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석편"
이효석(1907__1942)
소설가. 호는 가산. 강원도 평창 출생. 경성 제대 법문학부 졸업. 숭실 전문 학교 교수 역임. 한국적인 자연의 아름다움을 배경으로 주옥 같은 단편 소설을 썼던 이효석은 수필에도 여러 작품을 남겼다. 간결체 문장의 전형을 볼 수 있다.
우유
'모던 타임스'에서 채플린이 고따드와 가정 생활을 공상하는 대목이 있다. 물론 집이 교외에 있는 탓도 있겠지만 바로 문 밖에 열린 포도를 따먹고 우유는 문간에 매어 둔 소에게 직접 짜서 그 자리에서 마신다. 이 목가적 취미는 아마도 현대인의 누구나가 환상하는 것일 듯하다. 목가적 취미의 사치한 치장은 그만두고 그저라도 우유를 풍족히 먹고 싶다는 원부터가 우선 급하다. 나날의 곡량은 물론이거니와 시민마다가 우유를 풍족히 마실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된 사회일까. 만반 문제의 출처인 요점을 이렇게 간단히 말해 버린다면 어리석은 잠꼬대가 될는지 모르나 여기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어떻든 우유를 중요한 양식으로 삼고 그것을 때마다 흡족하게 마시는 습관과 처지에 있는 서방인이 확실히 우리보다는 행복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우유를 마시는 풍습은 물론 근래의 것, 적어도 피유리가 흑선으로 동방에 시항해 온 이후에 속한다. 그 이전에는 그것을 대신할 만한 것이 없었던 것이 사실이면 그만큼 불행하였던 것도 사실이다. 어떤 극동인이 인도에 여행하였을 때에 간디는 인도의 서민층의 생활을 생각하고 두부 만드는 법을 물었다고 한다. 영웅으로서 오히려 이러한 세밀한 배려가 있음은 하찮은 식물 한 가지의 보통화가 족히 백성 전부에게 큰 복지를 가져오는 까닭이다. 백성 전체가 우유를 흡족하게 마시는 나라야말로 두말할 것 없이 이상 사회일 것이다.
학교 농장에서 아침 저녁으로 배달해 오던 우유를 흔하게 마실 때에는 아무 걱정 없던 것이 농장의 우유가 끊어진 이후로는 크게 공황을 느끼게 되었다. 질과 값으로 거리의 우유가 도저히 농장의 것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 현관문을 열면 그 어느 날이나 번기는 법 없이 마치 성탄옹의 선물과도 같이 어림없이 듬직한 5흡들이 콜병이 유회색 문등 아래편 시멘트 바닥 위에 놓여 있었다. 로이드 영화에 나오는 커다란 그 병이다. 여름에는 담쟁이의 이슬을 맞고 겨울에는 언 채로 오뚝 놓여 있는 그 풍모부터가 우선 상 줄 만하다. 물론 새벽에 갓 짠 생우유다. 냄비에 붓고 표면에 얇은 유막이 앉을 때까지 끓여서 식후에 숭늉을 대신으로 벌떡벌떡 켜는 것이다. 겨우 한 잔의 우유로 혀를 댈까 봐 고양이같이 홀짝홀짝 핥는 것과는 운치와 격이 다르다. 특히 겨울에 얼어서 살얼음이 잡힌 것을 끓여서 흡사 풋옥수수 삶은 냄새 나는 눅진한 액체를 입안에 그득 머금었을 때 우유의 진미는 그 한 모금에 있다.
해외를 돌아온 학자가 스위스에서 먹었다는 우유 자랑을 하나 농장에서 오는 우유가 결코 그에 밑지지 않을 듯하다. 한 홉에 실비로 3전, 한 콜에 15전, 하루에 두 콜이라도 30전, 한 달에 서 말의 우유를 위 속에 부어도 9원이면 족하다. 그것이 요사이 와서는 사정이 너무도 달라졌다. 농장이 없어진 까닭에 당장에 우유 기근을 만난 셈이다. 한 홉 7전의 거리의 우유를 하루에 한 되를 마시려면 한 달에 20원을 넘는다. 미곡과 신탄대를 합한 액수보다도 많다. 농장에 있는 배달부가 K목장으로 고용을 간 날로 구면이라고 즉시 주문을 맡으러 왔다. 하는 수 없이 하루 아침에 세 홉씩을 부탁해서 식구들과 나누게 되었으나 당초에 부족한 양일 뿐 아니라, 아무래도 협잡물이 든 것 같아서 농도가 옅고 맛이 덜하다.
아침에 일어나 현관문을 열면 전과는 달리 아치형의 좁은 홍예문 아래편 시멘트 바닥 위에 가느다란 한 홉 병이 세 개 나란히 늘어서 있는 것이 콜병의 위용과는 엄청나게 빈약하게 보인다. 겨울보다 체중이 반 관이나 준 것을 우유 부족의 탓으로 돌린대도 과장을 아닐 듯싶다. 어떻든 농장의 우유는 생각할수록에 행복스런 선물이었고 지금 우유는 그래도 나으나 더 못한 악질의 우유를 찾는다면 함경선 식당차에서 파는 바로 그것이다. 세상에 우유치고 이보다 더 못한 것을 구하려면 지옥으로 가야 할 수밖에는 없을 것이다. 우유를 넉넉히 먹을 수 있는 세상이 지금에 있어서는 가장 원하는 세상이며 바라건대 거리의 복판마다 냉장의 우유 탱크를 세우고 오고 가는 시민에게 자유로 마시게 하거나 혹은 수도와 마찬가지로 지하에 우유를 묻고 각 가정에서 나사만 틀면 적량의 신선한 우유가 언제든지 졸졸 쏟아지게 하는 설비가 국가 경영으로서 하루바삐 생겨질 날을 공상이 아니라 충심으로 원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