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 오백년의 선비정신 (하) - 편저자 : 강효석, 역자:권영대, 이정섭, 조명근
3. 탕평과 선비들의 의리
윗사람의 부당한 지시를 완강히 거절한 양완
양완(?~?)의 본관은 남원이다.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수군 절제사에 이르렀다. 일찍이 거제 부사에 임명되었는데, 당시 통제사 이득제가 한산도에 가서 사냥을 하려고 군정을 동원하게 하였다. 그러자 양완이 농사일이 한창 바쁜 때 백성들을 동원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여겨, 아무리 윗분이 지시한 일이라도 이는 불가하다는 완강한 뜻을 다음과 같이 상부에 전달하였다.
"장수는 군막을 떠나서는 아니되고 군사는 행오를 이탈해서는 아니됩니다. 그런데 지금 대장께서 호랑이를 잡는다는 핑계로 한산도에서 군사를 동원하여, 거제부로 하여금 그 군사들을 먹이도록 하니 무엇을 하려는 의도에서입니까?"
이득제가 그 보고한 내용을 살펴보고서 자신의 잘못을 크게 뉘우치고 서둘러 사사로이 편지를 보내어 정중히 사과하였다. 그 뒤로부터 한산도에서는 사냥하는 페단이 없어졌다.
하찮은 물건에도 정해진 운명이 있다는 것을 깨우친 이성원
이성원(1725~1790)의 본관은 연안이고 자는 선지, 호는 호은이다. 영조 30년 (1754)에 진사시에 합격하고, 39년(1763)에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4년 뒤에 중시에 장원하였다. 강원도 관찰사가 되어 순찰하는 길에 금강산으로 들어가 구룡연에 이르러 돌에다 이름을 새기려 하니, 글자를 새기는 중이 모두 외출하고 없었다. 그러자 고성 군수가 이렇게 말하였다.
"이 아래 민촌에 어떤 사람이 와서 머물고 있는데, 솜씨가 있어 글자를 새길 만하다고 하였습니다."
이 감사가 그를 불러오게 하여 글자를 새기도록 하였다 그런데 그 사람이 끼고 있는 안경이 보기 드문 절품이었다. 감사가 평소 좋은 안경을 보면 감사가 평소 좋은 안경을 보면 가지고 싶어하던 중에, 그것을 가져오게 하여 이리저리 만져보며 구경하다가 그만 실수로 바윗돌에다 떨어뜨려 깨뜨리고 말았다. 순간적으로 어이없이 일어난 일이었다. 감사가 깜짝 놀라면서 그 사람에게 안경값을 물어주려 하였더니, 그 사람이 사양하며 말하였다.
"물건이 생겨났다가 없어지는 것 역시 그 물건의 운수에 달려 있으니 조금도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감사가 그에게 말하였다. "그대는 산골에 사는 가난한 백성인데 어떻게 이런 안경을 다시 살 수 있겠는가?"
그 값을 억지로 주려하자, 그 사람이 안경집을 풀어 보이면서 말하였다.
"이것을 보면 그 연유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감사가 그 안경집을 가져다 보니 거기에 이렇게 씌어 있었다.
"아무 해 아무 달 아무 일에 사또의 순행을 만나 구룡연에서 깨어질 것이다."
감사가 몹시 놀라며 그 사람에게 물었다.
"이 글은 그대가 쓴 것인가?" 그 사람이 대답하였다. "애당초 이 안경을 살 적에 이 글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기생 덕분에 화를 면한 조운규
조운규(1714~1774)의 본관은 양주이고 자는 사형이다. 영조 16년(1740)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전라도 관찰사로 재임하던 중 어느 날, 밤이 깊어진 뒤에야 잠자리에 들었다. 어렴풋이 꿈속에, 곁에 있는 기생이 흔들며 깨우기에 감사가 놀라 깨어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대답하였다.
"사또, 어서 창문 밖을 내다보소서."
그 순간 환하게 비치는 달빛이 대낮 같기에 그대로 문틈을 통해 내다보니, 8척이나 되는 건장한 사나이가 휜 눈빛 같은 비수를 휘두르며 금방 감사의 침실로 뛰어들 기세를 하고 있기에, 온몸이 오싹하여 어쩔 바를 몰랐다. 기생이 나지막한 음성으로 이렇게 말하였다.
"소녀가 곧장 비장청에 알릴 터이니 사또께서는 가만히 뒷문을 열고 이곳을 벗어나소서."
감사가 스스로 생각하기를 혼자 있게 되면 아마도 재앙이 닥칠 것 같아 기생을 따라서 몰래 뒷문으로 나가기는 하였으나 몸을 숨길 만한 곳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부엌 아래로 들어가니 그 곁에 지를 담는 빈 가마니가 있기에, 그것을 머리에 뒤집어쓴 채로 가만히 피했다. 조금 있으려니까 칼을 쥔 놈이 부엌 쪽으로 다가오고 있기에 머리끝이 쭈뼛해져 숨을 죽이고 엎드려 있는데, 갑자기 감영 안이 물끓듯이 왁자지껄하고 불빛이 여기저기서 밝게 비치자, 침입했던 적이 칼로 부엌의 기둥을 내리치며 중얼거렸다.
"모두가 운명이다."
그리고는 뒤편의 담장을 뛰어넘어 도망쳐 버렸는데, 사방에서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소리 가운데 모두들 외쳐대는 것이었다.
"사또는 어디에 계십니까?" "사또는 여기에 있다."
감사가 말하자, 비장과 감영의 종들이 소리를 듣고 감사가 있는 곳으로 우르르 몰려와서 그를 부축하여 선화당으로 돌아갔다. 곧 이어 조 감사가 승차되어 서울로 돌아오면서 그 기생에게 후하게 사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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