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라고 말할 수 있는 중국 - 쏭챵, 짱창창, 챠오벤, 꾸칭셩, 탕쩡위 공저
제3장 시들어 가는 미국, 일어서는 중국
3. 쉽게 노예가 된 우리는 지금도 좋아하고 있다
이 제목은 '우리는 아주 쉽게 노예가 되었고 노예가 된 후에도 스스로 매우 고귀하다고 느낀다'라고 바꿀 수 있을 것이다. '고귀'하다는 말은 일반 대중들 위에 구름같이 떠도는 일종의 비애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미국과 만난 후 아주 쉽게 발전하였다고 느끼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지금까지 기대어 살아왔던 우리끼리의 인간사회를 안중에 두지 않고 혹자는 일부러 무거운 침묵을 지키며 이에 대한 책임을 가질 생각도 하지 않으며, 혹은 책임을 진다 해도 역시 은연중에 미국의 도움을 받았음을 인정하고 있다. 우리 마음속에서는 자신도 모르게 '미국의 도움이 없다면, 너희들 세계는 암흑세계로 변할 것이다'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우리가 매정하게 스스로를 비웃고 욕할 때,실제로 이 비웃음이 우리의 문명 배경과 꼭 일치하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던가? 큰 나라의 통이 큰 국민만이 자기를 해부하고 자기를 부정할 수 있는 일종의 관용을 가질 수 있는 것이며 이는 자신을 새롭게 하고자하는 능력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나 가끔 통이 작은 민족에게서는 이런 측면이 신경질적이거나 일촉즉발의 위기로 나타나게 된다.그러나 불행하게도 '발전된 자'들은 이런 자기 해부의 의의를 하나하나 왜곡시키면서 책임을 회피할 수있는 사상적 무기로 삼으려고 한다. 이것은 유머감의 타락인가? 아니면 인식의 반전인가? 그들은 발전의 혜택을 마음껏 누릴 기회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권세와 이익만을 쫓아 짖어대는 소국민에 불과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13년 전 내가 대학 1학년일 때는 스스로 노력한 결과로써가 아니라 어떤 부가적 수단으로써 자신의 가치를 표방하는 사람을 매우 싫어하였다. 예를 들면 고급간부 자제들 사이에 끼어들거나 고위층에 선을 놓아 접촉 한다든지 또는 어떤 사상적 지도자의 개인적 에피소드를 많이 알고 떠들어대거나 지하에서 유행하는 음반을 남보다 먼저 구해다가 감상한다든지 하는 따위의 행위를 하는 사람들을 싫어하였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그렇게 함으로써 사상적 선구자가 된 것으로 착각을 하고 남들보다 앞섰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 시대에는 지하 경로가 우리의 식견을 넓혀 주는 중요 수단이었음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임시적이고 보조적이며 결함을 가진 방법일 뿐으로, 이를 통해 본질에 접근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한 인간의 상상력이 어떻게 이런 방법에 의해 결부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한 민족의 상상력이 어떻게 이런 방법으로 제약을 받을 수있단 말인가? 언젠가 나는 매우 흥분한 상태에서 아내에게 '너는 내게단0에 대해 언급하지 마라. 또 댜스에 대해서는 입도 뻥긋하지 마라. 설사 내가 그들과 사이가 좋을 것이라 하더라도 그들의 사상이 최고라고 보지는 않았을 것이다. 저렇게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은 모두 중국의 영웅이 아니며 영웅이었던 적도 없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나는 이런 말을 매우 흉폭하게 하였고 아내는 그런 나의 모습을 보고 매우 슬퍼하였다. 아내는 나를 이해해 주었기 때문에 대학을 졸업할 즈음에는 일반 학우들에 비해 많은 시련을-솔직히 나에게 주어진 대우는 너무나 터무니없는 것이었다-겪었으며, 비관과 실의로부터 탈출하려는 욕구 때문에 다른 청년들과 마찬가지로 미국 가치관의 고취자이자 옹호자가 되었었다. 그러나 나는 철저하게 총체적 안목으로 모든 사안들을 바라보았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나는 진실되게 무엇인가를 탐구하였고 이런 탐구는 고통을 수반한 것이었다. 고대로부터 근대의 량치차오(梁啓超)와 같은 사람. 나는 이제 이런 나에 대해 반성을 하고자 한다. 어떻게 해야 세상을 미워하고 불만만 터트리는 단계를 또한번 벗어날 수 있었을까? 아! 미국은 꼭 나를 받아주어야 한다. 내게는 진리를 추구하는 정신과 상상력이 있고 또 미래에 대한 공평하고 평화적인 품격이 있으니 말이다. 이렇게 되면 나의 원래 목적에 이미 도달한 셈이다.
노예에도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세상사를 즐거워하는 노예이고 다른 하나는 큰 책임감 아래 전적으로 고통을 감내하는 노예로서,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나라와 백성을 걱정하는 노예이다. 사람은 쉽게 자기가 싫어했던 사람의 모습을 닮아가며, 변한 후에는 걸핏하면 '내가 변한 과정은 남과는 달라. 내가 변하게 된 과정에는 눈물을 흘리게 할 많은 사연들이 숨어 있어 라는 이야기로 스스로를 기만하게 된다. 이것은 완전히 허튼소리이다.네가 다른 사람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80년대 역사가 뒤집어지고 바람이 일기 시작한 때에,나는 매국노 왕징웨이의 편지 몇 통을 읽은 적이 있었다. 나는 그의 비통함에 깊이 동감하여 이 사람의 감정을 [임안에게 올리는 글[報任]을 쓴 사마천(에 비길 만하 다고 느꼈었다. 이때 나는 왕징웨이와 관련하여 기괴한 글을 발표한 적이 있다. 사실 왕씨는 매우 고통받은 애국자였다. 그는 부관을 거느린 높은 지위에 있었고, 총칭(로慶)에는 개인 방공호까지 만들어놓고 있었다. 그는 무엇 때문에 수십 년 간 혁명을 위해 노력한 개인적 역사를 돌보지 않고 매국노의 행각을 벌였을까? 나의 이런 소인배적 심리는 네가 왕씨에 대해 재평가하는데 수년의 시간이 걸리게 하였다. 왕씨야말로 정말로 온 산하에 독이 깃든' 것을 눈앞에 두고도 깊은 감상에 젖어 감회를 펼칠 정도이니, 이 얼마나 사람을 감동시키는가! 상고시대에는 도덕으로 다투고, 중세에는 지모로 다투고, 오늘날에는 기력으로 다툰다고 하였는데 그의 기력 또한 얼마나 위대한 것이었던가? 그러나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 어느 매국노가 도덕. 지모, 기력 등 각 방면에 걸쳐 극히 우수한 중국인이 아니었던가? 그들이 적의 진영으로 투항해 간다면 중국은 뛰어난 인재를 잃게 되는 것이 아닌가? 정치,군사, 종교, 문화교육계나 언론계,실업계,금융계 등등의 수많은 인재들이 '횡화적 건국'의 기치 아래 바글바글 모여 들어 '큰 일을 하는 자는 원망을 듣기 마련'이라는 신념으로 타민족이 조종하는 대로 움직이는 앞잡이가 되지 않았던가? 그러나 이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라와 백성을 망치는 사건의 주동자는 종종 각계각층의 우수한 인물들이었다. 그들이라고 하여 꼭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며 오히려 일반인에 비해 더 높은 이상을 가지고 있고, 빈둥거리며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자들보다는 투지와 희생정신이 더 뛰어나다. 그들은 또 지조가 있고 기율을 지키며 사람들의 피를 끓게 하는 신념도 가지고 있다. 고독 을 마다 않고 스스로 외로운 성현이 되고자 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절대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 있다. 우리는 역사적 안목으로 이들을 평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사회, 경제, 문화적인 면에 막대한 영향을 끼쳐 민족의 전진에 장애가 되는 죄악을 저지른 것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환경에 대한 원한과 공리주의는, 우리에게 권세와 실리에 빌붙는 정서를 갖게 하였고, 이런 정서로 인해 우리는 대국의 침투를 환호로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것은 앞에서 이미 말하였다. 이런 현상을 적절하게 풍자한 이야기가 하나 있다.
어느 영국인 가정에 복권이 당첨되었다는 통지가 날아들었다. 그들은 미친 듯이 기뻐하며 오래된 가재도구들을 내다버렸다. 이 이야기는 복권회사 직원이 찾아와 횡설수설하며 미안하다고 하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사람들은 새로운 상상을 할 여유를 가지게 되면 원래 있던 사물을 진부한 것이라고 아주 쉽게 버린다. 우리는 오랜 기간 스스로 신성한 반항상태에 놓여 '저자세' 혹은 '반항'에 도취되어 있었다고 생각하여 우리 민족문명이 원래 가지고 있던 생태사관(生態史觀)에 대해서는 인식하지 못하였다. 일상생활에서 정신적인 가치관에 이르기까지 철저하게 노예근성을 가진 언론을 '명쾌한 논조'로 여기고 찬양을 아끼지 않았다.이런 분위기는 상당 기간 온 나라에 만연되었기 때문에 철저하게 일깨워야 할 필요가 있으나 현실은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니다. {뉴욕의 북경인} 중에서 왕치밍이 아프리카 사람을 위해 의연금을 마련하고 있는 그의 딸에게 '너는 왜 미국인에게서 쓸 데 없고 하찮은 일만 배우니?'라고 욕하던 말이 떠오른다. 내가 살고 있는 도시에는 공장이 많아 환경이 매우 열악하다. 그래서 매년 전국 규모의 환경보호운동을 벌여야 겨우 대도시 중의 중간 정도 수준을 유지할 수 있다. 올 한 해는 환경운동의 절정기였다. 어느 방송국의 진행자가 '그린피스'조직과 유사한 단체를 발기했는데 많은 사람들로 부터 열렬한 호응을 얻었다. 혜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초중등학생이 적극 참여하였고 소수의 대학생도 동참하였다. 그들은 많은 공익행사를 벌였고 이것은 시청의 주요업무가 되다시피하였다. 그러나 조직이 산만하고. 상호교류가 가능한 엇비슷한 임의단체가 많기 때문에 말이 많을 수밖에 없도록 되어 있었다. 본질적으로 따지자면 이런 착한 아이들의 반짝이는 순수한 신념을 책망할 수는 없을 것이다. 누군들 자기집 뜰이 분위기 있기를 바라지 않으며,누가 좋은 분위기에서 성장하기를 싫어하겠는가? 그러나 '그린피스'의 지원자들이 공업발전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인식과 그들이 표방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인기만을 쫓아다니는 족속들이란 낙인을 찍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은 스스로 총명하다고 여기며 불만을 발산한다고 하나, 이런 행위는 외래문화의 모방에 지나지 않는다. 현상에 대해 더욱 깊은 인식을 하고 있는 그들의 부모나 형들은 자동차가 뱀을 위해 길을 양보해야 한다는 데대해 절대로 찬성하지 않을 것이다. 뚜더웨이(杜德偉)는 노래한다. he1p, he1p, he1p 이 지구는 즐거움으로 구해야 한다
이런 이념은 먹을 것이 남아도는 사람들만이 비로소 신명으로 떠받들 수 있을 것이다. 구원의 대가는 희생일 따름이다. 소련은 수천만에 이르는 부농의 희생으로 국력을 쌓아왔으며 우리들의 생산도 지금 그 대가를 지불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십자군들은 오히려 우리들에게 먼저 선반위에 꽃무늬를 새기게 하였다. 누가 이렇게 사치스럽고 쓸 데 없는 호화판의 관념을 우리에게 전달하고 있는가? 'he1p, he1p, he1p.' 중국말로하자면 '도와줘요'란 뜻이다.우리는 미국식의 천진함과 미국식의 조잡스러움으로 우리의 심령을 구원받고 싶지는 않다. 미국인들은 '미국이 어느 날 파시스트의 전제국가로 바란다면 그것은틀림없이 국민투표를 통해 얻어낸 결과일 것이다'라고 말한다. 같은 논리로 우리는 '중국인이 물질과 정신상의 망국적 노예가 된다면, 이 망국적 노예의 결말은 틀림없이 우리가 지나온 각고의 투쟁과 '진리'에 집착하여 추구한 결과로 얻어진 것일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확실하게 우리의 임무가 나타난 것이다. 미국에 대해 'No'라고 하려면 먼저 자신에 대해 'No'라고 해야 한다. 지금까지의 내 말은 모두 이것과 상통하는 것이다. 마음속에 자라나는 혼란을 떨어버리고 땅바닥에 엎어지는 한이 있어도 어떻게 'NO'라고 외칠 수 있을까? 우리는 바보같이 두들겨 맞고도 정신적으로는 이겼다고 하는 아큐{阿Q)의 후예이다. 그러므로 어떻게 하든 우리의 경계심을 불러일으켜야 하며 우둔하고 공허하게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 마음의 동요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그것은 우리가 처한 낙후된 현실에 대한 원한에서 오는 것이며, 모색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고달픔에서 오는 것이며. 제3세계 식의 포기심리에서 오는 것이다. 미국이 냉전 후에 최대의 광고효과를 노리고 벌인 쇼는 페르시아만전쟁이다. 패트리어트미사일이 하늘에서 충분한 공연을 해 주었다. 이라크의 대통령수비대가 미국의 융단폭격을 받아 사단 단위로 궤멸당하고 말았다. 이런 장면은 우리의 노예식 두려움을 심화시키기에 충분하였다. 오늘날에도 미국은, 마치 중년부인이 사교계의 꽃이 된 양 교태를 부리고 아양을 떨며 국제문제의 핵심에서 날뛰어 다음날 신문의 머리 기사에 실리기를 기다리고 있다. 이것을 본 우리는 국제문제에 관심을 가지면서 미국에 대해서는 굉장하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이런 광고의 효용은 우리가 일찍이 보아왔던 것처럼 그렇케 인심을 미혹시킬 수는 없겠지만, 어쨌든 미국의 빈번한 외교와 그것의 광고효과 은 암담하게도 비례한다, 레이건은 일찍이 '평화는 힘이 있어야 얻을 수 있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마설 식의 이익 연결체는 이미 다시 존재하지 않는다. 지역 간의 문제에 있어서도 정치지도자들은 미국의 말과 몸짓 살피기를 좋아한다. 이것은 갈수록 심화되어 미국의 우정과 역사까지도 존중하는 것처럼 보인다. 미국은 국제문제에 한해서는 유일한 초강대국의 모습을 어느 정도 갖추고 나토와 동아시아 및 기타 지역의 기지에 병력과 무기를 주둔시켜 놓고 비행과 항해를 거듭하고 있다. 그러므로 유럽동맹군이나 일본 혹은 기타 동맹국의 도움이 없었다면 페르시아만에서 연출된 것과 같은 상황은 단 일 분도 지탱되지 못했을 것이다. 클린턴의 방어개념은 마치 전자오락이나 전쟁영화의 장면과 비슷한 것이었다. 그는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방어능력을 가지고 있어야한다. 이런 방어능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비교적 적은 인원과 영구적인 무기가 필요하다. 우리는 육 .해 .공에서 막강한 기동력을 가지고 있으며 끊임없이 높은 수준의 무기를 개발하고 능력 있는 군인의 훈련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라고 말하였는데 이는 마치 미국의 괴기영화에 등장하는 정론(政論)의 재판 같았다. 미국인이 별 생각없이 아무렇게나 만든 영화한 편을 보자. 실제로는 테헤란 진영을 몰래 습격하여 인질을 구하려는 미국의 군사작전은 완전히 실패였는데 영화에서는 미국 특수부대가 적국의 심장부에 깊숙이 침투하여 영웅적으로 인질을 구출해 오고 있다. 미군이 엄청난 군비를 지출하며 진격해 들어간 곳이 실제로는 텅 빈 집이었는데도 람보같은 인물이 세 번 네 번 월남, 캄보디아 등에서 미군 포로를 하나하나 구출하는 것으로 바뀌어버렸다. 이런 '특수부대' 식의 환상은 미국의 성인에서부터 청소년에 이르는 모든 사람들에게 지독한 우월감을 심어주었다. 결국 그들의 눈에는 두건을 두르고 삿갓을 쓴 민족은, 미국의 기관총과 로켓포 앞에서는 한갓 고깃덩어리에 불과하다는 인식을 심어주고 있는 것이다. 절대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 십여 년 전에 이미 어떤 사람이, 일개 공수사단에만 의지하여 한 나라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의식은 지극히 황당하고 가소로운 것이라고 지적한 적이 있다. 미국이 이라크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은 전세계 주요국가의 역사적인 동맹의 결과이며, 미국이 그라나다에 개입한 것과 미국이 파나마를 소탕한 것 등은 근본적으로 일말의 광고 가치조차도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세계 역사상 하나의 강대국이 단독으로 전세계를 통치할 수 있던 때는 단 한 번도 없었다. 냉전종결 후 국제정세는 일부 사람이 바라는 논리대로 발전하지는 않았으며. 오히려 이와는 상반되게 많은 사람을 기쁘게 할 징조들이 나타나고 있다. 유럽연맹으로부터 러시아에 이르기까지, 또 일본으로부터 아시아 신흥 공업국에 이르기까지 전세계에 하느님의 진리가 내려오고 있는 듯하였다. 국제문제 중에 미국을 함부로 날뛰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점과 권력 분배상 미국에게 어떤 교훈을 주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우리는 미국과 맞서 싸운 역사가 가장 긴 국가이다.그러면서도 아메리카합중국의 정치, 경제, 문화 내지 민속에서 오는 충격을 피할 수가 없었다. 우리는 겸손하면서도 관용을 베풀 줄 아는 대국의 국민이면서도 일본과 같이 공손한 태도로 그런 것들을 학습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원래 굳건한 우리의 성품과는 상반되게 나약하고 무기력하며, 자존심까지도 결핍된 태도를 드러내고 있다. 만약 미국의 강권정책이 우리 중국에서 실패한다면 우리는 온몸으로 그 행운을 받아들이고 기쁨을 자손들에게 전해 줄 것이다.
영화 {핸들을 놓치다[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미국으로 먼저 간 남편이 보내온 녹음테이프 하나를 여주인공이 틀었다. 불꽃 같은 욕망을 지닌 가운데서도 매정하고 냉혹한 테이프의 음성은 나에게 전율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하였다.
사랑하는 당신, (여기까지는 영어로 이야기했다) 내가 미국에 도착 한 이후에....... 사랑하는 당신,우리의 행복을 위해 당신은 꼭 아이 를 낙태시켜야 돼요. 그리고......(대단히 흉폭하게) 당신은 반드시 기억해야 해요.......우리가 장차 얻어야 할..... 끝에 나올 말은 보나마나 미국시민권 '그린카드( green card ) '일 것이 다. 이것은 중국을 벗어나려는 급박한 심정에 사로잡힌 사람의 심정을 나타낸 것일 뿐 아니라 일반 중국인보다 훨씬 진보되었다는 은밀한 희열을 나타내고 있음이 분명하다. 나는 이런 식의 중국적 정서를 가진 사람 떼문에 내 주위에 있는 많은 사람들을 두려워하고 있다. 보기에는 규율을 잘 지키는 사람들, 평범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 '우리 곁에 잠자고 있는 후르시초프'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어느 날 아침 호들갑을 떨며 도망갔다 다시 돌아와 선진적이라는 우월감에 사로잡힌 눈초리로 나처럼 국내에 남아 개혁에 애를 쓰고 있는 사람들을 바라볼 때, 나의 심정은 어떠할까. 내 주위에는 다음과 같이 자란 여자아이들이 많다. 이 여자아이들은 어릴 때 매우 영리하여 고집 센 남자아이들에 비해 세심하게 조국을 사랑하고 영웅을 흠모하고 스승과 어른을 존경하였다. 어머니는 이 아이들에게 '아가야, 이리 오너라, 엄마가 {나의 조국}이라는 노래를 가르쳐 주마'라고 하자 사내아이들은 '안 불러요'라며 꽁무니를 빼 버렸었고 여자아이들은 조용히 어머니 옆에 의자를 갖다놓고 다정히 기대어 노래를 배웠다.
친구가 왔네, 좋은 술이 있네, 만약 승냥이와 이리가 온다 해도, 그것을 맞아들이자 사냥하자 -윽 -아아 -총!
어른들은 사내아이에 비해 여자아이가 붙임성이 좋다고 칭찬하였다. 그러나 십 년이나 이십 년 후에 주저하지 않고 양놈의 품 안으로 달려가 버리는 것은 이런 '붙임성' 좋은 여자아이들이었고 교육계, 언론계. 경제계, 군사 방면에서 국가를 위해 묵묵히 일하고 있는 사람은 그때 '썩은 나무여서 조각도 할 수 없다'고 보았던 사내 녀석들이다. 소련의 어느 범죄심리학자는 '아이들이 보는 동물소설에서 사냥개에 대해 찬양하는 것을 믿지 마시오. 충성스런 사냥개라도 모르는 사람의 손에 들려 있는 소시지냄새를 맡게 하면 주저없이 주인을 물어버리고 그 사람을 따라갑니다'라고 한 적이 있다. 여기에서 어떤 사람은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무엇이냐고 물을 수도 있겠다. 나는 여기에서 성차별이나 정조관념에 대해 말할 만큼 무료한 사람은 아니다. 나는 이전에 우리 민족이 가지고 있는 유연함과 유머가 모든 아이들의 몸에 깊이 배어 그것이 나타날 수 있을 것이라고 굳게 믿었었다. 그런데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자질 위에 둘러쳐진 쇠사슬이 결국 아이들의 상상력을 속박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좀 더 일찍 알았어야 했다. 문화의 귀재들이 해방이라는 탈을 쓰고 전국의 취학 혹은 취학전 아동들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한다면 우리 아이들은 이질적이고도 별스런 상상의 무덤 속에 빠질 것이다. 아이들은 전세계에서 가장 좋은 회화는 {성투사(聖鬪士)}라는 만화이고.가장 좋은 음악은 리우더화(의 노래이며.가장 좋은 무도는 마이클 잭슨의 춤이며,가장 좋은 두뇌게임은 {사담을 멸망시키자[라고 알고 있다. 매번 성탄전야가 되면 나는 위에써탕(約瑟棠)에서 스타를 쫓아다니는 오빠부대 떼거리들과 부딪치게 된다. 그들의 미친 듯한 눈및에는 '지겹다, 지겨워, 모든 것이 지겨워 !'라고 외치는 것 같은 무슨 성스러움이라도 어려 있는 듯하였다. 이런 아이들에게는 민주적이고 초연한 태도로 대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우리가 할 수 있던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초원의 집}에 나오는 전형적인 어느 장면, 즉 국회 선거 전의 당내 대표지명대회에서 대회장이 '물고기 팝니다'라고 엉뚱하게 환호하던 소리와 같이, 우리는 열십자를 그리며 군중에 끼어들어 입으로만 크게 외칠 뿐이었다.
푸른 하늘은 저물고 누런 하늘이 일어설 것이다. 때는 갑자년(甲子年)이니, 천하가 크게 길하리라.
위에쓰탕 앞은 온통 미친 환호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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