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약집까지 만들어 전국의 사찰에 배포했던 대통령이 취임도 하기 전에 공사 강행을 지시했을 때,
공동조사를 실시하기로 합의했던 환경부 장관이 2박 3일의 환경영향 평가서를 법원에 기습 제출하고, 환경영향평가를 재실시하겠다고 했던 법원이 그 결과를 바탕으로 돌연 재판을 종결한 후 재판기록을 파기했다고 했을 때,
10여개로 중복 지정된 법적 보존지역에 대하여 도룡뇽 한 마리 살지 않는 죽은 산이라고 증언하고, 함께 천성산을 오르며 조사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이제는 나도 살아야겠다"며 돌아서 갔을 때,
공동조사의 결과가 그동안 주장과 다른 결과가 나오자 "대부분의 결과가 여기에 맞지 않으니 결과를 여기에 맞추어 주십시오" 하고 강요하는 속기를 보았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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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진 사람은 가졌기에 원칙과 약속을 저버렸고 가지지 못한 사람은 가지지 못했기에 원칙과 신의를 저버렸습니다. 그 모든 순간에 저는 제가 살고 있는 세계의 그물이 찢겨져가는 모습을 보았고 그 순간의 선택은 제 몫이었고, 또한 제 몫이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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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제가 3년이나 지난 이 시점에서 다시 천성산 문제를 돌이켜 법정에 선 이유는 같은 수순을 밟으며 진행되고 있는 대형 국책사업의 논리 때문이었습니다.
분노를 매개로 정복지의 만행을 정당화 하듯, 언론은 다시 '한 비구니 = 도룡뇽을 보호를 위한 수조원의 혈세 낭비'라는 논리를 되살려 냈고, 정부는 '대한민국 발전의 걸림돌, 법치의 이완, 민주주의의 적폐'라는 논리를 되살려냈습니다. 그들은 천성산이라는 아이콘으로 환경문제와 사회문제, 그리고 종교인의 사회참여를 비하하고 불신의 골을 파는데 아무런 걸림이 없었습니다.
더구나 밖으로는 500배가 부풀려진 수조원의 국고 손실을 이야기하고 안로는 수십억의 보상을 제안을 하며 절집을 들락거리던 고속철도 공단의 이사는 국토부 장관이 되어 있었고 속기록을 소각했다고 했던 판사는 헌법재판관이 되어있었습니다.
저는 다시 가슴이 뛰기 시작했고 누군가처럼 이 세상에 소풍을 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천성산 문제에 있어 그들이 몰수하여 간 것은 진실이었고 이반된 것은 인심이었으며 비폐하여 진 것은 우리의 산하였기 때문입니다.
오지마을에 몸을 의탁하고 이름을 숨기면 세상에서 잊혀지고 소용돌이를 벗어나리라고 생각했던 것은 소박한 생각이었습니다. 그러하기에 저를 염려하며 이제 그만 산으로 돌아가라는 도반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1000번 이상 기사화 되어 우리 사회의 고정관념으로 자리 잡은 하나의 사건을 법정에 세웠고 (판결 결과와 관계없이) 소송과정을 통해 진실이 무엇인지 밝혀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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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 소송을 통해 진실은 언제가 밝혀진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고 500배나 부풀려진 공허한 수치가 가리고 있던 지점과 그 안에서 자라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리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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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지난 5달 동안 혼자 낙동강가를 하염없이 떠다녔습니다. 아무런 저항도 없이 무너져가고 있는 산하를 보며 주저앉아 통곡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자식 앞에 울지 못하는 부모처럼 그러지도 못했습니다.
이제 저는 그들이 지시하고 있는 그 혼란스러운 지점으로 다시 돌아갑니다. 천성산이 순결한 아름다움으로 저를 불러세웠다면 강은 그 장엄함과 비장함으로 저를 불러세우네요. 계절은 문득 스산합니다.
도룡소송 대변인 지율 합장
그동안 소송 진행과정을 지켜봐주시고 염려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그동안 비록 나홀로 소송으로 외롭게 법정에 섰지만 도룡뇽 소송의 대변인으로 남은 소임이기도 했습니다.
판결문은 3-4일 후에 우편으로 송달 된다고 하여 그 자세한 내용은 올려드리지 못하지만 법원은 조선일보에 10원 소송의 배상 책임이 있다는 것과 그동안 시민들의 눈을 가리고 있던 손실액, 공사기간, 공정률에 대한 반론보도를 인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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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것이 진리라고 마구 믿어버리는 것을 그만 둘 때, 인간에게 다시 시간이 되돌려 진다. -P.Y.Bourd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