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종이 승하하자 현종 원년에(1669)에 효종의 어머니인 자의대비의 복상문제로 예론이 일어나자 기년설(만 1년)로 해야 하는지 3년설로 해야 하는지를 놓고 남인과 서인 사이에 예론이 일어나 당쟁과 정권 다툼이 치열해졌다.
노정승의 몸으로 아버지의 치매를 간병한 효자 - 조익
조익(1579~1655)의 본관은 풍양이고 자는 비경, 호는 포저다. 어렸을 때 월정 윤근수에게 글을 배웠으며, 특히 예학에 조예가 깊었다. 선조 35년(1602)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효종 원년(1649) 우의정에 올랐으며, 벼슬에서 물러난 뒤 기로소에 들어갔다. 77세에 죽었으며, 시호는 문효다.
그는 50년 동안 벼슬을 하였지만 변변한 집간과 토지가 없을 정도로 청렴하였다. 89세의 고령으로 치매에 걸린 아버지 영중이 늘 변비로 고생하였는데, 나이 60이 넘은 노정승의 몸으로 그는 손가락에 꿀을 발라서 아버지의 변을 직접 긁어내곤 하였다. 그는 병중에 있는 아버지와 한방을 썼으며, 치매에 걸린 아버지는 그 아들을 보고 항상 사촌이라고 불렀다. 또 아버지가 자리 밑에 감추어 두었던 약과를 꺼내어 주면 조익은 더러움도 개의하지 않고 주는 대로 받아서 먼지도 한번 터는 일 없이 맛있게 먹어 아버지를 기쁘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