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라고 말할 수 있는 중국 - 쏭챵, 짱창창, 챠오벤, 꾸칭셩, 탕쩡위 공저
5 캄캄한 서양 반짝이는 동양
3. 미국을 깨우처 주고 싶은 우리의 마음
개혁개방을 거쳐 시장경제체제로 전환한 중국이란 나라는 틀림없이 그 찬란한 문화에 걸맞는 위대한 성과를 거둘 것이다. 중국의 경제성장 속도는 세계 경제불황 속에서도 여전히 사람들에게 격려와 희망을 준다. 1978년에서 1995년에 이르기까지 경제성장률은 매년 평균 9.4퍼센트였다. 이러한 속도는 확실히 미국을 겁먹게 했다. 미국의 소위 경제제재라는 것이중국 경제발전의 발목을 잡을 수 없을 뿐더러 오히려 미국을 위협하게 될 것이다.그래서 미국은 또 무슨 '중국위협론'인가를 퍼트려 중국과 그 주변 국가와의 관계를 이간시키고 있다. 진실로 아시아 지역의 안전을 위협하는 존재는 미국이다. 한국, 필리핀. 일본에 있는 미군기지와 군사력은 결코 평화의 상징이 아니다. 최근 대만해협에서 조성된 긴장 국면은 도둑이 도둑 잡으라고 소리치는 미국의 희극이었다. 중국은 자기 영해에서 군사 훈련을 하고 있었는데 미국은 항공모함을 끌고 왔던 것이다. 이는 공공연하게 리떵후이 같은 무리들을 도와 중국을 분열하고자 한 짓이다. 대만은 중국의 대만이다. 두 지역의 통일은 역사의 대세이다. 미국과 대만의 관계는 알게 모르게 고조되고 있는데, 중국 인민의 강한 불만을 야기하는 것 외에 미국이 더 무엇을 얻을 수 있겠는가? 1997년 7월 1일이 곧 다가오고 있다. 한 세기 반이라는 세월 동안 '차용'된 홍콩이 곧 조국의 품으로 돌아오려 하고 있다.홍콩은 중국근대사에서 최초로, 그리고 최고로 비참했던 역사다. 중국 인민은 굴욕과 불행으로 가득 채워진 이 역사에서 많은 것을 배웠고 많은 것을 기억했다, 홍콩의 반환은 미국으로 하여금 대만을 생각하게 했고 미국은 항상 골칫거리인 그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다. 그러나 대만을 중국대륙에서 멀리 떨어트리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만일 대만이 가라앉지 않는 항공모함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미국의 것도 아니고 또 영원히 미국의 것이 될 수도 없다, 대만문제를 중국대륙에 갖다붙여 정치상 성가시게 만들면서 중국의 발전을 억제하려는 것이 미국의 시커먼 속마음이다. 미국은 아직 냉전시대를 그리워하고 있다. 그러나 시대는 변했다. 미국이란 유일하고 초강대국인 나라는 큰 권세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권세가 권위를 대체할 수 없다. 권세를 믿고 사람을 억압하는 것은 사람들의 미움을 살 뿐이다. 미국은 월권하여 '연합국'이라는 강단을 이용해 할리우드 영화배우들처럼 연설하고 연기했다. 관중은 갈수록 적어지고 심한 경우 그들이 무대 위로 올라와 연기를 하는 경우도 생길 것이다. 미국은 '진리의 기준'을 다르게 이해하고 있는 듯하다. 미국을 깨우치게 해야 한다. 미국은 진리 기준을 만드는 자가 아니며 국제 사무의 최후 중재자도 아니다. 미국은 사막 위에 세워진 나라가 아니다. 왜 다른 나라의 소리를 듣고 생각해 볼 수 없는 것인가? 만일 진리가 미국쪽에 있다면, 경찰 꼴을 하고 세계 각지에서 함부로 수족을 휘두르며 야단법석을 떨 필요가 없다. 만일 진리가 미국쪽에 있지 않다면, 항공모함을 끌고 나오고 정보위성을 띄운다 해도 진리를 믿는 모든 사람들을 위협할 수가 없다. 세계는 이미 21세기의 문턱에 와 있다. 중국 인민도 이미 시장경제라는 새로운 역사의 장을 열었다. 중화민족의 창조력, 지혜, 근면성과 인내력은 이 새로운 장에서 충분히 발휘되어 부유하고 달콤한 생활을 영위해 나갈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러한 생활에 대한 갈망은 일찍이 서구 열강과 역사의 잘못으로 인해 모욕당하고 억압당하고 유린당한 적이 있다. 그러기에 이제는 중국을 억누르려는 어떤 음모도 더이상 실현될 수 없다. 만일 미국의 기억력에 문제가 없다면 매카시즘시대라는 것이 있었음을 회상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미국이 건맘증이 심하다면 가장 최근의 역사, 예를 들자면 레이건시대를 들 수 있다. 그 해 미국이 기획한 '별들의 전쟁 계획'의 창끝은 주로 소련을 겨냥하고 있었다. 미국의 전략무기 연구 제조가 소련의 군사산업을 미국과 견줄 만한 수준에까지 끌어올렸따. 미국은 올가미를 만들어 결과적으로 소련이 경제적으로 참담한 대가를 지불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미국의 진정한 전략 의도는 바로 군비경쟁을 통해 소련의 경제력을 약화시켜 '무혈입성'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 있었던 것이다. 냉전시대에 미국의 음모 즉, 전지구의 전략방어체계가 부분적으로 목적을 달성했다. 베를린 성벽이 무너짐에 따라 미국은 '사회주의는 이미 끝남'이라는 데이터를 낸 것 같다. 이 세상에 역사의 잘못은 있지만 잘못된 역사란 있을 수 없다.
혜겔의 견해대로 '역사의 간계'라고 불리는 것들이 존재하고 있다. 파쇼 독일은 유태민족을 멸망시키려 했으며 또 소련의 사회주의를 '전멸시키려고 했다. 결과는 어떤가? 사회주의 소련은 '전멸'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더욱 볼 만하게 되었다. 동구가 사회주의의 등불을 밝힌 것이다. 일본 군국주의자의 퇴장도 명백하다. 소위 '동아공영(東亞共榮)'이라는 것이 마지막에는 일본에게 패전국이라는 치욕을 남겨 주었다. 역사의 변증법은 무정한 것이다. 만일 미국이 정말 이 점을 이해하고 있다면 미국도 더이상 미국이 아니다. 미국이 이해하지 못하고 있거나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 오히려 앞뒤가 맞는 사실이다. 중국의 개혁개방은 시장경제의 길로 나아가고 있는데, 이것이 또 한번 오천 년의 찬란한 문화를 가지고 있는 중화민족이 강한 생명력과 창조력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응변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중국경제의 지속적인 고도성장은 미국의 제재나 억압 및 봉쇄로 뭉그러지지 않는다. 반대로 일단 중국 국민이 패권주의와 강권정치의 진면목을 분명히 인식했다면 일어설 것이다. 중국의 성어에 있듯이 '어떤 어려움에도 몸을 곧추 세우고 나설' 것이며, 길 위의 장애물을 깨끗이 없앤 다음 계속 전진할 것이다.
미국은 늘 중국 국민의 민족적 응집력을 경시하고 있다. 이런 웅집력은 외환(外患)의 중요한 시기일수록 강해진다. 비록 오늘날은 이미 '북한을 도와 미국을 쳐부수고 조국과 민족을 보위한다'라던 때가 아니지만, 미국은 한국전쟁에서 아무 것도 얻지 못했다. 마찬가지로 평화와 발전이 세계 주류인 이 시대에는 중국으로부터 더더욱 그 어떤 것도 쉽게 얻어갈 수 없다. '중국위협론'은 미국이 만들어낸 풍차이다. 이로써 아시아 일부 지역의 '반중국' 정서를 선동하자는 것이 첫째요. 미국의 억압정책과 전략에 핑계거리를 찾고자 하는 것이 둘째요, 중국이 개발도상국이라는 현실을 혼란시키자는 것이 셋째요. 중국 국민의 심리를 겨냥해 중국이 이미 '경제대국'이라는 허상과 향락에 빠지게 하여 전투 의지를 없애고 자아도취에 빠지게 하는 것이 마지막 목표이다. 미국의 정책 결정자들은 닉슨과 키신저, 그리고 브레진스키의 글을 좀 읽어보아야 한다. 특히 가장 보고 싶지 않은 그 부분을 읽어야 한다. 또한 공자는 '나는 하루에 나 자신을 세 번 반성한다"라고 했다. 미국에 이렇게까지 요구할 수는 없다. 그러나 세계의 평화와 발전을 위해서 미국을 일깨워줄 수는 있으며 자신이 한 언행에 대해 시간을 내어 좀 생각해 보도록 할 수는 있을 것이다. 미국이 ' 중국위협론'을 증명하기 위해 제시한 논거 중 하나는 '중국은 부단히 국방력을 강화하고 군비 지출을 증가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논거는 전혀 설득력이 없다. 1994년을 기준으로 할 때 미국의 국방비는 일인당 평균 1천 달러인데 비해 중국의 국방비는 일인당 평균 6달러도 못 되었다. 중국의 국방비가 국민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대단히 적다. 만일 미국이 아시아에서 위협을 느꼈다면 그것은 이 지역의 경제발전 추세와 각국 인민의 대화, 협력의 강화 때문일 것이다. 진정으로 세계와 아시아 지역의 안전을 위협하는 것은 미국의 패권주의, 강권정치이다. 결국에는 이 패권주의, 강권정치가 자신을 위협할 것이다. 왜냐하면 미국의 이런 놀이법은 갈수록 다른 나라와 그 인민들의 흥미를 끌 수가 없게 되고, 또 갈수록 제3세계 인민들의 반대와 분노를 사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제재가 필요한 것은 미국의 패권주의이다. 미국은 손을 너무 길게 뻗었다. 만일 손을 뻗은 것이 정의와 평화 그리고 협력과 교류를 위한 것이라면 당연히 매우 좋은 일이다. 미국이 손을 뻣으면 대개 조소와 냉담 그리고 거절을 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세계 인민들은 미국이 손을 내민 의도가 시비를 야기하고 혼란한 틈을 타서 한몫 하려는 것이며 또 무력을 과시하려는 것임을 잘 알고 있다.
미국의 정책 결정자는 아마도 할리우드영화를 너무 많이 보았나보다. 자신과 못하는 것이 없는 은막 상의 영웅을 동일시하려는 경향을 드러내고 있다. 미국은 현실과 영화를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할리우드라는 몽상 제조공장은 확실히 미국에게 끼친 해가 적지 않다. 영화 속의 연기는 그래도 관중에게 오락거리라도 주지만 현실의 미국은 분명 관중을 썩 기분좋게 하지는 않는다. 확실히 미국의 연기가 적지 않은 관중을 속였다. 그러나 침착하고 독립적으로 판단할 능력이 있는 관중이라면 연기가 더욱 충실하다고 해도 그 의도를 간파하기 마련이다. 다시 말하자면 미국의 연기는 표면적으로는 매우 다채롭지만 반복해서 보거나 그 속을 조금만 깊이 들여다본다면 관중으로 하여금 오히려 반발심리가 생기게 한다. 은막상의 미국 영웅이 있다면 은막상의 영웅적인 미국은 또다른 문제이다. 국제정치무대와 영화산업과의 거리를 미국은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그렇지 않다면 미국의 '정치'와 '영화'는 모두 불리해 지기 때문이다. 미국이 만일 국제정치무대에서 실력을 과시하려고 한다면-감독과 주연 일인이역을 하려 한다면-역할을 확실히 구별하고 기술을 터득해서,주연을 할 때 자신이 감독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되고 감독을 할 때 역시 자신이 주연을 맡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클라이막스는 아직 더 있어야 나오지.' 감독이 말한다. '내가 보기엔 영화는 끝났는데.' 주연이 말한다. '이게 어떤 대목이지?' 관중이 말한다. '진짜와 가짜가 뒤석여 있다. 진짜를 가짜라고 하고 가짜를 진짜라고 하니,' 평론가가 마지막으로 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