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표수필 - 김동리 외 9명
"김소운편"
김소운(1907~1981)
수필가, 시인. 일본 문학가. 호는 소운. 경남 부산 출생. 일본에서 중학 중퇴. 초기에는 시로 출발하여 관념시 계통의 시작품을 발표했으나 일본인들의 근거 없는 우월감과 한국 문화에 대한 인식 부족을 통감하고서 한국의 민요, 동요, 시 등을 일본에 소개하는 작업을 벌여 크게 주목받았다. 문학의 사회자로 문화 수출의 상인으로 자처했던 그는 후기에는 인생에의 통찰이 담긴 격조 높은 수필을 많이 발표하여 많은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20원 염세론
일본 서적을 전문으로 하는 책 가게들 - 수천만 원의 자본을 들인 대서점에서 명동 뒷골목 노점 책장수까지, 서울 거리만 새도 이런 책가게가 자그마치 4, 50집은 더 될 것 같다. 그런 노점 가게에서 일본 잡지 값을 물어 본다. 5, 6개원 지난 헌 부인 잡지다. '2백 원입니다.' 혹은 '2백 50원입니다.' 거침없이 부르는 그 '값'은 그 책에 찍혀 있는 정가 그대로이다. 일화와 우리돈의 환산율로 따지고 보면 30~40프로, 정가보다 더 비싼 계산이다. 일본서는 5, 6개월 지난 잡지는 쓰레기다. 10원 균일로 고책상 가게 앞에 무더기로 쌓여 있어도 사 갈 사람이 없다. 그 '쓰레기'가 이 나라에서 보배 취급이요, 한두 달 전에 나온 새것이면 정가의 3, 4배. 우리들의 주림과 가난함이 이러하다. 하필이면 이런 얘기가 아니라도 오늘날의 우리들의 빈곤을, 마음의 굶주림을 진단할 카르테는 얼마든지 있다. 10분만 거리를 거닐어도 - 버스나 합승을 한 번만 타도 -.
어느 날, 밤늦게 돌아오던 D여사는 종점 하나 앞에서 내려야 할 것을, 연일의 과로로 버스 안에서 졸다가 종점까지 와 버렸다. 같은 버스로 한 정류장 되돌아가면 될 것이나 2,3분만이라도 빨리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으로 마침 종점에서 떠나 나오려던 다른 버스에 바꿔 탔다. D여사가 이제 막 닿은 버스에서 내린 것을 새로 떠나는 버스 차장도 보고 있었다. D여사가 한 정류장을 되돌아와서 "미안해~"하고 내리려 하자, 차장이 "요금은요? 한다. 되돌아온 것을 아는 차장이 한 정류소 사이에 요금을 달랄 줄은 D여사도 미처 생각을 못했던 것이다.
"금시 거기서 내렸던 걸 차장도 보았잖니?"
D여사가 그러자,
"봤지만, 이 차가 아니잖아요! 남의 차로 지나갔거나 말았거나 내가 알게 뭐예요!"
눈을 흘기면서 쏘아붙이는 차장 아가씨의 서슬에 D여사는 두말없이 20원을 내주고 버스를 내렸다. 며칠 후에 나를 만났을 때 D여사는 그 날 얘기를 하면서 이런 나라에 살아 있는 것이 진정 싫어졌다고 한숨 반, 웃음 반으로 하소연을 했다. 나와는 오랜 친구인 D여사 부처는, 나와 마찬가지로 외지 생활에서 여러 해 만에 고국으로 돌아온 분들이다. 고국이 그리워서 굶어도 내 나라에서 굶겠다고 남편을 설득해서 돌아온 D여사이고 보니 '20원'으로 눈앞이 캄캄해졌다는 그분의 심정은 알고도 남음이 있다.
패전직후의 일본에서는 메틸알코올을 탄 값싼 술로 해서 실명을 하고, 때로는 한잔 술에 목숨을 잃는 사람도 있었다. 한잔 술에 섞인 메틸의 분량이 인명을 앗아가도록 대단한 독성을 가진 것은 아니다. 조금씩 쌓이고 차차로 축적된 독성이 최후의 한 잔으로 그 한계를 넘어 버릴 때 '사고'가 일어난다. '20원 염세론'의 D여사의 경우가 이런 것이 아니었던가? 대수롭지 않은 작은 이화감, 작은 감정의 축적이 마침내는 조약돌 하나의 차질에도 이겨 내지 못하게 된다. D여사 같은 이는 이 사회의 부적격자이다. 쇠가죽처럼 질기고 툭툭한 정신이 아니고는 이 나라에서는 살아가지 못한다. 버스 차장이 모두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상냥하고 착한 차장 소녀들을 나도 몇 번 만난 적이 있다. 그러나 퉁명스럽고 미련한 '메틸알코올'식 차장이 절대 다수란 것도 사실이다. 어둡고 침침한 이야기가 너무 길었다. 그러나 정작 우리들의 '마음의 주림'을 설명하기로는 이런 이야기들은 백분의 1, 천분의 1의 샘플 축에도 못 간다. 5, 6만 대의 자동차가 달리는, 20여 층의 호텔이 세워진다는 서울의, 가난하고 초라함이 이러하다. '물'이 있다고 해서, '흙'이 있다고 해서 우리의 '주림'이 메워지지는 않는다. 연잎의 이슬로 목을 축이는 - 해초 위에 돌 부스러기를 덮어서 곡식을 가꾸는 그 아쉬운 생활자들이 어느 의미로는 우리보다 백 배는 더 부자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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