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시인. 일본 문학가. 호는 소운. 경남 부산 출생. 일본에서 중학 중퇴. 초기에는 시로 출발하여 관념시 계통의 시작품을 발표했으나 일본인들의 근거 없는 우월감과 한국 문화에 대한 인식 부족을 통감하고서 한국의 민요, 동요, 시 등을 일본에 소개하는 작업을 벌여 크게 주목받았다. 문학의 사회자로 문화 수출의 상인으로 자처했던 그는 후기에는 인생에의 통찰이 담긴 격조 높은 수필을 많이 발표하여 많은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마음의 주림
시골서 서울로 와서 벌써 1년 넘어 여관살이를 하는 P군의 이야기다. 무슨 사연인지 이집저집 여관으로 굴러다니는 P군의 신세도 처량하거니와 P군이 들려 준 이 얘기도 그지없이 처량하다. 찾아드는 손님의 반수 이상이 값을 깎거나 시계, 만년필 등속을 잡히고 간다(P군이 묵는 이 여관은, 도심 지대의 소위 일류 축에는 못 가도 서울서는 그래도 표준 클래스는 된다는 얘기다.). 방마다 하나씩 걸어 두는 거울-백 원도 못 가는 그 거울이 없어지는 것은 보통 일이다. 물주전자에 하나 가득 오줌을 채워 두고 사는 손님도 있다. 저 혼자가 여관 하나를 독차지나 한 것처럼 밤중 한 시 두 시까지 떠들어대는 손님, 통금 시간에도 절제를 받지 않는 특권 계급(?)들이 밤중에 와서 여자를 데려오라고 호통을 칠 때는 으레 전치사가 있다. '우린 직무상 그래도 좋게 돼 있단 말야!' 그것을 증명이나 하려는 건지 이런 '손님'들은 걸핏하면 순경을 불러오라고 호령이다(이런 것들을 손님이라 '님'자를 붙여서 부르기는 좀 곤란하지마는--하는 것이 P군의 어투다.). 사흘들이 임검이란 명목으로 단골 순경들이 찾아온다. 이럴 때 주인 마나님이 살며시 쥐어 주는 지폐도 정찰제마냥 액수가 마련되어 있다. 관 내의 어느 순경이 장가는 간다, 어느 형사의 장인 회갑이다, 그런 길사 때면 으레 '청첩장'이 온다. 서원의 가족들은 말할 것도 없고, 시골 사돈댁에 상사가 생겨도 등사판으로 찍은 부고가 돌려진다. 이런 종잇장을 쉽사리 알고 괄시했다가는 결과적으로 몇 갑절 더 부가세가 딸려 오기 마련이다.
소방서원도 소화기 비치를 빙자로 번번이 얼굴을 내민다. 물론 그런 '손님'들도 빈손으로 돌아가는 법은 없다. P군의 얘기를 듣고 있노라면 정신이 황홀할 지경이다. 그러나, 이런 것은 누구나 아는 상식화든 사실-십수 년 만에 제 나라로 돌아온 나 같은 숙맥이나 아니고는 이런 정도의 얘기에 놀라는 사람은 없다. 그래도 인정이 서울보다야 순박하려니 했던 시골살이도, 듣고 보면 서울 뺨칠 정도로 대단하다는 얘기다. 버스칸에서 조사를 한다는 젊은 군인들의 그 등등한 기세-쥐꼬리 같은 권력이자 직무를 앞장세워서 설치고 덤비는 우물 안 개구리들의 그 안하 무인의 행패를 두고는, 낚시터를 찾아서 자주 원행을 하는 P씨며 H교수들이 입담 섞어서 진담, 기담들을 수두룩이 들려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