 어떠했을까? 흥망이 재천이라. 천운을 슬퍼한들 무엇하랴만, 사람에게는 스스로 신의가 있으니, 태자가 고행으로 창맹에게 베푸신 도타운 자혜가 천 년 후에 따습다. 천 년 사직이 남가일몽이었고, 태자 가신 지 또 다시 천 년이 지났으니, 유구한 영겁으로 보면 천 년도 수유던가! 고작 칠십 생애에 희로애락을 싣고 각축하다가 한움큼 부토로 돌아가는 것이 인생이라 생각하니, 의지 없는 나그네의 마음은 암연히 수수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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