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트의 성과 권력 - 권택영
제1부 무의식과 성이론
1. 무의식과 성
프로이트의 성이론 : 혁명성과 보수성
혁명성 '성이론에 대한 세 글'과 '문명화된 성도덕과 현대 신경증'
현대 여성이론가들이 프로이트의 성이론 가운데 교과서처럼 삼는 중요한 글, '성이론에 대한 세 글'(Three Essays on the Theory of Sexuality)은 1905년에 발표되었다. 이 해는 여성이론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글 '도라 분석' (Fragment of an Analysis of a Case Hysteria)이 출판된 해이다. 자신의 새로운 발견이 과학적으로 증명되기를 바랐던 프로이트는 '꿈의 분석'을 한동안 접어두었다 발표했고 '도라 분석'도 5년이 지난 후에 발표한다. 그러므로 '성이론에 대한 세 글'은 도라 분석에 대해 어느 정도 확신이 선 후 그것에 새로움을 보태고 정리한 글이라 볼 수 있다. 두 글은 어느 점이 비슷하고 어느 점이 다른가. 도라는 프로이트의 초기 사상에 큰 영향을 준 인물이다. 그의 주저인 '꿈의 분석'이 출판되던 때쯤 이루어진 신경증 환자의 치료였고 무의식의 확인뿐 아니라 여성이론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 동성애 문제가 암시된다. 또 환자와 분석자사이의 전이, 기억과 대화와 구성 사이에 존재하는 허구성이 암시되어 훗날 그의 글들에서 본격적으로 전개되는 주요 사상들이 이미 배태되어있었다. 프로이트는 '도라 분석'을 출판하며 자신의 치료가 실패했고 분석의 기록조차 정확치 못하다고 밝힌다. 실패 이유는 도라가 아버지에 대한 증오와 K씨에 대한 분노를 자신에게 전이시켜 복수하느라 치료를 중단해 버린 것이고 기록에 허구가 개입되는 것은 도라의 환상, 분석 과 정, 그것의 기록이 시간의 차이를 두고 이루어져 사후에 정리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서문 아래 밝혀지는 도라 분석이 중요한 것은 맨 마지막, 가장 억압된 신경증의 원인이 도라의 K부인에 대한 사랑이라는 데 있다. 즉 아버지를 사랑한 도라는 K부인과 밀회를 갖는 아버지에게 증오를 품게 되고 그 대가로 주어지는 K씨의 구애를 즐기지만 막상 호숫가에서 K씨가 청하는 요구를 격렬히 거부한다. 도라의 가장 깊은 무의식 속에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보다 더 근원적인 욕망, 동성애가 있었다. 그것은 여성 이 같은 여성을 증오하고 아버지의 아이를 갖기 위해 수동적이고 열등한 존재가 된다는 가부장제 성이론을 반박하는 근거가 된다. 가부장제 사회에 의해 남성과 여성이 적극성과 수동성이라는 우월의 관계로 구조되기 이전, 오이디푸스 상황 이전에는 남녀가 동등했다는 암시가 도라의 의식 깊이 묻혀 있었고 프로이트는 이것을 감히 건드릴 수가 없었다. 아마도 도라가 전이를 일으켜 치료가 중단되었다기보다 프로이트가 더 이상 치료의 끝을 보기가 두려웠는지도 모른다. 그가 서둘러 서술을 마감한 시절이 바로 도라가 아버지와 동일시하여 K부인을 사랑했다는 동성애, 아니 도라의 남성성에 이르러서였기 때문이다. 당시 유럽사회에서 동성애는 죄악으로 인정되었다. '도라 분석'에 대한 출판을 미루고 5년이 지난 후 프로이트는 좀 더 확실한 근거를 가지고 도라 분석을 선보이는데 그 근거가 바로 '성이론에 대한 세 글'이었다. 그리고 이 글에서 핵심이 되는 성도착, 유아기의 성, 양성성, 자기성애 등은 오이디푸스 상황 이전에 남녀 평등의 단계가 있었다는 중요한 근거들로서 여성이론가들의 성차별이란 가부장제 사회와 문명의 산물이지 태어날 때부터 지닌 인간의 자연스런 속성이 아니라는 주장에 공헌한다.
성도착이란 문명이 인위적으로 주변화시킨 성본능이다
리비도는 배고픔과 같은 인간의 본능이고 프로이트에게는 삶을 움직이는 동력이다. 흔히 인간의 성은 사춘기 때부터 시작된다고 알려져 있지 만 그 이전에 이미 태어난 후부터 성이 있었고 그것이 억압되어온 것은 아닐까. 흔히 우리가 성도착이라고 제외시키는 성은 신경증 환자에게만 나타나는 게 아니라 교양인에게도 귀족에게도 나타나는 현상으로 은밀히 감추어져 있을 뿐이다. 성도착은 무엇인가. 남녀가 자식을 낳는 것에 목적을 두고 생식기를 통해 이루어지는 성합, 즉 이성간의 성(hetero-sexuality) 이외의 성이다. 그런데도 동성애 등 도착이라고 밀려난 성들이 얼마나 공공연하게 정상인들 사이에서 행해져 왔는가. 그렇다면 이성간의 성이란 사회가 규정한 성이지 본래의 자연스런 성이 아닌지도 모른다. 그리고 사춘기란 남녀간의 성을 위해 남성과 여성이 우월의 관계로 가름지어지는 사회적 성의 출발일 뿐 그 이전에 태어날 때부터 지닌 아주 자연스런 성이 있었을 것이다. 이 억압된 성, '유아기 성'(Infantile Sexuality)이 프로이트 성 이론에서 무의식이요, 타자이다. 인구 정책으로 문명이 성을 규제하기 이전의 원시 사회나 유아기에 남녀의 구분은 없었다. 아이는 태어나서 삶 본능에 의해 자기를 보살피는 사람과 애정을 교감한다. 이때 애정은 대상을 향한 것이라기보다 혼자스스로 충만한 기쁨으로 몸 전체를 성감대로 하는 자발적 혹은 자기성애(auto- erotism)이다. 어머니의 따스한 손길과 입맞춤, 젖을 먹여주고 배설을 치워주는 것 등 모든 게 환희요, 아늑함인 이 시기는 어떤 사회적금기도 존재하지 않는 낙원이었다. 아담과 이브 사이에 다른 어떤 타자가 존재하지 않고 서로가 완벽하게 서로를 사랑하고 충만해 하던 에덴동산이었다. 둘의 시선은 서로 바라보기만 할 뿐 누구에 의해서도 보여지지 않는다. 바라봄(eye)만 있고 보여짐(gaze)이 없는 낙원에서 타자란 없었다. 제 삼의 시선이 없으니 금기도 억압도 없는 것이다. 둘은 벗은 몸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사회와 문명이 개입되기 이전, 지식의 열매를 먹고 눈을 뜨고 부끄러움을 알기 이전이다. '자발적 성애', 혹은 '유아기성'이란 바로 이것이고 이때 어머니와 아이는 한 몸이고 서로가 서로의 완벽한 남근이다. 물론 이것은 아이의 환상일 뿐, 어머니는 아버지의 연인이고 동생의 연인이다. 그러나 이 환상과 경험을 단념하지 못하고 실낙원에 사는데, 낙원이 있으리라고 믿는 것에 존재의 비극이 있다. 그래서 프로이트는 이 단계를 '원초적 나르시시즘'이라 했고 라캉은 '거울단계'라 한다.
2세에서 4세 사이에 정점을 이루고 그 이후 억압되는 자기성애는 성장하면서 사회적 제약에의해 남녀가 자식을 낳는 사회적 임무에 종속된다. 그러나 그 이후 정상적인 성인들에게 여전히 도착이 남아 있는 것을 보면 그것은 사회와 문명에 의해 제약이 가해져 주변으로 물러났을 뿐 원래는 자연스런 성이었다는 추론을 낳게 한다. 성도착이 원래는 자연스런 성이었다는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왜 사랑에 빠진 연인은 대상을 바로 보지 못하고 과대평가 하는가. 그녀를 사랑하는 순간부터 그녀가 가진 모든 것은 광휘를 발하며 빛나 보인다. 젊은 베르테르는 로테가 준 오렌지를 소중히 간직한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그였지만 그녀가 아이들에게 오렌지 조각을 나누어줄 때 그는 마 치 아이들이 자신의 살점을 떼어 가는 것처럼 느낀다. 죽을 때 베르테르는 로테를 처음 만났을 때 입었던 연미복을 입는다. 로테가 바라본 옷은 그에게 그녀 자체이고 그는 그 옷을 입으며 그녀에게 감싸인 듯 느낀다. 그리고는 로테가 만진 권총에 의해 목숨을 끊는다. 체호프의 '귀여운 여인'에서는 사랑에 빠진 남자의 직업이 언제나 최고의 가치를 갖는다. 그가 극장 매표원이면 연극이 세상에서 최고요, 그가 목수이면 나무가 수의사면 동물이 최고의 가치를 지닌다. 만지는 것마다 황금으로 변하는 미다스의 손길처럼 연인과 관계되는 모든 것이 에로틱해진다. 오렌지는 그냥 하나의 과일이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주었을 때는 바로 그 연인과 같아진다. 이것이 사랑이 지닌 환유적 속성이다. 프로이트는 이것을 '페티시즘'으로 표현했다. '자발적 성애'는 대상을 사랑할 때 특히 손에 닿지 못할 때 그것을 완벽한 어린 시절의 어머니로 믿게 만드는 환상을 창조한다. 온몸이 성감대였던 시절, 나르시즘적 자기애에 충만해 있던 경험은 억압되었지만 사라지지 않고 되돌아와 대상에 투사된다. 그는 연인의 얼굴에서도 자기 얼굴을 보고 대상을 사랑하지만 사실은 대상에 비친 자기를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과대 평가는 지상에서 결코 지속되지 못한다. 그런 사랑은 대상을 얻음으로써 끝이 나거나 대상을 잃음으로써 막을 내리기 때문이다.
동성애는 사회가 금지하는데도 여전히 교양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존재한다. 그리고 남성끼리 사랑하는 경우에 한쪽은 남성적 성향(mus-culinity)을 띠고 상대방은 여성적 성향(femininity)을 띤다. 여성끼리 사랑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인간은 원래 양성적 존재가 아닐 까. 해부학은 인간이 원래 암수 한몸이었는데 차츰 단성으로 퇴화되었다고 말한다. 프로이트는 심리적으로도 인간은 원래 양성이었는데 사회가 단성이 되도록 억압했다고 말한다. 인류의 보존과 노동력의 증가를 위해 사회는 남녀가 이성으로 합법적인 결혼을 통해 아이를 낳아 양육하도록 가르쳐 왔다는 것이다. 문명은 그런 이성간의 성만이 옳은 것이라고 훈련 시켜온 것이다. 자발적 성애의 단계에서 남녀의 구별은 없다. 그때에는 남아와 여아가 모두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남성적 성향을 갖는다. 리비도는 하나였고 그 것은 남성적이었다. 프로이트가 지적한 이 '리비도는 하나였다'라는 말과 양성성(bisexuality)은 여성 이론가들에게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특히 인간이 사회에 의해 억압되기 이전에 남녀가 평등했던 시절이 있었다는 가설은 프로이트 성이론의 혁신적 측면으로 많은 용어들을 낳고 여성이론가들에 의해 재해석된다. 남근기, 자발적 성애, 동성애, 양성성 등은 소위 '오이디푸스 전 단계'라 하여 20세기 후반부의 지적 흐름에서 도전적인 부분이 된다. 그가 말한 '사회'라는 말 앞에 '가부장제' 라는 형용사를 덧붙이면 그대로 여성이론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리비도는 공격적이기에 성 본능에는 본질적으로 대상에게 고통을 주려는 욕망이 들어 있다. 가장 흔하고 중요한 도착 가운데 하나가 사디즘과 마조히즘이다. 성이 갖는 잔인성은 동물적 욕망의 잔재이다. 한 쪽은 고통을 주는 데서 쾌감을 얻고 다른 쪽은 고통을 당하는 데서 쾌감을 얻는다. 어떻게 고통을 받는 경우에도 쾌감을 느끼는가. 프로이트는 말한다. 사디스트는 늘 동시에 마조히스트라고. 가학자는 피학자의 얼굴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고 피학자는 가학자의 얼굴에서 자신을 본다. 그렇다면 이런 종류의 충족이란 나르시스적 욕망, 자기성애가 억압되었다가 되돌아오는 것은 아닌가. 사실 이런 충동은 정상인에게도 있으며 오직 극단적인 경우에만 도착증 환자가 되고 그것을 억압할 때 신경증 환자가 된다. 도착증과 신경증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으로 억압된 성이 있었음을 말해주는 예이다. 인간은 교육의 정도와 인성의 차이에 의해 도착증이 더 나타나거나 덜 나타날 뿐이고 지나치게 결백할 때는 오히려 신경증이 된다.
사디즘과 마조히즘이 하나라는 것은 공격성과 수동성, 남성성과 여성성이 하나였다는 것을 말해준다. 인간은 원래 양성성이었다 이것이 프로이트가 여성이론에 공헌한 부분이다. 전희(fore-pleasure) 역시 유아기 성이 억압되었지만 되돌아오는 예를 보여준다. 성은 두 가지 성향을 지닌다. 어릴 적 어머니의 보호를 받던 유아기 성인 '애정성향'과 사춘기부터 발달되는 '관능성향'이다. 나르시스적 자발적 성애의 단계가 억압된 후 성감대는 온몸에서 특정 부위로 축소된다. 사춘기가 지나면 남녀의 구분이 명확해지고 성은 대상을 찾는다. 자기성애에서 대상을 향해 옮아가며 성은 남녀가 결합하여 자식을 낳는 사회적 이익(후에 프로이트는 이 성본능도 역시 자아보존 본능이라 하여 삶 본능의 범주에 넣고 대신 죽음 본능을 대치시킨다)에 종속된다. 그런데 애정성향은 관능성향의 밑받침이 되어 애정과 육체가 조화를 이룬다. 정상적인 성생활을 위해서는 어릴 적 어머니로부터 받은 사랑이 대상을 향한 관능과 조화를 미루어야 한다. 전희는 바로 억압된 애정성향이 되돌아온 흔적이다. 사춘기 이전에 유아기 성이 있었고 오이디푸스 상황 이전에 오이디푸스 전 단계가 있었다는 프로이트의 가정은 상징계의 성차를 의심해보고 가부장제를 무너뜨리려는 여성이론가들에게 이론적인 뒷받침이 되었다. 특히 프랑스 페미니스트들인 엘렌 식수스의 '여성적 글쓰기'나 줄리아 크리스테바의 기호계의 저항은 바로 남녀의 성차가 없던 유아기 성인 양성성에 뿌리내린 이론들이다. 그러나 프로이트의 이론이 늘 그렇게 여성들에게 유리한 것은 아니었다. 후기에 가서 그가 초자아와 거세 콤플렉스를 강조할 때 그는 당대 가부장제 질서를 거와 옹호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초기에 무의식이나 타자를 강조하는 혁명적인 글 속에서도 이런 보수적인 측면은 언뜻 보인다. 사춘기 이후성에서 남아와 여아가 적극성과 수동성으로 갈라지는 분기점은 아마도 그 악명 높은 '남근선망' (penis-envy)이라는 용어일 것이다. 남근의 유무에 의해, 눈에 보이는 해부학적 특성에 의해 그는 남성성과 여성성을 규정지었고 이런 암시는 후기의 글들에서 본격적으로 발전되며 되풀이된다.
20세기 전반부 존스(Ernest Jones)나 호나이(Karen Horney)와 같은 여성이론가들이 프로이트의 거세 콤플렉스에 반발하고 프로이트를 반여성주의자로 규정한 것은 특히 그의 후기의 글들 때문이었다. 1970년에 나온 케이트 밀렛의 '성의 정치학'(Sexual Politics)에서도 프로이트는 반 여성주의의 대표적 인물로 비난을 면치 못한다. 그 이후 프랑스 해체론에 영향을 받은 영국의 마르크시스트 줄리엣 미첼(Juliet Mitchell)이 20세기후반부의 지적 흐름을 감지하고 프로이트를 제대로 읽어서 여성이론에 보탬이 되게 하자는 글이 나을 때까지 프로이트는 여성들의 적이었다. 그러면 이제 프로이트의 후기 글들, 그가 모더니즘 시대의 고전적인 분위기를 초자아에 담고 현실을 충실히 설명하려 애썼던 보수적인 글들 가운데 여성성을 규명한 몇 편을 살펴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