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40090810165923&Section=04국회 용어, 이것만은 고치자
[소준섭의 正名論] <7>언어는 법의 도구가 아니라 법의 본질
용어에 대한 전면적 재검토 필요
국회에서 사용되고 있는 용어 중에 '본회의 부의 예정의안'이라는 말이 있다. "본 회의의 토의에 붙일 예정인 의안"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여기에서 '부의(附議)'라는 용어는 "토의에 붙이다"의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잘못 사용되고 있는 용례이다. '부의(附議)'라는 말의 정확한 의미는 "다른 사람의 제안에 동의하여 함께 공동으로 제안하다"라는 뜻이다. 원래 '부(附)'라는 한자어의 의미는 "붙다, 귀부하다, 동의하다"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부(附)'는 '부화뇌동(附和雷同)'과 같은 단어에서 정확하게 사용된다. '부의(附議)'를 "토의에 붙이다"라고 해석하는 것은 '붙이다'의 '부(附)'와 '토의'의 '의(議)'를 억지로 조합하여 만들어낸 일본식 조어이다. "(의안을) 돌려보내거나 넘기다"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회부(回附)'라는 용어 역시 '회(回)'와 '부(附)'를 억지로 조합한 일본식 조어이다.
'계류 의안'등에서 사용되는 '계류(繫留)'는 격이 맞지 않은 용어이다. '계(繫)'란 "서로 묶다"는 뜻으로서, 그리하여 '계류'는 "(선박을 부표 따위에) 붙들어 매다. 정박시키다"의 의미로 사용된다. 어촌에서 선박에나 쓰이는 이러한 용어를 우리 국회의 법률 용어로서 사용하고 있는 것은 부적절한 일에 해당한다.
또 '제출(提出)'이라는 말도 "의견이나 서류 따위를 해당 부문에 내어 놓다."라는 의미로서 국회에서 대단히 많이 사용되고 있는 일본식 용어이다. 그런데 이 용어도 '提'에 '出'을 합쳐 인위적으로 뜻을 조합한 것이다. 한자어에서 '出'이란 일반적으로 동사의 뒤에 쓰여 '나타나다' '완성되다'의 뜻을 나타낸다. 실제로 중국에서 '提出(tichu)'라는 용어는 우리와 같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제기하다' '제의하다'라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중국에서 우리와 같은 "의견이나 서류 따위를 해당 부문에 내어 놓다."라는 의미를 가지는 용어는 '提'에 '넘기다'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交'를 합친 단어인 '提交(tijiao)'이다(사실 '제기, 提起'라는 단어의 정확한 풀이야말로 '언급하다'이다).
'의안 작성'이나 '보고서 작성' 등으로 많이 사용되는 '작성(作成)'이라는 용어는 어법에 전혀 맞지 않은 일본식 한자어이다. 한자어에서 '성(成)'은 동사 뒤에 붙어 '~으로 변하다', '~되다'는 의미를 지니게 하는 동사이다. 그러므로 '작성(作成)'이라는 말을 굳이 한자어로 정확하게 풀이한다면 "~으로 하여금 ~을 이루게 하다"는 정도의 뜻으로 이해될 수 있다. 엄밀하게 말하면 하나의 독립된 언어의 구성성분으로 볼 수 없다. 사실 '의안 작성'이나 '보고서 작성'은 '의안 만들기', '보고서 쓰기'로 대체 사용하면 된다. 그런데 굳이 '작성'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이유는 이 말이 워낙 관행적으로 사용되고 있는데다가 '만들기'나 '쓰기'와 같은 순 우리말을 사용하게 되면 품위가 떨어진다고 여기는 그릇된 사회적 풍조가 결합되었기 때문이다. 두 글자 위주로만 용어를 만드는 방식은 특히 일본이 이제까지 추구해온 조어 방식이다.
두 글자만으로 조어를 하는 관행, 우리말을 스스로 천하게 간주하는 관행에서 벗어나야 한다. 여기에서 중국 조어방식을 인용하는 것은 한자어의 어의에 비추어 중국 조어방식이 (일본식 조어보다) 정확하다고 평가되기 때문이다. 언어란 사회성과 뿌리 깊은 관습을 토대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일조일석에 바꾸기가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이전에 우리말 "~읍니다"를 "~습니다"로 바꿔야 한다고 할 때 심리적인 저항감 내지 부담감이 자못 컸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언제 "~읍니다"로 사용했던가가 생각이 나지 않을 만큼 너무도 당연하게 되었다. 야구에서도 '포볼' 혹은 '사구(四球)'라는 일본식 용어를 이제 '볼넷'이라고 바꾸어 사용하고 있고, '데드볼' 혹은 '사구(死球)'라는 일본식 용어를 '몸에 맞는 공'이라고 바꾸어 '훌륭하게' 사용하고 있다. 의식적인 노력을 경주한다면, 반드시 문제가 있는 용어들을 바꿔낼 수 있다.
이밖에 국회에서 자주 사용되는 "의안을 상정하다"는 말의 '상정(上程)'이라는 용어는 '윗 上' 자와 '限度 혹은 길 程' 자를 억지로 기계적으로 합쳐 만들어낸 부자연스러운 조어이다. '발의(發議)' 역시 마찬가지이다. 물론 이러한 용어는 중국에 없다.
법률용어를 비롯하여 국회에서 사용되는 용어는 전 사회적으로 파급력이 큰 만큼 전면적인 재검토를 통하여 정확한 용어 사용을 시행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실제 독일에서는 의회 내에 '독일어협회'(우리나라의 '국립국어원'과 유사한 정부 차원의 기구)의 지부가 과(課) 단위로 설치되어 법률 용어에 대한 언어적 교정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제·개정'이라는 표현은 잘못된 표기 방식
'제정(制定)'과 '개정(改正)'의 '정' 字, 한자부터 달라
"제헌절이 다시 찾아왔지만 정작 헌법 등 법률을 제·개정하는 국회가 제때 법률을 고치지 않아 '입법공백'이 초래되고 있다."
최근 신문기사 내용이다. 이렇듯 '제·개정'이라는 표현은 신문 기사를 비롯하여 우리 사회에서 많이 사용되고 있다. 국회도서관 홈페이지에도 '국내 법령 제·개정이슈'라는 타이틀이 가장 눈에 잘 띄는 곳에 소개되어 있다.
'가운데 점(·)'의 문법적 의미에 상응하여 이해할 때 이는 '제정 및 개정'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나 '제정법률', '개정법률' 혹은 '제·개정법률'이라고 하여 '제정'을 '개정법률'의 '개정'에 대칭되는 용어로 사용하는 것은 잘못이다. 우선 어원적으로도 '제정(制定)'의 '定'과 '개정(改正)'의 '正'이 상이하기 때문에 단지 '제정'과 '개정'이라는 용어가 우리말로 '-정'으로 끝나는 공통점이 있다고 해서 제·개정이라는 용어를 만들어 편의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그야말로 커다란 웃음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사실 법의 '제정(制定)'이라고 할 때 '제정'이란 '법률을 만들다', 즉 '입법'이라는 의미와 똑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우리의 경우 법률적인 특수한 의미를 지니고 있지 않은 일반 용어를 관행적으로 법률상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여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제정법률'이란 '입법법률'이라고 사용하는 것과 같이 동어 반복에 지나지 않는다(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최초에 제정된 법'이라는 의미로서의 '제정법'이라는 용어까지 사용되는데, 제정법이란 불문법과 대비되는 '성문법'이라는 의미인 바 이 또한 전혀 타당하지 않다).
정확하게 규정한다면, 개정법 역시 '제정'된 것이며, 어느 법률이든 모두 '제정'된 것, 즉, '제정법률'인 것이다. 따라서 '제정'과 '개정' 양자는 상호 구분 · 대비되는 용어로 규정되어서는 아니 되며, 더구나 '제·개정'과 같은 '합성용어'로 양자를 묶는 것은 어이없는 오류이다.
'제정'과 '개정' 구분, 의미가 없고 구분 자체가 어려워
우리나라의 경우 근대적 의미에 있어 각종 법률이 존재하게 된 지 이제 겨우 수십 년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제정'과 '개정'의 기록을 그나마 기록해나갈 수 있다. 하지만 유럽처럼 수백 년의 법률 제정 역사를 가지고 있는 국가들의 경우 수십 차례 이상 수정된 법률이 많기 때문에 이 '개정' 사실을 법률 본문 서두의 법률 연혁에 일일이 기록하는 것 자체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 나라에서는 '제정'과 '개정'의 기록이 법률 본문에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법률 내용 내의 조항에 언제 수정되었다는 기록을 하는 방법으로 대체하는 경우가 있다. 이를테면 프랑스의「출판자유에 관한 법률(1881.7.29)」의 경우 법률 내용에 "가장 최근의 ○○법률에 의해 ○ 조항이 어떻게 수정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법률을 만들 때 이를테면 독일의 경우 어떤 법에서 제1장은 새로 만들어지는 법률을 내용으로 하고 있고, 제2장은 새 입법에 상응한 기존 법률에 대한 개정사항을 내용으로 하며, 제3장은 부칙 등과 같이 이뤄지는 경우가 현실적으로 적지 않다. 우리나라에서 일부 통용되는 법률 분류방식, 즉 '제정법률'과 '개정법률'이라는 분류를 따른다면(이를테면 법제처 국가법률정보센터의 상세검색 페이지와 국회도서관 외국법률정보 사이트), 상기한 독일 사례의 경우 이 법을 '제정' 법률로 보아야 하는가 아니면 '개정' 법률로 보아야 하는가를 분류해야 하는 불필요한 딜레마에 빠지게 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일견 명료한 것 같지만 실제로는 명확하지도 타당하지도 않은 '제정'과 '개정'으로 법률을 구분하는 방식을 극복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인위적인 용어사용은 언어적인 과학성과 함께 그 실익이 있을 때 의미가 있을 것이나 제정·개정의 구분은 복잡해지고 빈번해지는 우리 입법 실무에 부응하는 실익도 없다고 할 것이다.
'수집'의 한자는 '蒐集'인가? '收集'인가? 아니면 '粹集'인가?
'수집'이라는 용어의 한자어는 과연 무엇일까?
우리나라에서는 '수집(蒐集)'이라는 한자어를 사용하고 있다. 아마 모양도 상당히 희한한 이 한자를 정확히 쓸 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우선 '수집'이라는 우리말에 대한 한자어는 '蒐集', '收集', '搜集' 그리고 '粹集' 등등 너무 많고 번잡하다.
중국에서는 현재 '蒐集'이라는 용어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혹시 고어(古語)로만 있다고 해도 거의 모든 중국인들이 알지도 못하고 '收集'으로 대체되어 사용된다. 일본 역시 '收集'을 대표 용어로 사용하고 있다.
'蒐'자의 뜻은 "망자(亡者)의 영혼이 풀로 다시 살아난 꼭두서니"의 의미로서 한자어의 모양으로 풀이해보면 '艸' 초두머리에 귀신 '鬼' 자로서 "희귀한, 기괴한 것"을 뜻하고 망자가 남긴 유품이나 유물이라는 의미로 확대되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蒐集'이란 "기이한 옛것을 모으다"라는 의미를 가진다고 볼 수 있으며, 우표 '수집'이라든가 골동품 '수집' 등의 경우에만 적합하다고 할 수 있다.
국회법 제42조는 "專門委員은 委員會에서 議案과 請願등의 審査, 國政監査, 國政調査 기타 所管事項과 관련하여 檢討報告 및 關聯資料의 蒐集·調査·硏究를 행한다."고 되어 있다.
이처럼 현재 우리나라 대부분의 법률에서는 '자료 수집' 등에 사용하는 '수집'이라는 법률 용어를 '蒐集'으로 표기하고 있다. 그런데 국회도서관의 기구 중 '자료수집과'를 표기하는 '수집'에 해당하는 한자는 자료수집과(資料收集課)의 방식으로 표기하고 있다. 법률 용어에서는 '蒐集'이라는 한자어를 사용하고, '자료수집과'의 조직 명칭에는 '收集'이라는 상이한 한자어를 사용하는 이러한 혼선은 시급히 해결되어야 한다. 차제에 현재 번잡하게 사용되는 '수집'에 대한 한자어를 중국이나 일본의 경우처럼 '수집(收集)'으로 단일화하여 지정해야 할 것이다.
법의 도구가 아닌, 법의 본질로서의 언어
「의장법(意匠法)」이라는 법이 있었다. 그러나 이 법이 어떤 내용의 법인지 알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사실 이 법은 일본의 법을 일제시기를 거쳐 해방 이후에도 그대로 쓰고 있던 것이었다. '의장(意匠)'이란 '디자인'을 번역한 일본 한자어로서 특허 분야에 종사하는 극소수 사람들을 제외하고 일반인으로서는 도저히 알 수가 없는 말이다. 결국 이 법은 현재「디자인보호법」으로 법명이 변경되었다. 여기에서 우리가 참으로 가슴 아프게 생각해야 할 것은 종주국 일본의 '의장'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다가 이제 '새로운 종주국'으로서의 위상을 가진 미국의 '디자인'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 우리의 '슬픈' 현주소이다.
법률 용어는 일제 식민지시대 이래 일본의 법조문을 그대로 직역하여 옮겨 놓았기 때문에 그 폐해를 고스란히 받고 있다. 해방 후에도 미군정법령 제21호 '법률 제명령의 존속'을 제정, 공포함으로써 명시적으로 폐기된 법령을 제외한 일제의 법령은 그대로 효력을 존속하게 되었다. 또한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후에도 제헌헌법 제10장 부칙 제100조에서 "현행 법령은 이 헌법에 저촉되지 아니하는 한 효력을 가진다."라는 규정에 의하여 새로운 법령을 제정하기까지 일본 법령이 그대로 사용되었다.
더구나 계속된 정국 불안과 한국전쟁 등으로 인하여 건국 초기의 법령정비사업은 "사실상 일본법을 그대로 베끼는 수준"으로 마무리할 수밖에 없었고, 이는 후세대들에게 법령용어의 순화라는 무거운 부담을 남겨 주었다. 특히 심각한 문제는 일본 법령에 대한 의존의 '관행'은 현재까지도 존속하고 있는 '현재진행형'이라는 데 있다고 할 것이다. 심지어 일본 법령을 조사(助詞)까지도 완벽하게 차용(借用)하는 '관행'으로 인하여 일본 방식의 잘못된 용어와 문장이 우리 법령의 용어에서 정착되는 악순환이 이어지게 되었다.
19세기 독일 법학계를 주도한 사비니(Savigny)는 로마법을 계수(繼受)한 독일이 로마법을 독일 민족의 법으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로마법상의 법률용어를 독일어화(獨逸語化)할 것을 강조하였다. 독일 통일민법전의 제정 여부를 둘러싼 사비니와 티보(Thibaut) 간의 법전 논쟁에서 사비니의 반대 이유 중의 하나도 바로 언어의 문제였다. 즉, 언어를 법의 도구가 아니고 법의 본질로 이해한 사비니는 민족정신이 반영되어야 할 법전에 사용될 법률용어가 당시 독일법학에서는 아직 제대로 형성되지 아니한 것으로 보았다. 그리하여 그의 저서『현대 로마법체계』는 라틴어적 법률용어를 독일어화하기 위한 정지작업(整地作業)이었으며, 현행 독일민법전은 라틴어적 법률용어의 독어화를 위한 사비니와 그 이후 세대들의 집념의 결실이라 할 수 있다. 사비니는 로마법의 법률 용어를 독일어로 단순하게 번역한 것이 아니라 로마법의 정신을 함축하는 독일적인 법률용어를 창조하는 데 주력하였던 것이다(임중호, "한국에서의 외국법의 계수와 법률용어의 형성과정",「법학논문집」).
[소준섭의 正名論] <7>언어는 법의 도구가 아니라 법의 본질
용어에 대한 전면적 재검토 필요
국회에서 사용되고 있는 용어 중에 '본회의 부의 예정의안'이라는 말이 있다. "본 회의의 토의에 붙일 예정인 의안"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여기에서 '부의(附議)'라는 용어는 "토의에 붙이다"의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잘못 사용되고 있는 용례이다. '부의(附議)'라는 말의 정확한 의미는 "다른 사람의 제안에 동의하여 함께 공동으로 제안하다"라는 뜻이다. 원래 '부(附)'라는 한자어의 의미는 "붙다, 귀부하다, 동의하다"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부(附)'는 '부화뇌동(附和雷同)'과 같은 단어에서 정확하게 사용된다. '부의(附議)'를 "토의에 붙이다"라고 해석하는 것은 '붙이다'의 '부(附)'와 '토의'의 '의(議)'를 억지로 조합하여 만들어낸 일본식 조어이다. "(의안을) 돌려보내거나 넘기다"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회부(回附)'라는 용어 역시 '회(回)'와 '부(附)'를 억지로 조합한 일본식 조어이다.
'계류 의안'등에서 사용되는 '계류(繫留)'는 격이 맞지 않은 용어이다. '계(繫)'란 "서로 묶다"는 뜻으로서, 그리하여 '계류'는 "(선박을 부표 따위에) 붙들어 매다. 정박시키다"의 의미로 사용된다. 어촌에서 선박에나 쓰이는 이러한 용어를 우리 국회의 법률 용어로서 사용하고 있는 것은 부적절한 일에 해당한다.
또 '제출(提出)'이라는 말도 "의견이나 서류 따위를 해당 부문에 내어 놓다."라는 의미로서 국회에서 대단히 많이 사용되고 있는 일본식 용어이다. 그런데 이 용어도 '提'에 '出'을 합쳐 인위적으로 뜻을 조합한 것이다. 한자어에서 '出'이란 일반적으로 동사의 뒤에 쓰여 '나타나다' '완성되다'의 뜻을 나타낸다. 실제로 중국에서 '提出(tichu)'라는 용어는 우리와 같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제기하다' '제의하다'라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중국에서 우리와 같은 "의견이나 서류 따위를 해당 부문에 내어 놓다."라는 의미를 가지는 용어는 '提'에 '넘기다'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交'를 합친 단어인 '提交(tijiao)'이다(사실 '제기, 提起'라는 단어의 정확한 풀이야말로 '언급하다'이다).
'의안 작성'이나 '보고서 작성' 등으로 많이 사용되는 '작성(作成)'이라는 용어는 어법에 전혀 맞지 않은 일본식 한자어이다. 한자어에서 '성(成)'은 동사 뒤에 붙어 '~으로 변하다', '~되다'는 의미를 지니게 하는 동사이다. 그러므로 '작성(作成)'이라는 말을 굳이 한자어로 정확하게 풀이한다면 "~으로 하여금 ~을 이루게 하다"는 정도의 뜻으로 이해될 수 있다. 엄밀하게 말하면 하나의 독립된 언어의 구성성분으로 볼 수 없다. 사실 '의안 작성'이나 '보고서 작성'은 '의안 만들기', '보고서 쓰기'로 대체 사용하면 된다. 그런데 굳이 '작성'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이유는 이 말이 워낙 관행적으로 사용되고 있는데다가 '만들기'나 '쓰기'와 같은 순 우리말을 사용하게 되면 품위가 떨어진다고 여기는 그릇된 사회적 풍조가 결합되었기 때문이다. 두 글자 위주로만 용어를 만드는 방식은 특히 일본이 이제까지 추구해온 조어 방식이다.
두 글자만으로 조어를 하는 관행, 우리말을 스스로 천하게 간주하는 관행에서 벗어나야 한다. 여기에서 중국 조어방식을 인용하는 것은 한자어의 어의에 비추어 중국 조어방식이 (일본식 조어보다) 정확하다고 평가되기 때문이다. 언어란 사회성과 뿌리 깊은 관습을 토대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일조일석에 바꾸기가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이전에 우리말 "~읍니다"를 "~습니다"로 바꿔야 한다고 할 때 심리적인 저항감 내지 부담감이 자못 컸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언제 "~읍니다"로 사용했던가가 생각이 나지 않을 만큼 너무도 당연하게 되었다. 야구에서도 '포볼' 혹은 '사구(四球)'라는 일본식 용어를 이제 '볼넷'이라고 바꾸어 사용하고 있고, '데드볼' 혹은 '사구(死球)'라는 일본식 용어를 '몸에 맞는 공'이라고 바꾸어 '훌륭하게' 사용하고 있다. 의식적인 노력을 경주한다면, 반드시 문제가 있는 용어들을 바꿔낼 수 있다.
이밖에 국회에서 자주 사용되는 "의안을 상정하다"는 말의 '상정(上程)'이라는 용어는 '윗 上' 자와 '限度 혹은 길 程' 자를 억지로 기계적으로 합쳐 만들어낸 부자연스러운 조어이다. '발의(發議)' 역시 마찬가지이다. 물론 이러한 용어는 중국에 없다.
법률용어를 비롯하여 국회에서 사용되는 용어는 전 사회적으로 파급력이 큰 만큼 전면적인 재검토를 통하여 정확한 용어 사용을 시행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실제 독일에서는 의회 내에 '독일어협회'(우리나라의 '국립국어원'과 유사한 정부 차원의 기구)의 지부가 과(課) 단위로 설치되어 법률 용어에 대한 언어적 교정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제·개정'이라는 표현은 잘못된 표기 방식
'제정(制定)'과 '개정(改正)'의 '정' 字, 한자부터 달라
"제헌절이 다시 찾아왔지만 정작 헌법 등 법률을 제·개정하는 국회가 제때 법률을 고치지 않아 '입법공백'이 초래되고 있다."
최근 신문기사 내용이다. 이렇듯 '제·개정'이라는 표현은 신문 기사를 비롯하여 우리 사회에서 많이 사용되고 있다. 국회도서관 홈페이지에도 '국내 법령 제·개정이슈'라는 타이틀이 가장 눈에 잘 띄는 곳에 소개되어 있다.
'가운데 점(·)'의 문법적 의미에 상응하여 이해할 때 이는 '제정 및 개정'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나 '제정법률', '개정법률' 혹은 '제·개정법률'이라고 하여 '제정'을 '개정법률'의 '개정'에 대칭되는 용어로 사용하는 것은 잘못이다. 우선 어원적으로도 '제정(制定)'의 '定'과 '개정(改正)'의 '正'이 상이하기 때문에 단지 '제정'과 '개정'이라는 용어가 우리말로 '-정'으로 끝나는 공통점이 있다고 해서 제·개정이라는 용어를 만들어 편의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그야말로 커다란 웃음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사실 법의 '제정(制定)'이라고 할 때 '제정'이란 '법률을 만들다', 즉 '입법'이라는 의미와 똑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우리의 경우 법률적인 특수한 의미를 지니고 있지 않은 일반 용어를 관행적으로 법률상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여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제정법률'이란 '입법법률'이라고 사용하는 것과 같이 동어 반복에 지나지 않는다(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최초에 제정된 법'이라는 의미로서의 '제정법'이라는 용어까지 사용되는데, 제정법이란 불문법과 대비되는 '성문법'이라는 의미인 바 이 또한 전혀 타당하지 않다).
정확하게 규정한다면, 개정법 역시 '제정'된 것이며, 어느 법률이든 모두 '제정'된 것, 즉, '제정법률'인 것이다. 따라서 '제정'과 '개정' 양자는 상호 구분 · 대비되는 용어로 규정되어서는 아니 되며, 더구나 '제·개정'과 같은 '합성용어'로 양자를 묶는 것은 어이없는 오류이다.
'제정'과 '개정' 구분, 의미가 없고 구분 자체가 어려워
우리나라의 경우 근대적 의미에 있어 각종 법률이 존재하게 된 지 이제 겨우 수십 년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제정'과 '개정'의 기록을 그나마 기록해나갈 수 있다. 하지만 유럽처럼 수백 년의 법률 제정 역사를 가지고 있는 국가들의 경우 수십 차례 이상 수정된 법률이 많기 때문에 이 '개정' 사실을 법률 본문 서두의 법률 연혁에 일일이 기록하는 것 자체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 나라에서는 '제정'과 '개정'의 기록이 법률 본문에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법률 내용 내의 조항에 언제 수정되었다는 기록을 하는 방법으로 대체하는 경우가 있다. 이를테면 프랑스의「출판자유에 관한 법률(1881.7.29)」의 경우 법률 내용에 "가장 최근의 ○○법률에 의해 ○ 조항이 어떻게 수정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법률을 만들 때 이를테면 독일의 경우 어떤 법에서 제1장은 새로 만들어지는 법률을 내용으로 하고 있고, 제2장은 새 입법에 상응한 기존 법률에 대한 개정사항을 내용으로 하며, 제3장은 부칙 등과 같이 이뤄지는 경우가 현실적으로 적지 않다. 우리나라에서 일부 통용되는 법률 분류방식, 즉 '제정법률'과 '개정법률'이라는 분류를 따른다면(이를테면 법제처 국가법률정보센터의 상세검색 페이지와 국회도서관 외국법률정보 사이트), 상기한 독일 사례의 경우 이 법을 '제정' 법률로 보아야 하는가 아니면 '개정' 법률로 보아야 하는가를 분류해야 하는 불필요한 딜레마에 빠지게 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일견 명료한 것 같지만 실제로는 명확하지도 타당하지도 않은 '제정'과 '개정'으로 법률을 구분하는 방식을 극복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인위적인 용어사용은 언어적인 과학성과 함께 그 실익이 있을 때 의미가 있을 것이나 제정·개정의 구분은 복잡해지고 빈번해지는 우리 입법 실무에 부응하는 실익도 없다고 할 것이다.
'수집'의 한자는 '蒐集'인가? '收集'인가? 아니면 '粹集'인가?
'수집'이라는 용어의 한자어는 과연 무엇일까?
우리나라에서는 '수집(蒐集)'이라는 한자어를 사용하고 있다. 아마 모양도 상당히 희한한 이 한자를 정확히 쓸 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우선 '수집'이라는 우리말에 대한 한자어는 '蒐集', '收集', '搜集' 그리고 '粹集' 등등 너무 많고 번잡하다.
중국에서는 현재 '蒐集'이라는 용어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혹시 고어(古語)로만 있다고 해도 거의 모든 중국인들이 알지도 못하고 '收集'으로 대체되어 사용된다. 일본 역시 '收集'을 대표 용어로 사용하고 있다.
'蒐'자의 뜻은 "망자(亡者)의 영혼이 풀로 다시 살아난 꼭두서니"의 의미로서 한자어의 모양으로 풀이해보면 '艸' 초두머리에 귀신 '鬼' 자로서 "희귀한, 기괴한 것"을 뜻하고 망자가 남긴 유품이나 유물이라는 의미로 확대되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蒐集'이란 "기이한 옛것을 모으다"라는 의미를 가진다고 볼 수 있으며, 우표 '수집'이라든가 골동품 '수집' 등의 경우에만 적합하다고 할 수 있다.
국회법 제42조는 "專門委員은 委員會에서 議案과 請願등의 審査, 國政監査, 國政調査 기타 所管事項과 관련하여 檢討報告 및 關聯資料의 蒐集·調査·硏究를 행한다."고 되어 있다.
이처럼 현재 우리나라 대부분의 법률에서는 '자료 수집' 등에 사용하는 '수집'이라는 법률 용어를 '蒐集'으로 표기하고 있다. 그런데 국회도서관의 기구 중 '자료수집과'를 표기하는 '수집'에 해당하는 한자는 자료수집과(資料收集課)의 방식으로 표기하고 있다. 법률 용어에서는 '蒐集'이라는 한자어를 사용하고, '자료수집과'의 조직 명칭에는 '收集'이라는 상이한 한자어를 사용하는 이러한 혼선은 시급히 해결되어야 한다. 차제에 현재 번잡하게 사용되는 '수집'에 대한 한자어를 중국이나 일본의 경우처럼 '수집(收集)'으로 단일화하여 지정해야 할 것이다.
법의 도구가 아닌, 법의 본질로서의 언어
「의장법(意匠法)」이라는 법이 있었다. 그러나 이 법이 어떤 내용의 법인지 알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사실 이 법은 일본의 법을 일제시기를 거쳐 해방 이후에도 그대로 쓰고 있던 것이었다. '의장(意匠)'이란 '디자인'을 번역한 일본 한자어로서 특허 분야에 종사하는 극소수 사람들을 제외하고 일반인으로서는 도저히 알 수가 없는 말이다. 결국 이 법은 현재「디자인보호법」으로 법명이 변경되었다. 여기에서 우리가 참으로 가슴 아프게 생각해야 할 것은 종주국 일본의 '의장'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다가 이제 '새로운 종주국'으로서의 위상을 가진 미국의 '디자인'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 우리의 '슬픈' 현주소이다.
법률 용어는 일제 식민지시대 이래 일본의 법조문을 그대로 직역하여 옮겨 놓았기 때문에 그 폐해를 고스란히 받고 있다. 해방 후에도 미군정법령 제21호 '법률 제명령의 존속'을 제정, 공포함으로써 명시적으로 폐기된 법령을 제외한 일제의 법령은 그대로 효력을 존속하게 되었다. 또한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후에도 제헌헌법 제10장 부칙 제100조에서 "현행 법령은 이 헌법에 저촉되지 아니하는 한 효력을 가진다."라는 규정에 의하여 새로운 법령을 제정하기까지 일본 법령이 그대로 사용되었다.
더구나 계속된 정국 불안과 한국전쟁 등으로 인하여 건국 초기의 법령정비사업은 "사실상 일본법을 그대로 베끼는 수준"으로 마무리할 수밖에 없었고, 이는 후세대들에게 법령용어의 순화라는 무거운 부담을 남겨 주었다. 특히 심각한 문제는 일본 법령에 대한 의존의 '관행'은 현재까지도 존속하고 있는 '현재진행형'이라는 데 있다고 할 것이다. 심지어 일본 법령을 조사(助詞)까지도 완벽하게 차용(借用)하는 '관행'으로 인하여 일본 방식의 잘못된 용어와 문장이 우리 법령의 용어에서 정착되는 악순환이 이어지게 되었다.
19세기 독일 법학계를 주도한 사비니(Savigny)는 로마법을 계수(繼受)한 독일이 로마법을 독일 민족의 법으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로마법상의 법률용어를 독일어화(獨逸語化)할 것을 강조하였다. 독일 통일민법전의 제정 여부를 둘러싼 사비니와 티보(Thibaut) 간의 법전 논쟁에서 사비니의 반대 이유 중의 하나도 바로 언어의 문제였다. 즉, 언어를 법의 도구가 아니고 법의 본질로 이해한 사비니는 민족정신이 반영되어야 할 법전에 사용될 법률용어가 당시 독일법학에서는 아직 제대로 형성되지 아니한 것으로 보았다. 그리하여 그의 저서『현대 로마법체계』는 라틴어적 법률용어를 독일어화하기 위한 정지작업(整地作業)이었으며, 현행 독일민법전은 라틴어적 법률용어의 독어화를 위한 사비니와 그 이후 세대들의 집념의 결실이라 할 수 있다. 사비니는 로마법의 법률 용어를 독일어로 단순하게 번역한 것이 아니라 로마법의 정신을 함축하는 독일적인 법률용어를 창조하는 데 주력하였던 것이다(임중호, "한국에서의 외국법의 계수와 법률용어의 형성과정",「법학논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