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성일기
병자년12월 17일서부터 26일까지의 일기를 현대 맞춤법으로 바꾸어 보이면 다음과 같다.
병자 12월 17일에 상이 남문에 전좌하시고 애통교를 나리오시니, 뜰에 가득한 제신이 아니 울 이 없더라. 18일에 북문 대장 원두표가 비로소 자모 받아 나가 싸워 도둑 여섯을 죽이니라. 성중 창고에 쌀과 잡곡 합하여 겨우 일만 육천여 석이 있으니, 군병 만인의 한달 양식은 되더라. 소금, 장, 종이, 면화, 병장기, 잡물이 다 이 서가 장만하여 둔 것을 쓰니, 이 서의 재주를 칭찬하더라. 19일에 남문 대강 구 굉이 발군하여 싸워 도둑 20여명을 죽이다, 이날, 대풍이 불고 비가 오려 하더니, 김청음을 명하여 성황신에 지하니, 바람이 즉시 그치고 비 아니 오더라. 20일에 마장이 통사 정명수를 보내어 화친하기를 언약할 새, 성문을 열지 않고 성위에서 말을 전하게 하다. 21일에 어영별장 이기축이 군을 거느려 도둑 여남은을 죽이고, 동문 대장 신경진이 또 발군하여 도둑을 죽이다. 22일에 마 부대 또 통사를 보내어 이르되, "만일 황연히 깨달아 왕자, 대신을 보내면 정하여 화친하자."하자, 상이 오히려 허락치 아니하시다. 북문 어영군이 도둑 여남은을 죽이고 신경진이 또 삼십여 명을 죽이다. 상이 내정에서 호군하시다. 23일에 동서남문의 영문에서 군사를 내고, 상이 북문에서 싸움을 독촉하시다, 24일에 큰 비 오시매 성첨 지킨 군대 얼어죽은 자가 많으니 상이 세자로 더불어 뜰 가운데 서서 하늘께 빌어 왈, "금일 이에 이르기를 우리 부자가 득죄함이니, 일성 군민이 무슨 죄이리꼬. 천도가 우리부자에게 회를 나리오시고, 원컨대 만민을 살리소서." 군신들이 안으로 들으시기를 정하되 허락지 아니 하시더니 미구에 그치고 임기 온화하거늘, 성중 인민이 감읍지 않을 이 없더라. 25일에 국한하다. 묘당이 적진에 사신을 보내기를 청하오니 상이 가라사대, "아국이 매양 화친으로써 적에게 속으니, 이제 또 사신을 보내어 욕될 줄 알되, 모든 의논이 여차하니, 이때는 세시라 술과 고기를 보내고 은합에 실과를 담아서 후정을 뵌 후, 인하여 접담하여 기색을 살피리라."하시다. 26일에 이경직, 김신국이 술과 고기를 은합에 넣어 가지고 적진에 가니 적장이 기로되, "궁중에 날마다 소를 잡고 보물이 산같이 쌓였으니 이것을 무엇에 쓰리오. 네 나라 군신이 필시 굶었으리, 가히 스스로 씀직하도다." 하고 드디어 받지 아니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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