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언형(1469-1526)의 본관은 창녕이고, 자는 형지이다. 연산군 10년(1504)에 문과에 급제하여 이조 낭관을 역임하였다. 조언형의 성품은 악한 것을 미워하고 착한 것을 좋아하여 적당히 살아가는 세상 사람들과 더불어 행동을 같이할 수 없어 이조 낭관을 거처 집의에 이르기까지 여러 번 좌절하였다가 다시 일어났다. 강혼과는 어려서부터 가까운 사이였는데, 자라서도 우정이 변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강혼이 연산군 때에 하는 짓을 보고는 분하게 여기며 미워하기를 마지않았다. 중종반정 초기에 단천군수로 있었는데, 강혼이 당시 함경도 관찰사로서 단천 고을에 순시하러 온다는 말을 듣고, 조언형이 마침내 고향으로 돌아갈 행장을 꾸리게 하고 집안 사람에게 말하여 탁주 한 통을 준비하라고 하였다.
"관찰사가 곧 오실 터인데 나가서 정중히 맞이하는 것이 예의에 걸맞습니다" 아전이 와서 아뢰었으나 조언형은 병을 핑계 대며 나가지 않았다. 날이 어두워지자 조언형이 감색의 직령에다 분투를 끌고 종 하나를 시켜 술통을 메게 하고, 바로 상방으로 나아갔다. "혼지(강혼의 자) 어디 있는가?" 강혼이 그 목소리를 듣고 얼른 일어나 문을 열고 그를 맞이하였다. "나 여기 있네" "날씨가 차가운데 자네 한잔 마시려나?" 조언형이 자리에 앉아 안부도 묻기 전에 먼저, 스스로 큰 잔을 들어 마시는데 안주가 없었다. 강혼 역시 제 손으로 술을 부어 마셨다. 세 순배가 지났을 때에 조언형이 말문을 열었다.
"지난날 자네가 한 짓은 개나 돼지만도 못하니 자네가 남긴 것을 누가 먹겠나. 자네가 젊었을 적에는 총명하고 민첩하여 사귈 만하다고 여겼는데 어찌 조그마한 재주를 가지고 보잘것없이 처신하기가 이렇게 극도에 이른단 말인가. 살아 있는 것이 죽는 것만 못하겠기에 내가편지를 보내어 절교하려 하다가 한번 만나 나무라려고 하던 터였는데, 이제 이미 서로 만나 보았으니 나는 내일 당장 떠날 것이네"
다시 한잔 더 마시자고 하며 또 석 잔을 잇달아 주니 강혼은 고개를 떨군 채 말없이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 이튿날 조언형이 마침내 벼슬을 버리고 떠났다. 뒤에 벼슬이 판교에 이르렀다. 그의 아들이 바로 남명 조식이다. 조식의 의기가 격양하는 기풍은 대체로 물려받은 데가 있다고들 하였다.