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제인(1493-1549)의 본관은 여흥이고, 자는 회중, 호는 입암이다. 중종 15년(1520)에 진사시에 합격하고 이어서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좌찬성에 이르렀다. 젊어서부터 재주와 지혜가 뛰어나 '백마강부'를 지어 자부하는 마음을 가지고 선배에게 품평을 구하였는데 선배가 차중(네 등급 중의 둘째)으로 등급을 매기자 만족하지 않은 표정으로 즐거워하지 않았다. 때는 바야흐로 봄이어서 꽃과 버들이 도성에 가득하므로 남쪽 성곽을 산보하다가 남대문 위에 올라가 자기가 지은 '백마강부'를 낭랑하게 읊으니 그 소리가 남대문의 다락과 들보를 진동시켰다. 그때 마침 장안의 이름난 기생인 성산월이 장차 남대문을 나가 어느 재상이 강가에서 베푸는 잔치에 가려고 하다가 민제인이 시 읊는 소리를 듣고 다락에 올라가서 보니 어느 젊은 유생이 두건을 벗고 이마를 내놓은 채 글을 외고 있으므로 다 듣고 난 뒤에 경멸하는 어조로 말했다.
"어떤 서생이기에 가사가 그리도 맑고 그리도 낭랑하시오?" "이것은 내가 지은 것으로 마음에 항상 좋게 여겼다가 선배에게 욕을 당하였기에 큰 소리로 외어 본 것이오" "서생은 함께 이야기할 만하니 저와 함께 누추한 저의 집으로 가기를 바랍니다"
마침내 그와 함께 집으로 가서 3일 동안 머문 뒤 청하였다.
"엊그제 외던 백마강부를 한 본 나에게 주시기 바랍니다"
민제인이 써서 주었더니 성산월이 그 부를 사인의 연회 자리에서 펼쳐 놓았더니 자리를 가득 메운 고관들이 똑같은 목소리로 감탄하며 칭찬하고, 어디서 이런 절창을 얻었느냐고 물었다. 성산월이 대답하였다.
"이는 첩이 마음 속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지은 것입니다"
이로부터 백마강부가 동방에 크게 전파되었다. 백마강부의 끝에 가사가 없었는데 어떤 문사가 가사를 지어 붙여 놓았더니, 중국의 학사가 그것을 보고 탄복하여 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