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경(1499-1572)의 본관은 광주이고, 자는 원길, 호는 동고이다. 중종 17년(1522)에 생원시에 합격하고 9년 뒤 문과에 급제하였다. 이준경은 몸가짐이 청백하고 검소하며 기국이 방정하고 엄격하였으며 후덕과 중망이 평소 사람들을 감복시켰다. 그러나 후배들과 서로 의견이 맞지 않아 당시에 미움을 받기는 하였는데, 정승으로서의 업적을 말한다면 이준경이 제일이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었는데 어머니 신씨가 입으로 '대학'과 '효경'을 가르치면서 늘 타일렀다. "과부의 자식과는 사귀지 말라고 하였으니 반드시 학문을 부지런히 하기를 남보다 열 배나 더하여 옛날의 집안 명성을 떨어뜨리지 말아라" 이준경이 그의 형 정헌공 이윤경과 어머니의 뜻을 공경히 받들어 종형인 탄수 이연경의 문하에서 글을 배우며 학문에 힘을 썼다.
어렸을 적에 남명 조식과 산중에서 같이 글을 배우면서 장난을 칠 때면 항상 사직을 편안하게 하는 것으로 자신을 기약하였으며, 남명에게는 "너는 바위굴에서 말라 죽을 인물이다"라고 놀렸다. 이준경이 정승이 되자 남명이 편지를 보내어 경계하였다. "바라건대 공은 위로 솟기를 소나무와 같이 하여도 아래로 뻗기를 칡넝쿨과 같이 넝쿨지지 마시오"
이준경이 동부승지였을 때에 홍섬이 도승지였다. 홍섬이 일찍이 이름난 기생 유희를 가까이 했었는데, 유생 송강 역시 유희와 정을 맺어 매우 가까이 지내는 터였다. 그런데 어느 날 홍섬이 승정원에서 여러 동료들에게 말하였다.
"송강이 죽었다. 나와는 같은 해 같은 달 같은 날 같은 시각에 태어났는데도 먼저 죽어 곤궁하고 통달한 것이 같지 않으니 어찌 이상하지 않은가" 이준경이 그 말을 받았다. "도승지 영감께서도 유희를 사랑하였고 송강 역시 유희를 사랑하였으니 운명이 같을 뿐 아니라 행한 일도 같지 않습니까?" 여러 승지들이 서로 돌아보며 놀라서 얼굴빛이 변하였고 여러 서리들은 놀라 눈을 휘둥거리며 그전에 없었던 큰 변고라고 하였다. 승정원 고사에 여러 승지들은 도승지를 공경하여 감히 농담을 하지 못하며, 불경한 자는 벌연을 베풀게 되어 있었다. 그래서 이준경의 집에서 벌연을 베풀기를 무릇 일곱 차례를 한 뒤에야 그만두었다. 이준경은 이 일을 두고 이렇게 말하였다.
"나로 하여금 이 일 때문에 가산이 거덜난다 하더라도 이야기의 실마리가 너무나 멋지니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준경의 집에 피성을 가진 하인이 있었는데, 사람 됨됨이가 조심성이 있었으므로 이준경이 그를 매우 아꼈다. 그런데 그 하인이 늘 이준경에게 청원하였다.
"소인에게는 단지 딸자식 하나밖에 없으니 장차 좋은 사람을 데릴사위로 맞아다 늘그막에 의탁했으면 합니다. 대감께서 신랑감을 골라 주시기를 감히 바랍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준경이 대궐에서 돌아와 피성의 하인을 불러 말하였다.
"오늘 아침에 비로소 너의 사윗감을 얻었으니 빨리 불러오는 것이 좋겠다" "그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한성부 앞에 어떤 총각이 거적으로 몸을 가리고 앉아 있는데 바로 그 사람이다"
피씨 하인이 사람을 시켜 가서 보게 하였더니 과연 그런 사람이 있으므로 정승의 명령이라 하면서 그를 불렀다. 그러자 그 총각이 말하였다.
"정승은 어떤 벼슬이며 나를 불러다 무엇을 맡기려 하시오?"
총각이 굳게 거절하며 오지 않으므로 피씨 하인이 따라왔다. 위협하고 공갈을 쳐보았지만 만 마리의 황소 같은 고집을 돌리기 어려웠다. 하는 수 없이 이런 사실을 돌아와 고하였더니 이준경이 말하였다.
"그 사람이 반드시 이와 같이 하리라는 것을 나도 알았다"
다시 문을 지키는 하인 몇 명을 보내자 그제야 심부름간 이준경이 총각에게 물었다.
"장가 들고 싶으냐?" "장가는 들어 무엇합니까"
이준경이 여러 번 타이르고 권하자 억지로 허락을 하니, 이준경이 기뻐하며 하인에게 일렀다.
"내일 혼례를 치르도록 하라. 그렇지 않으면 반드시 기회를 잃게 된다"
하인이 곁에서 그 총각을 보니 남루하고 멍청한 모습이 바로 누더기를 걸친 거지 아이에 불과할 뿐이었다. 놀랍고 괴상한 마음을 감당하지 못하였으나 감히 명령을 어기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데리고 나가 그의 머리를 빗기고 몸을 씻게 한 뒤 새 옷을 내주었다. 이튿날 초례를 치르는데 온 집안 사람이 코를 가리며 웃어대었지만 그의 사위는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그가 한번 처가살이를 한 뒤로는 두건도 쓰지 않고 버선도 신지 않은 채 잠자는 것을 일과로 삼아 문밖을 엿보지 않은 지가 3년이 되자 집안 사람들이 모두 어리석고 게으른 사람으로 지목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세수를 하고 의관을 갖추므로 그의 아내가 이상하게 여겨 물으니, 그가 대답하였다.
"오늘 틀림없이 대감께서 찾아오실 것이다"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그를 비웃었다. 그런데 조금 있으려니까 문 밖에서 갑자기 고관을 모시고 다니는 하인의 잡인 통행을 통제하는 우렁찬 소리가 들리더니 과연 대감이 찾아와서 곧장 방으로 들어가 그의 손을 잡고 말하였다.
"장차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하늘의 운수인데 어찌하겠습니까?" 하인의 사위가 대답하니 이준경이 말하였다. "이 뒤의 일은 전적으로 너에게 맡긴다" "재능을 인정해 주시고 대우하여 주시는 은혜를 어찌 감히 잊겠습니까. 다만 앞으로의 일의 형세가 어떻게 될 것인가를 관찰할 것이며 결정지어 말할 수는 없습니다"
이렇게 몇 마디 주고받고 하다가 대감이 떠나니, 온 집안 사람들이 모두 이상하게 여기며 그제야 그가 범상한 사람이 아닌 줄 알고 이때부터 앞서보다 대접이 조금 나아졌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에 그 하인이 이준경의 처소에서 돌아오자 그의 사위가 말하였다.
"옷을 벗지 말고 다시 빨리 가셔서 대감께서 세상을 떠나시는데 임종하십시오" "무슨 말을 하는가? 내가 방금 대감을 뵈었더니 손님과 이야기를 주고받으시면서 조금도 불편한 기색이 없으셨는데 어찌 이럴 수 있단 말인가" "긴 말씀 마시고 빨리 가십시오"
하인이 다시 가서 뵈었더니, 이준경이 바야흐로 수건으로 낯을 닦고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가 겨우 눈을 떠서 하인을 보고 말하였다.
"네가 어떻게 알고 갔다가 곧장 왔는가?" "쇤네의 사위가 말해 주었으므로 오기는 하였습니다만 어떻게 해서 병환의 진행이 갑자기 이 지경에 이르도록 위독해지셨는지를 모르겠습니다" "너의 사위는 범상한 인물이 아니니 너는 그가 하는 말은 굽혀서 따르고 어기지 말라"
이 말을 마치고 이준경은 세상을 떠났다. 이준경의 다른 호는 남당 또는 청련거사라고 하였으며, 74세에 죽었다. 시호는 충정이고 선조묘정에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